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이준석 신당'으로 불리는 개혁신당 총선 지도부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 하루 전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펴고 나섰다. 비례대표 1번 후보인 이주영 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비례 2번 후보 천하람 공동위원장이 각각 여성할당제와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낸 것. 낮은 지지율로 고전 중인 가운데, 이준석 대표의 브랜드인 '안티 페미니즘' 전략을 전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안티페미 당(黨)'으로 치르곘다는 얘기다. 다만 이들의 득표 성적과는 무관하게, 시민사회의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주영 개혁신당 총괄선대위원장은 2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를 보며 가족들과 여성의 비례대표 홀수 할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딸이 '왜?'라고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며 "병원에서 일할 때 그곳에는 남녀가 없다. 불필요한 여성 할당은 여성에게 가장 해롭다. 본인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고, 요행과 부당한 배려를 기대하게 만들고, 결과에 승복하는 연습의 기회를 잃으며, 결국 사회에서 준비되지 못한 자로 남겨지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뿌리깊은 성차별이며, 가스라이팅"이라고 주장했다.
'여성할당제=성차별=가스라이팅'이라는 이례적 주장을 편 이 위원장은 이같은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그러므로 비례대표의 여성할당은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 할당은 지역별, 직군별, 학력별, 소득별, 문화적 다양성 별로 각각을 모두 할당하지 않는 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제도"라며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 기초의원 비례대표 386명 중 여성이 374명, 남성이 11명으로 무려 96.9%를 차지한 바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입후보자 및 당선자수 통계를 보면, 비례대표 후보자 중 여성 비율이 90.1%(679명 중 612명)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구를 포함한 전체 선거 상황을 보면, 여성 후보자 비율은 31.9%(5103명 중 1626명)로 떨어지고, 당선자 중 여성 비율도 33.4%(2987명 중 998명)로 엇비슷하다. 21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도 18.8%(300명 중 57명)로 OECD 국가 평균 28.8%에 비해 낮고, 순위는 2022년 기준 38개국 중 34위다.
정치권 밖으로 눈을 돌리면, 공무원 채용 과정에 최근 들어 사실상 '남성 할당제'로 기능 중인 '양성 평등 채용목표제'가 시행되고 있다. 인사혁신처의 '2020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를 보면, 2003~2019년 이 제도로 추가 합격한 인원은 지방직에서 남성 1898명, 여성 1317명이었다. 같은 기간 국가직에서는 여성 348명, 남성 211명이 추가 합격해 여성이 37명 많았지만, 2015~2019년 통계로 범위를 좁히면, 국가직 공무원 남성 추가 합격자가 여성보다 36명 많았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의 낮은 여성 정치 참여율과 공공영역 '양성 할당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위원장의 이날 발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천하람, 비동의간음죄에 "앞으로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관계 맺어야 하나"
대표적인 이준석계 정치인 그룹 '천아용인'의 일원인 천하람 위원장도 이날 "비동의간음죄라는 유령이 국회를 배회하고 있다"며 "이번 총선에서도 또다시 더불어민주당이 비동의간음죄를 10대 공약에 포함했다.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총선 핵심 공약으로 삼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동의간음죄의 문제는 아주 명확하다"며 "'자, 우리 이제 관계 하자', '우리 서로 합의 하에 하는 거야, 너 동의하는 거 맞지?' 이렇게 확실하게 상호 동의를 하지 않고 관계를 맺었다가 나중에 한쪽이 '사실은 나 그때 하기 싫었는데 억지로 한 거야'라고 주장하고, 보통의 성관계가 그렇듯 상호 동의를 입증할 특별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으면, 그 성관계는 결국 강간으로 규정될 심각한 위험성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이미 6년 전에 이 입법 시도를 풍자하는 의미로 '성관계 표준 계약서'라는 것을 만들고 '앞으로는 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며 "형법상 모든 범죄의 입증책임은 검사, 다시 말해 국가에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 부담을 지게 되는 든 사실상 입증책임이 전환될 우려가 크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비동의강간죄 도입 논의 자체를 희화화한 것으로, 절도·점유이탈물횡령 등 재산관련 범죄에서는 폭력·협박 등 강제력의 작용이 없어도 소유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타인의 행위를 법으로 문제없이 잘 규제하고 있으며, 강제력이 작용할 경우는 별도의 법 조항(강도 등)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상리에 반하는 선동적 주장이다.
비동의간음죄는 폭행과 협박을 강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형법 조항과 그 폭행 협박을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으로 해석하는 '최협의설' 판례가 '성범죄 피해를 왜곡·축소해왔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지적 속에서 대안으로 요구돼온 형법 개정안을 뜻한다.
해외에서는 영국, 스웨덴, 독일 등이 형법 개정을 통해 강간, 성폭력 등을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개념화했다. 국제연합(UN) 소속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인권기구는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도록 한국 정부에 수차례 권고했고, 2021년 유엔인권인사회도 '국가는 강간 정의의 핵심에 동의 없음이 포함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동의간음죄로 성범죄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성폭력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이은의 변호사가 과거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며 검사가 피해를 먼저 입증하고 피고인이 소명하는 것은 "모든 재판 과정의 기본 구조"라고 지적한 바 있다.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한 영국 등에서도 범죄 입증책임은 검사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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