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1일, 故이동우 씨(당시 38세)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보수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소속 정비노동자로 일하던 중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동국제강에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고용노동청은 사고 1년 만인 2023년 2월, 원청업체인 동국제강의 두 대표이사 중 한 명인 월급 사장 김연극 만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동국제강의 대주주이기도 한 '진짜 사장' 장세욱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유족과 노동·시민단체가 장세욱을 직접 고발했으나 결국 사고 2년 만인 지난 2024년 1월 30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은 장세욱, 김연극 모두를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현장에는 신호수도, 원청 관리자도 없었지만 검찰은 동국제강 측이 '위험성 평가 실시'와 '유해·위험 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을 모두 이행했다며 면죄부를 주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항소장을 제출했고, 2주기에 맞춰 검찰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반복되는 구조적인 사고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원청을 포함한 사업주와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을 넘기고 있다. 일터에서는 지금도 수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어가고 있지만 사고가 발생해도, 노동청 및 검경의 사고조사과정 및 기소까지 하세월이다. 고 이동우 씨의 경우와 같이 불기소 처분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 이동우 씨의 2주기를 맞아 동국제강의 책임을 묻기 위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임신한 채로 투쟁했던 고인의 부인 이야기를 전한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봤어요
동우와 금희는 어릴 때부터 봤다. 금희의 친구 동생이 동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보면서 자랐다. 어렸을 때라 그런지 딱히 로맨틱한 감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각자 살다 보니 점점 만나는 일은 자연스레 줄었다. 서로를 오랜만에 다시 본 건 20대 후반이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금희야, 동우랑 맥주 마실 건데 너도 올래?"
동우는 얼마 전 이혼했다고 했다.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금희는 동우를 위로했다. 동우의 상처가 조금씩 나아졌고 더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아졌다. 술자리는 위로의 자리에서 점점 '깔깔' 웃는 자리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 봤던 동우와 금희는 이제 '동우 씨', '금희 씨'가 되어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동우 씨와 금희 씨는 연인 관계가 되었다. 동우 씨는 많이들 말하는 '막내아들' 스타일이었다. 쉴 새 없이 툴툴거리면서도 쉴 새 없이 금희 씨를 챙겼다. 동우 씨는 영화관과 카페는 싫어했고 바다낚시를 몹시 좋아했다. 둘은 주말이면 낚시하러 자주 놀러 갔다. 금희 씨는 "내가 더 잘하는데?"라며 동우 씨를 놀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 둘이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거나 가끔 사람들을 불러서 왁자지껄하게 놀기도 했다. 사이가 점점 깊어지면서, 함께 살기로 했다.
동우 씨는 요리를 좋아하고 잘했다. 작은 식당을 열고 싶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뼈해장국 집에서 요리를 배우며, 실력도 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작은 뼈해장국 식당을 하나 열었다. 성실히, 살뜰히 일했고 장사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금희 씨의 아버지가 갑자기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슬펐다. 금희 씨는 본인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웃으며 맞이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금희 씨는 손님을 바라보며 웃는 일은 더 못하겠다고 동우 씨와 상의했다. 부부는 손해를 감수하고 가게 문을 닫았다.
8년 만에 찾아온 아기
2018년, 동우 씨가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크레인을 다루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일이었다. 전혀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고소공포증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돈이 필요했다. 동우 씨는 실력 있는 사수를 만났다며 고소공포증만 빼면 할 만한 일이라고 가족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사수도 친해지면서 자주 집에 놀러 왔다.
동우 씨가 동국제강에 4년쯤 다녔을 무렵, 아이가 찾아왔다. 금희 씨는 동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신테스트기 해봤는데, 임신한 거 같아."
"축하해."
"반응이 왜 그래? 남의 애야?"
농담에 같이 웃었다. 기뻤다. 양가 부모님도 임신 소식을 반가워하셨다.
분명 '다쳤다'고 했는데...
2022년 3월 21일 오전 11시, 금희 씨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동우랑 같이 일하는 000인데요, 동우가 다쳐서 응급실에 갔어요."
"어느 병원이라고요?"
"00병원 응급실이요."
"네."
얼마나 다쳤느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금희 씨는 바로 뛰쳐나가서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금희 씨는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다쳤을까봐 걱정됐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이동우 씨 보호자'라고 말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곧 의사가 왔다.
"이동우 님이 아까 회사에서 다치셔서 응급실로 오셨는데 현재 사망하셨습니다."
멍했다.
아무 생각도, 감정도 안 들었다. 그저 멍했다. 그리고 금세 찾아온 감정은 엄청난 슬픔이었다. 감당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말도 안 나왔다. 펑펑 울기만 했다. 간호사가 금희 씨를 잡아끌었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랐으나 잡아끄는 대로 따라갔다. 장례식장이었다. '얼른 장례를 치르셔야' 한다며 간호사는 안내해 주려고 했다.
"싫어요. 내가 저길 왜 가요. 안 갈 거예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엉엉 울었다.
동우가 왜 그랬지?
장례식장에 들어가 보니 동국제강에서 사람이 와있었다.
"동우 씨...어떻게 된 거에요?"
"크레인 일하다가 높은 데서 추락했습니다."
끔찍했다. '추락'이란 말을 듣자마자 온갖 상상이 금희 씨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사람들은 다른 가족에게도 연락을 하라고 했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가 지금 뭐라노? 똑바로 말해봐라."
우느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동국제강에서 온 사람이 전화를 건네받곤 상황을 설명했다. 양가 식구들이 달려왔고 시신을 확인하러 들어갔다. 다들 '추락'이란 말을 들었던 터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시신은 예상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훼손된 곳이 딱히 없었다. 동우 씨가 그저 누워있는 거처럼 보였다. 하청업체 사장이 장례식장에 오자, 다들 물었다.
"동우 추락한 거 맞아요?"
"아뇨. 추락은 아니에요. 안전벨트를 동우가 이상한 데에 걸었어요. 크레인이 작동하면서 그게 동우 몸에 잘못 감겼어요."
"아까 동국제강 분은 추락이라고 했어요."
"추락 아니에요. 근데 동우가 왜 거기에 벨트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장례식장을 찾아온 동우 씨의 사수, 동료들도 다들 똑같이 말했다.
"동우가 왜 그랬지."
"동우가 왜 벨트를 거기에 걸었지..."
장례식장엔 금희 씨가 어릴 때부터 '큰아버지'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낸 아빠 친구분이 있었다. 큰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금희야,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좋지 않겠니? 아무래도 이거 중대재해법에 걸리는 거 같다."
"변호사요?"
사흘 후, 권영국 변호사와 조혜연 활동가가 찾아왔다. 국회의원과 방금 현장을 보고 온 참이라고 했다.
"변호사님, 사람들이 다 동우 씨가 벨트를 잘못 걸어서 그런 거래요. 정말이에요?"
"금희 씨, 이건 벨트 문제가 아니에요."
동우 씨 잘못이 아니었다. 벨트 문제도 아니었다. 동우 씨가 당시 하던 작업은 원래 크레인 전원을 끄고 하는 작업이다.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혹시라도 크레인이 움직일 것을 대비해 아래엔 신호수가 있고 동우 씨에겐 무전기도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크레인 전원은 켜져 있었고 신호수도, 무전기도 없었다. 크레인 전원만 꺼져있었어도, 신호수나 무전기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동우 씨의 안전벨트 실수가 아니라, 회사가 안전조치 중 무엇 하나 똑바로 하지 않아서 생긴 죽음이었다.
유족이 왔는데... 사람 대접도 안 하네
서울로 올라왔다. 포항에만 있어선 동우 씨의 억울함을 알릴 수가 없었다. 동우 씨의 어머니와 금희 씨는 동국제강의 실체를 밝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올라온 첫날, 영등포에 위치한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 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열 명 정도 있었다. 변호사, 노동활동가, 다른 산재 사건 유족 등이라고 했다. 금희 씨는 처음에 경계심이 들었으나, 회의가 끝날 때쯤 믿음이 생겼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계획이 필요한지, 어떤 마음으로 해나가야 할지 모두 잘 설명해 주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날, 동국제강에 찾아갔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면담요청서를 손에 들고 직접 장세욱 대표를 만나러 들어갔다. 그런데 보안요원들이 금희 씨 앞을 막았다. 못 만난다고 했다. 마치 구걸하러 온 사람을 대하듯, 잡상인을 대하듯 했다. 유족과 활동가들이 다 같이 로비에 앉았다. 누군가는 "장세욱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보안요원에게 따졌다. 금희 씨는 자꾸 눈물만 나왔다. '사람이 죽었는데. 유족이 왔는데. 사람 대접도 안하는구나.' 서러웠다. 장세욱 대표를 쉽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세욱 대표는커녕 동국제강의 누구 하나 만날 수 없었다.
유족이 투사가 됐다
동국제강 앞에 천막을 쳤다. 천막은 분향소 형태였고 동우 씨의 사진을 두었다.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자꾸 금희 씨 속에서 북받쳤다. 억울함, 원통함, 그리움, 분노, 슬픔 그 어떤 단어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동우 씨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회사 사람들이 다 자기 잘못이었대. 다들 그래. 내가 꼭 자기 억울함 풀어줄게.'
남편의 사정을 알려야 했다. 임신한 몸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있는 힘껏 많은 곳을 다녔다. 산재 사망 유가족들의 모임, 노동조합 집회, 정치인들이 오는 행사를 다 다녔다. 많은 곳에서 서로 상황을 듣고 말했다. 그 속에서 금희 씨는 자신이 뭔가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변하고 있었다. 다른 산재 사망 사건의 이야기는 남편이 당한 일과 자꾸 겹쳐 보였다. 억울한 일을 당한 노동자의 이야기는 ’동우 씨도 이런 걸 당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금희 씨가 투사가 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금희 씨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투쟁은 점차 심화했다. 금희 씨의 발언은 점점 진심이 느껴지며 단단해졌다. 포항에 있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천막농성, 로비 점거, 포위의 날을 이어갔다. 그 결정을 할 때, 금희 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2022년 6월 9일, 포스코는 '철의 날'을 맞이해서 다양한 철강기업에 상을 주었다. 동국제강도 수상기업 중 하나였다. 장세욱 대표가 참석했다. 금희 씨는 시상식 당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전날 밤새 생각했다. '장세욱을 만나면 머리채를 잡을까? 네가 정말 인간이냐고 소리칠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당일 그 상상들이 무색하게, 보안요원에게 막혀서 시상식장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작은 뿌듯함이 금희 씨의 가슴 속에서 느껴졌다. 장세욱은 분명 곤란했을 거니까. 장세욱이 우릴 신경쓸 수밖에 없을 테니까.
2022년 6월 14일, 유족과 사측이 수 차례 교섭 끝에 일정 부분 합의했다. 합의서를 들고 금희 씨는 영정 사진 앞에 섰다. 금희 씨는 생각했다. '동우 씨, 이제 억울함 풀고 편해지면 좋겠어.' 눈물을 왈칵 쏟았다. 동우 씨가 만약 지켜보고 있다면, "독한 년. 나랑 싸울 때도 절대 먼저 사과 안 하더니, 대단하다"라고 농담 섞인 위로를 하며 어깨를 토닥여 줄 것 같았다.
요즘도 똑같아요. 남편 생각이 많이 나요
아이는 건강히 태어났다. '주환 씨'는 금희 씨와 동우 씨를 조금씩 닮았다. 뭔가에 집중할 때 입을 앙다문 모습은 동우 씨와 똑같다. 외할머니는 "아이고 금희 어렸을 때랑 똑같네"라며 주환 씨의 평소 얼굴을 보며 감탄하신다. 지금 주환 씨는 손을 흔드는 '안녕' 자세와 뭔가를 건네주는 행동에 한참 빠져있다. 금희 씨는 "솔직히 요즘 힘들어요. 그래서 밤에 남편 생각이 많이 나요."라고 현재 마음을 말했다. 아이가 점점 크면서 더 손이 많이 간다. 친정 어머니는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계속 다니고 있다. 두 사람을 돌보며 집안 살림까지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금희 씨는 주환 씨의 또래 아이 부모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다. "젊은 엄마들도 아이 체력 잘 못 따라가는데, 저는 더 해요."라며 속상함도 말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니
2024년 1월 30일, 검찰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장세욱 대표와 하청업체 사장을 수사한 결과 불기소 처분했다. 금희 씨는 소식을 듣고 작년이 떠올랐다. 작년 2월, 금희 씨가 직접 장세욱 대표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그때 검사를 만났다. "저희 남편이 죽었는데 사람은 지금도 죽어나가요. 이젠 법도 생겼는데 아직도 죽어나간다고요. 기업 눈치 보지 말고 제대로 수사해서 처벌하세요." 검사는 금희 씨를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피웠다. '의지도 없어 보이더니 결국...' 금희 씨는 혼자 있던 집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금희 씨는 노동 안전 활동을 하고 싶다. 일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억울함, 유족의 원통함을 푸는 데에 함께 하고 싶다. 지금은 주환 씨가 너무 어리고 봐줄 사람도 없어서 어렵지만, 조금만 주환 씨가 더 크면 꼭 많은 곳을 다니면서 함께 할 거다. 자신이 받은 걸 다른 억울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금희 씨는 여전히 이런 생각에 망설임이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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