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정치의 기수로 지목되고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이번에는 "상대를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과격한 언어로 낙인찍는 것이 페미니스트 운동의 현재 본질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5일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간담회에서 한 미국 언론 기자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외신에서 이 대표에 대해 '한국 대선을 안티페미니즘 선거로 만든 정치인'으로 묘사했는데 반박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13일 금태섭·류호정 전 의원과의 합당 당시 낸 입장문에서 "이준석이 페미니즘의 안티테제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2018년 이수역 사건 당시 제 입장을 밝힌 것에서 시작됐다"며 스스로 '페미니즘의 안티테제'를 자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이준석 "나는 페미니즘 안티테제로 주목받아")
그는 이날 "한국의 페미니스트 중 일부가 다소 선동적일 수 있는, 범죄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논의의 장으로 끌고 오는 상황이 있었다"며 "2010년대 후반에 '젠더 갈등'이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그런 상징적인 사건들(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 등장했던 구호가 '여자라서 죽었다'였다"며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말은 운동의 슬로건으로서는 굉장히 훌륭할 수 있지만 정치의 한복판에서 보완책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왜냐하면 그때 그러면 정치권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여성단체에서는 남녀 화장실을 완벽히 분리해 주면 된다는 답을 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부연했다.
그는 "슬로건만으로 변화가 어려워지기 힘든 상황 속에서 계속 그런 자극적인 슬로건만 난무하는 상황이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확신한다"며 "그리고 이런 의문을 갖는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 아젠다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과격한 언어로 낙인찍는 것이 페미니스트 운동의 현재 본질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저에게 혐오라는 단어를 자주 붙이는 세력이 있는데, 혐오라는 단어가 그렇게 가볍게 쓰여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며 "저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배웠고 저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제가 여성혐오 얘기를 듣는데, 만약 제가 어떤 혐오발언이 있었는지를 물어본다면 어느 누구도 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이날 주장과는 달리, 이 대표는 그가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나섰던 2021년 이후 페미니즘의 핵심 질문인 '성차별의 존재' 그 자체, 즉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집요하게 부정해 왔다. 그는 2021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밤길 안전은 같은 보수정당 정치인인 오세훈 서울시장 등 보수진영 내에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이슈임에도 이를 부인한 것이다.
또 방송 인터뷰나 개인 SNS 등을 통해서도 그는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보증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도적 차별의 존재를 부인했고, 이후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된 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거는 과정에서 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이는 모두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을 논하면서도 "개별 범죄를 끌어들여서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했고, 지난 대선 당시 성범죄 엄벌주의를 주장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 씨가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자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직 국민의힘 대표이던 시절, 전당대회 당선 직후부터 대선 국면에 이르기까지 <프레시안> 기자 등 취재진들이 '한국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기회 있을 때마다 던졌음에도 단 한 차례도 답을 하지 않고 "이미 말씀드렸다"고 회피하기만 했었다.
이 대표는 이날 SFCC 간담회에서도 '구조적 성차별의 부인'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고수해 나갔다. 그는 '개혁신당 지지 기반이 주로 20대 남성인데, 여성 유권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한국에서 지금까지 한 10년 정도 페미니스트 아젠다들이 반대 의견 없이 통용되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실제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과거에 여성들이 직업·교육의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 항상 불리함을 감수하고 살아왔던 세월이 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라면서도 "그 때에 비해서 지금 비슷한 주장이 젊은 세대에게 통용되지 않는 이유는, 저는 1985년생인데 이미 제 나이 때부터는 여성의 그런 교육·직업 측면에서의 희생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그래서 논점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넘어간 것"이라며 "지금은 이미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서서히 스텝을 밟아서 올라가는 상황 속에서 고위직에 진출한 여성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절대적으로 교육 등 기회가 부족했던 부분보다도 결국 직장 내에서나 아니면 사회의 사다리를 밟아 올라갈 때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저희가 투입해야 되는 시기"라고 주장했다. "더 이상 남성과 여성이 기회의 권리 때문에 다투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완화되어 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제가 30대 후반이었을 때, 저와 동년배인 여성들이 해야 했던 많은 선택은 결국에는 본인의 커리어와 육아 또는 결혼과의 사이에서 생물학적인 이유로 최종적인 선택을 해야 되는 지점을 맞이했던 경험이 많다"며 "이 문제는 남녀 간의 대립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출산율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페미니즘적 주장이 어떤 반대도 없이 통용됐다는 인식이나, 30대 후반 여성들이 육아·결혼과 커리어 사이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이 '생물학적인 이유'에서 이뤄진다고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대표는 이어 이번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난 '페미니즘 정당' 정의당을 겨냥해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냉철한 논리와 이성, 그리고 제도 개선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지, 어떤 특정 성별의 심리를 자극하는 선동적인 발언들이 많이 나오면 안 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난 몇 년간 주로 정의당에 의해서 많이 태동되었던 다소 이슈추종적·선동적 아젠다들이 정작 젊은 여성들의 호응을 크게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날 SFCC 간담회에서는, 앞의 질문을 한 두 기자와 일본 <산케이> 신문 기자 등 총 3명의 기자로부터 페미니즘 의제 관련 질문이 나왔다. 이 대표는 <산케이> 기자가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려면 여성들의 지지가 꼭 필요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데 대해서는 "정치나 여러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여성이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에는 개혁신당의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한다"며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에는 지금 그 과정이 매우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가지고 중간에 제도적인 여러 가지 면을 놓고 의견 충돌이 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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