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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는 '절대악'인가?

[김영수의 사모펀드 이야기] <6>

사모펀드는 부도덕한 존재인가? 사실 공허하고 진부한 질문일 수 있다. 사모펀드는 투자를 엮는 한 형태일 뿐이며 가치 중립적이다. 도덕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고 비도덕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쇠로 농기구도 만들 수 있고 사람을 고문하는 고문도구로도 만들 수 있듯.

사모펀드에 대한 비난은 중세를 거쳐온 반유대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에게는 농토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업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자를 받을 수 없기에 돈이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돈을 맡겨 이자수입을 얻었다. 물론 전쟁등 필요할 적에는 다급하여 유대인들에게 급전을 꾸고나서는 이자를 낼때 마다 그리고 원금을 갚을 때가 다가오니 화가난다.

그러면 '예수님 죽인 유대인 놈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포그롬(유대인 학대·학살)을 시작한다. 돈을 다 빼앗고 내쫓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베니스의 상인'같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기기도 하고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악덕 기업으로 소문난 모 회사가 사모펀드와 체결한 계약 (필자가 보기에 합법적이고 공정한 계약이었다)에서 벗어나려하다 소송전이 붙었는데 준비서면의 첫 문장은 당연히 '부도덕한 사모펀드'라고 시작한다.

한국은 IMF 사태 때 '외국계 사모펀드'의 매운 맛을 봤다. 그래서 알토란 같은 한국기업들이 헐값에 팔려갔고 그렇게 팔려간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많은 사람이 해고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 기업들이 재매각되었고 그 과정에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었다.

부아가 날만하다.

거기다가 소버린, 엘리엇 등의 사모펀드들이 SK그룹, 삼성그룹의 경영권 자체를 위협하기도 했다. SK 그룹, 삼성 그룹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아닐지라도 그 '외국 사모펀드'들이 미운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 이라고 하는, 교포 출신이어서 한국어에 능통하지만 국적도 외국인이고 실제로 외국 사모펀드를 위해 토종 한국인들의 이익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일군의 사람을 일컫는 말도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는 직원을 무자비하게 해고하고 핵심자산을 팔아치우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고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는 인상이 거의 모든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한국에서 2004년 '간접투자자산 운용법'을 제정하면서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데는 '외국 사모펀드들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도 우리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대항해야한다’는 국민의식이 깔려있었다. 외국계와 토종 가릴 것 없이 사모펀드라고 하면 막연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한국 뿐이 아니다.

사모펀드가 참여한 회사에서 노동쟁의 혹은 다른 분쟁에 생기면 상대는 일단 '부도덕한 사모펀드'라고 말을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서 뭔가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정리했다.

#1. 외국 그리고 한국의 IMF 당시 들어온 외국계 사모펀드의 경우 약탈적인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책도 많이 나왔고 영화나 드라마같은 대중매체로도 많이 소개되었다. 지금도 그런 사모펀드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기회만을 노리는 사모펀드도 많을 것이다.

#2. 그런데 적어도 2005년 이후 한국에서 사모펀드들이 시행한 거의 모든 투자와 재매각과정에 위와 같은 약탈적 행위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고용은 늘어났고 기업은 국제화된 케이스가 많다. 한국 경제의 지배권이 사모펀드에 이미 넘어갔다고 단언하는데 그 과정이 약탈적이고 음모론적이라고 볼 수 없었고 적어도 2005년 이후 2024년까지의 과정만을 보면 사모펀드는 한국 경제에 여러가지 순기능을 작동시켰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민감정까지 고려해 볼때 '정당'을 넘어서서 '적당'한 보상이었는가까지 질문을 확대하면 자신있는 답을 제공하진 못하겠다.)

#3. 몇가지 사모펀드가 담당했던 경제내의 순기능을 소개한다. 미국에서 2008년~2009년 리먼 브러더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 이후 침체된 미국 주택시장에 블랙스톤을 위시한 여러 사모펀드들이 진입하여 은행으로 넘어간 주택들을 헐값에 사서 임대주택사업을 시작한 것이 미국의 주택경기회복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임대주택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살게된 사람들은, 특히 원래 집주인들은 불만이 없을수 없다. ‘원래 내 집이었는데’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이해한다.

그런데 이 원래 집주인들 앞에 놓여있었던 선택은 무엇이었나?

집은 차압당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퇴거된다. 그리고 관리가 되지 않은 집들은 노후화되고 동네 전체가 우범지대, 무인지대가 되어서 유령타운이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없게 된다. 미국 전체의 주택시장은 몰락하고 미국 경제는 장기 침체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마 중국이 지금 그 길로 들어가는 듯하다.)

위 선택지와 사모펀드가 집을 사서 유지보수하고 거기에 (비싼 렌트를 내면서) 임차인으로 살게되는 선택지 중 어떤 것이 더 도덕적인가. 답을 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사모펀드가 참여하여 사모펀드간에 더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면 훨씬 더 싼 임대료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필자가 보기엔 블랙스톤이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여 다른 사모펀드보다 '특별히' 먼저 진입하여 '특별히'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는 것에 도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의 주택에도 하우스푸어가 연쇄적으로 파산해 금융기관으로 주택의 소유권이 넘어가고 주택의 원 소유자는 임차인이 되는, 미국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필자는 미국보다 더 치열한 사모펀드간의 경쟁을 유도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더 비싸게 불량채권을 구입하도록 하여 주택 원 소유자에게 더 많은 잔류자산이 돌아가도록 하고 임대료는 더 싸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매 과정을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만들어 경매과정 전반의 비용을 합리화하고 원 소유자에게 차후정산제도(Earn Out, 빼앗긴 부동산의 가격이 나중에 많이 오르면 원 소유자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주는 제도) 권한이나 우선 매입권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4. 2005년 이후의 한국 사모펀드의 도덕성 문제에 비교적 안심을 하는 것에는 여러 근거가 있다. 일단 한국 토종 사모펀드 거의 전부가 연기금이 펀딩을 제공한다. 즉 공공성을 띈 주체들이 투자자들이다. 그래서 사모펀드가 대량해고나 소비자 착취 등의 파렴치한 행위를 했을 경우 투자 자체가 중지되어버린다.

한국에 적을 두고 한국에서 장사를 하는 토종 사모펀드가 한국이라는 지역사회의 기본 가치에 정면 역행하는 행위를 하기는 어렵다. 또 연기금이 주 투자자라는 점에서 외국처럼 사모펀드가 부자들의 돈놀이라는 비난도 성립하기 어렵다. 사모펀드의 성공적인 투자로 돈을 벌어들인 건 돈 많은 개인이 아닌 국민연금·공무원 연금·군인공제회 등이다

#5. 사모펀드가 한국 경제에 여러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단식 경영을 하는 재벌 그룹사의 경우를 보자. 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관행이 있던 그룹사의 주주로 참여한 외국계 사모펀드가 중재신청·소송 등으로 견제하기 시작했을 적에 정부는 쾌재를 불렀었다. (물론 그로 인해 그룹 전체의 약점이 노출되어 그룹 전체가 해체된 일도 있긴 했다. )

국회가 아무리 입법을 하고 정부가 아무리 지도를 해도 '정책에는 대책이 있다' 식으로 수십년간 대응해오던 재벌의 경영행태를 사모펀드가 개입하면서 일거에 고칠 수 있었다.

재벌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던 (특히 M&A에서) 그런 담합행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분야는 어느 그룹의 어느 회장이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는 진입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사모펀드 덕분에 거의 없어졌다. 오직 실적만을 기준으로하는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거기다 강성부 펀드처럼 기업의 오너리스크 등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는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의 등장으로 주주들은 상당히 득을 보았고 기업의 경영이 크게 투명화되었다.

#6. 사모펀드의 개입으로 회사 혹은 업계 자체가 선진화·국제화된 케이스도 많고 해외 진출에 사모펀드가 극적인 도움을 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휠라 코리아가 스포츠 용품계의 거인 아퀴시네트를 인수한 것은 사모펀드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외국에서 현지 금융을 끌어올 능력이 없는 한국기업들이 한국 사모펀드의 힘을 이용해 세계의 톱으로 올라서는 통쾌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해외 투자로 외국의 선진 하이테크 기업을 통채로 사들이면서 선진 산업진출의 기간을 줄이는 쾌거도 발생한다. 최근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하여 관심을 끌고 있는 캐나다 커피체인 팀호튼(Tim Horton)도 사모펀드가 개입하여 기업을 국제적으로 키운 대표적인 예다.

캐나다 거주자인 필자는 그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데 팀호튼은 죽어가는 시골 커피 체인점이었다(솔직히 아침에 그 자리에서 구워주던 도너츠 맛은 사모펀드가 인수한 후 원래의 맛에서 좀 떨어지긴 했다) . 그런데 사모펀드가 들어와서 과감한 투자를 한 후 미국을 점령하고 한국에도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한일관, 하동관, 우래옥 등 오래된 맛집 식당들이 외부 자금의 지원을 받아 여러 곳에 지점을 열고 골목 맛집에서 제대로 된 기업이 된 것도 외부자금의 공헌이다. 이러한 일들은 기업들에게도 자주 일어난다. 만도처럼 한국 사모펀드가 참여하여 외국 사모펀드에 헐값으로 넘어갔던 기업을 나중에 도로 사는 경우도 있다.

#7. 내가 한국 사모펀드가 한국 경제에 준 가장 큰 공헌으로 여기는 것은 능력있는 전문 경영자들을 위한 시장이 사모펀드의 등장으로 인해 열렸다는 점이다.

족벌 재벌기업에 근무하는 경영자는 일면 비참한 존재였다. 오너 경영의 전횡하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다가 조기 은퇴하여 젊은 나이에 사장되는 우수한 인재들이 국제시장에서 훨훨 다시 뛸 수 있는 공간을 사모펀드들이 열어주었다.

과거에는 오너가 비리를 저지르면 대신 감옥 생활을 해주면서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을 받는 비참한 관행 속에 해고를 두려워하면서 평생 초라한 봉급을 받으며 지내왔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능력 있는 경영자들을 고액의 연봉을 주고, 또 엄청난 성과급을 제시하면서 스카우트해가는 사모펀드들이 많이 등장한 것은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십억 크게는 몇백억을 성과급으로 받는 최고급(C급) 경영자들이 생겼다는 것은 듣기에도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너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합리성 하나로 결정한다는 것이 전문경영인들에게 큰 매력이다. 상각전영업이익(EBIDTA) 증가분의 2~4% 보너스를 받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한데, 수백억원 대의 보너스를 받고 퇴사한 케이스도 가끔 발생한다고 한다.

#8 사모펀드의 등장으로 경제 전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어느 정도 실적이 있고 큰 기관, 특히 외국 국부펀드 등의 투자를 받은 사모펀드들은 철저한 심사·실사를 자주 받기에 회계 상의 의혹 등이 적다.(반면 창투사들은 아주 좋지 못한 평을 받고 있다. 한국형 헷지펀드라는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에서도 보이듯 창투와 헷지펀드는 리베이트 등 불법적인 요소가 많다.)

아직은 사모펀드에는 회계부정과 비리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유명한 칼라일 사모펀드의 경우 수백 건의 투자가운데 회계부정은 한 번도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모펀드 자체에 대한 철저한 심사 그리고 매 투자건마다 기관투자자 내부 리스크관리팀의 별도의 검증 등 중복으로 행해지고 있고 회계부정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한번이라도 발생하면 해당 사모펀드는 규모가 아무리 커도 그 자리에서 공중분해되는 위험이 있어서 적어도 회계문제에 관한 경영은 의외로 투명하다고 봐도 된다.

이것이 얼마나 큰 진전이냐하면, 필자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기업회생업무를 했었는데 회계장부가 제대로 된 기업을 하나도 만날 수가 없었다. 저녁마다 회식을 하자면서 '사실은(일본어로 지츠와) 정말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라며 부외부채의 존재를 계속 이야기한다. 그 ‘지츠와 행진’이 10일 정도 계속되고 나면 그 프로젝트에서 아에 손을 떼는 일들이 많았다. 제대로 된 사모펀드를 한 번 거친 기업은 이런 일이 없다고 봐도 된다. 일본도 아직 사모펀드가 활성화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일본의 사모펀드 시장이 활성화될 듯하고 한국 사모펀드들은 이를 눈여겨 봐야한다.

결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존재의 의미(raison d'être)에만 충실하면 된다. 한 개인이 그 사회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의 칭송을 받는 도덕적인 존재로 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사모펀드의 경우 그 존재의 의미가 명확하다. 1) 부실채권의 처리 2) 부실 기업의 구조조정 3) 한국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기회 제공 4) 외국자본에 대한 대항세력. 이 네 가지가 2004년 간접투자자산 운용법의 입법 취지다. 그 4가지 역할을 충실히 했으면 일단은 합격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필자는 지금까지 상당히 성공적이고 충실하다고 본다. 어느 개체든 어떤 사회의 모든 선기능을 전담할 수는 없다. 부의 작용을 줄이면서 선의 기능을 많이 하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합당한 존경과 용인을 해주어야한다.

관련해서 입법당시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던 몇몇 교수들과 인터뷰를 해보았는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는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사모펀드들은 건강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한다.(참고로 그 교수들은 재벌들의 꼼수 상속에 사모펀드들이 관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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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캐나다 앨버타 상과대학 금융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도요타그룹 등을 거쳐 현재 캐나다에서 당뇨병치료제품을 만드는 Eastwood Bio-Medical Research In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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