풍수지리나 관상학에 깊숙이 침투해있기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나라를 '동물'에 비유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한듯 싶다. 싱가폴의 어느 학자는 스리랑카의 속담을 빌어와 한반도를 잔디밭에 비유한다.
"코끼리가 싸움을 해도 잔디밭은 망가지고, 코끼리가 사랑을 해도 잔디밭은 망가진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다른 비유를 들었다. "도랑에 든 소가 양쪽 언덕의 풀을 뜯어 먹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한반도를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정도로 비유한다. 고래가 아니라 새우다.
그래, 백 걸음을 양보하여 새우라 치자. 저자 라몬 파체코 파르도의 생각은 다르다. 새우는 새우로되 다른 새우라는 것. "분명한 사실을 말해 보자. 오늘날 한국은 더 이상 고래들 사이에서 등이 터지는 새우가 아니다." 근거는 이렇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완전하고 한층 강화된 민주주의 사회이자 세계에서 열 번째 경제 대국, 그리고 여섯 번째로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소프트 파워의 차원에서 열한 번째인 나라. 또한 언론 자유를 기준으로 아시아 최고의 국가이며, G20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G7에 초대받는 이 나라는 절대 피라미가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는 이러한 유형의 '새우'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책 제목은 좀 더 솔깃하다. <새우에서 고래로>(라몬 파체코 파르도 글, 박세연 번역, 열린책들)다. '새우'가 아니라 '고래'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을 '돌고래'로 비유한 이들도 있기는 했다.
우리도 우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만 때론 외부의 시선으로도 우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방식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의 목표는 "한국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을 위한 책을 쓰는 것."
제목에 취할 필요는 없겠다. 때론 '국뽕'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건 우리의 시선이건 타인의 시선이건 객관화시켜볼 수 있는 좌표를 확보하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우린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살 수 있고 더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만의 경험적 모델을 전세계와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치는 극단과 분열을 추구한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불균형적이고 빈부간의 격차 또한 절망적이다. 때론 '스스로 상처받는' 새우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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