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혜 시인이 자신의 시에게 말을 건넨다.
"내 안에 산다//내 안에서/희로애락, 오욕칠정/품고 있다//부화될 날을 기다린다//" (<나의 시에게>)
젊은 날, '사랑도 인생도 한판 굿'이라던 시인 김초혜 선생이 시업 60년(인생 80년)을 맞아 신작 시집 <<마음의 집>>에 시를 부화했다.
서문 격인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한 생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늘 생각한다./생각이 창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생각 속에 있는 무한능력이/시가 아닐까./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시를 생각하지 않으면/부쩍 늙는 것 같다./그래서 읽고 쓴다.//"
시인은 두 갈래의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는 시인의 길, 다른 하나는 사람의 길. 그래서 시인의 삶은 '성聖과 속俗'이 교차한다. 속의 팔십, 성의 육십, 우리네 인생길처럼 시인의 길 또한 고갯길이었나보다. 하지만 깨닫는 자만이 느끼는 미소, '염화미소拈華微笑'로 팔십 인생을 노래한다.
"열 살의 내가 꿈을 꾸듯 오는구나/스무 살의 내가 새봄에 취해서 오는구나/서른 살의 내가 피곤에 지쳐 오는구나/마흔 살의 내가 속으로 울고 겉으로는 웃고 오는구나/쉰 살의 내가 웃고 오는구나/예순 살의 내가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오는구나/일흔 살의 내가 고요함과 평정심을 친구 삼아 오는구나/ 여든 살의 내가 웃으며 가고 있구나//" (<고개 고개 넘어>)
문예반을 들락거리던 시절, 고등학교 때까지도 시인을 꿈꾼 적 있다. 제법 시인 흉내를 내가며 '시작 노트'를 끄적인 적도 있다. 그래, 아니었다. 미치지 못했다. 나는 풀꽃에서 우주의 이치를 결코 깨닫지 못하기에.
시인이 시로 시인을 정의했다.
"시인은 박제된 사슴에서도/심장의 소리를 들어야하고/매미 알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기러기 알에서도 가을날의 적막함을/풀꽃에서는 우주의 이치를/깨달아야 한다고//" (<시인>)
시인은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시를 읽는다. 시인이 되지 못했기에 더더욱 시를 읽는다. 두어 차례 반복해서 읽고 난 다음 두 가지의 열쇠말이 떠올랐다. 하나는 고졸미古拙美, 둘은 (문장이 아닌) 말씀. 나만의 느낌일 것이다. 우리네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속세에 발을 딛고 '문자공화국'을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성스러운 '시인공화국'(박두진)을 꿈꾼다. 내가 살아가는 문자공화국에 마치 잠언과도 같은, 이런 편안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시인의 걸음걸이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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