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무실이 있는 건물 4층에는 고시원이 있다. 어느 날 고시원에서 드르륵드르륵, 쾅쾅하며 뭔가를 뜯어내는 듯한 공사소음이 들렸다. 건물 앞에는 몹시 더럽고 헐어빠진 매트리스와 브라운관이 볼록한 구형 텔레비전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시설이 낡아서 교체하는 모양이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시원 사장님이 바뀌어 전체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소란한 공사소음이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볼 겸, 공사 중인 고시원에 슬쩍 들어가 보았다. 50여 개나 되는 방이 좁은 공간에 붙어 있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방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 살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집기들은 모두 반출되고, 벽지와 바닥이 모두 철거된 방은 숨 막힐 정도로 작았다. 50여 개의 방 중 절반은 창문이 없는 복도 측 방이다. 눈대중으로 보니 가로, 세로의 길이는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1평의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1.8미터이니 한 평 될까 말까한 방이다. 가끔 시끄러운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사람이 복닥복닥 살았다면 실은 너무나 고요했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고시원은 두 달여 간 공사를 마치고 멋진 조명, 깨끗한 시설과 새로운 이름으로 새단장되었다. 종전에는 주로 중년과 노인이 거주하는 낡은 고시원이었지만, 공사 후에는 주로 청년이 거주하는 코리빙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였다. 고시원일 때 월세는 30만 원이었지만, 코리빙하우스로 이름을 바꾸자 월세는 50만 원이 되었다. 시설이 개선되면서 가격이 올랐고, 1인용 매트리스와 책상이 하나 놓인 이 작은 공간의 주인은 노인에서 청년으로 바뀌었다. 노인에서 청년으로 입주민이 바뀌면서 코리빙하우스는 더욱 고요해졌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라 2종근린생활시설 중 다중생활시설에 포함된다. 애초 거주 목적의 용도로 정의된 건축물이 아니다. 그러나 고시원 또는 코리빙하우스의 거주자들은 대부분 주거 목적의 공간으로 사용한다. 주택법상 주택이란 구성원이 장기간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건축물이다. 가난한 노인과 청년에게는 '주택'이 허락되지 않는다. 잠잘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될 뿐이다.
작년 2월 1~2인 가구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대형기숙사(코리빙하우스)라는 형태의 건축물이 건축법상 주택에 들어왔다. 국토부는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맞춰 양질의 주거환경을 갖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임대사업자들은 이 정책이 주차장 면적 기준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통하여 원룸보다 더 큰 수익률을 올리게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 정부 발표 후 유튜브 채널에는 임대형기숙사 투자 노하우를 연구하여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영상이 많이 올라왔다. 수익률이 커질수록 임대형 기숙사를 지을 땅값도 함께 올라갈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노하우'란 결국 최소한의 면적에 최대한 많은 기능을 욱여넣고,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결국 임대주택 사업이 성장한다는 건 점점 청년에게 허락되는 공간이 작아지고, 가격은 오른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서울 구로구의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를 평가하면서 수요층이 유사하고 대체성을 갖는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 시장 특성을 분석한 적이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서 공개하고 있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구로구 소재 다세대주택 전월세 거래 5300여 건을 분석하였다. 최근에 건축된 다세대주택일수록 전유면적이 작아졌다. 전체 다세대주택의 평균 전유면적은 약 45제곱미터(㎡)였는데, 2020년 이후에 건축된 다세대주택 평균 전유면적은 33㎡에 불과했다.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라 업무시설로 분류되는 오피스텔 전월세 7300여 건의 평균 면적은 28㎡였다.
서울시 전체의 2021년도 다세대주택 전월세 데이터 5만6000여 건을 분석해 보면, 2018년 이후 지어진 다세대주택 평균 전유면적은 29㎡이다. 전체 다세대주택의 평균 전유면적인 40㎡보다 현저히 작아졌다. 전유면적 30㎡는 10평 정도로, 방 1개, 잘하면 2개가 나온다. 특히 신축 오피스텔일수록 전유면적 20㎡ 미만의 원룸이 많았다. 화장실과 주방을 빼면 매우 협소한 공간이다.
오피스텔 시행사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닭장 같은 건물을 짓는다. 오피스텔 역시 코리빙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주택 규제를 받지 않아 주거시설로서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2022년 기준 오피스텔 재고는 100만 호 수준이다. 이 중 70~80%가량이 주거용으로 활용되고, 평균가구원수는 1.3명, 가구주 연령은 36.7세다(오피스텔 관련 현황과 제도개선 방안, 2024. 3. 11. 국토연구원). 오피스텔은 청년의 주거시설로 널리 활용된다.
시장조사를 하러 부동산 몇 군데를 들렀다. 부동산 사장님은 전유면적 6평 신축오피스텔 전세로 1억6000만 원을 불렀다. 이것도 하나밖에 안 남았단다. 월세는 마지막 매물 계약이 오늘 끝났다고 했다.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이다. 전세 사기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설이 깨끗한 신축 오피스텔이 귀해서 전세가 잘 나간다고 했다. 매매가격은 얼마인지 물었더니, 정말 싸게 내놓은 물건이라 강조하면서 1억7000을을 말한다. 전세 1억6000, 매매 1억7000이면 깡통전세가 되기 십상인 물건인데도, 이렇게 전세가 귀하다고 한다.
원룸 월세를 알아 보는 두 젊은 여성을 우연히 만났다. 20대 초중반이 됐을까 싶은 젊은이들이다. 사장이 신축 말고 다른 월세방이 있다며 보여주겠다기에 같이 따라나섰다. 젊은 여성들이 경계하는 눈치라 조금 떨어져 따라갔다. 유흥가 모텔 2개를 지나쳐 외진 길을 따라 걸으니 지은 지 10년 쯤 지난 듯한 오피스텔에 다다랐다. 원룸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방 모양이 사다리꼴이었다. 못생긴 땅에 최대한 방을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5평짜리 원룸은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5만 원이었다. 관리비는 10~15만 원 정도 나온단다. 두 명이 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들을 위한 주거 면적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1인 가구 수요에 맞춰 주거 면적이 작아지는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자들이 주거 면적을 최소화해서 공급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청년 수요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 면적이 작아질수록 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청년의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혼인율이 떨어진다. 2015년 이후 초혼연령은 남녀 모두 30세를 넘었고,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2023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태 코호트조사에 따르면 88년생 만 36세 남성의 혼인율은 50%에 미치지 못하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를 기록하면서, 출산율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다. 전 세계에서 합계출산율이 1.0보다 낮은 나라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한국뿐이다.
신축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은 1인 가구가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주거 면적이 작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주택의 전세, 매매가격은 만만하지 않다. 1인 가구용 작은 주택을 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으로도도 사회 초년생이 허덕일 정도다. 자연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는 삶을 꿈꾸기가 힘들어진다. 1평도 안 되는 코리빙하우스에서, 매트리스 하나 놓으면 방이 가득 차는 5평 원룸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계획하기는 어렵다.
감정평가할 때는 실거래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늘 등기부등본을 살펴본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신축 다세대주택. 전유면적 29㎡, 10평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실거래가격 4억1500만 원이 찍혀 있었다. 이 실거래가격은 한국부동산원 공동주택 공시가격 참고 자료에 버젓이 올라가 있었다. 시세로 보아 이 가격의 약 60% 수준인 2억6000만 원으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공시되어 있다. 이 다세대주택을 4억1500만 원에 매수한 이의 주소지는 경상남도였다. 보험회사와 햇살론을 취급하는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소액의 가압류를 조치해 둔 것을 보니 신용불량자인 모양이었다. 같은 건물의 다른 호수들에도 여러 건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되어 있거나, 경매 진행 중이거나, 주택도시보증공사 또는 구청의 가압류가 걸려 있었다. 매수자가 시장분석을 하지 않고 실거래가만을 추종하여 가격을 결정하다 보니 전세 사기꾼이 만들어 놓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그대로 감정가격이 되고, 공시가격이 되며,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기준이 된 것이다. 화곡동 다세대주택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를 보면서, 청년 서민 주거지에 대한 부동산 가격정책이 얼마나 저급한 수준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부동산 가격과 공시가격을 결정하는 기준과 목표와 정책이 없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시가격은 수요분석과 시장분석 없이 사기꾼이 만들어 놓은 실거래가를 추종한다. 부동산 시장분석, 수요분석, 실거래가 적정성 검증, 감정평가 3방식의 적용을 통한 감정평가는 실종된 지 오래다. 감정평가사는 업자들 뒤를 쫒아 다니며 그들이 원하는 가격을 만들어 주는 기술자로 전락했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는 감정평가기법과 규정을 활용하여 사업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데 복무한다.
이 다세대주택들의 임차인은 대체로 90년대생 청년들이다. 고작 6평에서 10평 정도 되는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들어가기 위해 이들은 전세자금대출을 동원하여 3억에서 4억 원이 넘는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전세금은 이들이 저금리시대에 영끌하여 마련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다.
15년 전 강남의 27평 아파트 전세가격은 2억이 채 되지 않았다. 2009년에는 2억 원으로 강남에서 27평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었지만, 2022년에는 강서구의 10평 다세대주택 전세가격이 3억을 넘어 4억 원대가 되었다. 신축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의 면적은 1인 가구 혼자서 겨우 살만할 정도로 작아졌으며, 가격은 방 3개 짜리 아파트보다도 더 올랐다.
2022년에 59억 원에 거래된 반포동 주공아파트 32평의 1971년 최초 분양가는 600만 원이다. 1987년 35평 목동아파트의 분양가는 4500만 원, 95년도 매매가격은 1억5000만 원이었는데, 2022년의 실거래가는 22억 원이었다. 투자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아파트 가격은 노동소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기존 소유자만이 주택을 팔아서 갈아 타기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아파트 하나 장만했던 기존의 소유자들은 모두 늙어가고 있다. 갖고 있는 아파트 외에는 소득이 없는 사람이 많다. 오래되고 비싼 아파트단지마다 노인들만 넘쳐나는데, 정치권은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아파트 가격을 안정화하는 정책을 펼 수가 없다. 청년들은 부모의 집을 물려받거나, 더 작고 더 비싸고 더 위험한 집에 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진정 서민을 위한 적이 없었다.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은 건설사 미분양을 털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임대사업자 등록 정책은 다주택자에게 세제·금융 혜택을 주기 위함이었다. 10년 분양전환 임대주택은 건설 자금을 확보하고, 부동산 경기 하락기를 피해 높은 가격에 분양하는데 활용되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눈에 띄는 대책 두 가지를 보자. 지난 13일 정부는 민간 건설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낼 땅값을 공사비로 갚는 방식의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경기 활황기에 책정된 높은 토지가격과 높은 공사비를 기준으로 분양가격이 책정된다면, 시장성과 분양성이 하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PF대출과 브릿지론의 부실 위험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고분양가로 분양이 안 되면 그 책임은 누가 부담할지에 관한 대책이 빠져 있다. 잘못하면 수익은 민간이, 위험은 공공이 부담하는 결과가 된다.
지난 14일 정부는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을 위한 규제개선과 지원방안을 논의하겠다고도 밝혔다.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을 위해 준비하는 정책은 임대료 규제 완화 방안, 세제·금융 지원 방안이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형 임대사업자의 수익성을 높여주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니 앞으로 임대료는 더 올라갈 것이다. 정부의 셈법은 늘 이런 식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으로 인하여 향후 청년의 주거 여건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 자명하다. 주거 면적은 더욱 작아지고, 임대료는 더욱 오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지원방안이 그리는 미래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수는 5100만여 명. 50년 후엔 3600만 명대가 된단다. 이중 65세 이상이 절반이 된다. 환갑을 지난 이가 나라의 중심 연령이 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시간이 갈수록 좁아지는 임대주택, 오르는 임대료에 그 답이 있다. 청년의 출산·결혼 파업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오히려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으니, 일견 그럴듯한 출산 대책을 내놓은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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