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는 임대인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으로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따라서 임대차관계는 소유권과 사용권이 불일치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는 계약 당사자가 위험을 부담하는 원인이 된다. 임대인 역시 위험을 부담하지만, 대체로 임차인이 부담하는 위험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임차인의 위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전세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대차보증금을 계약 종료 시 돌려받지 못하는 위험이다. 따라서 임차인은 자신이 감당해야할 위험을 방어하고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우리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대항력 요건을 갖추는 일이다. 임대차관계에서 임차인의 주민등록(전입)과 점유(인도)는 대항력을 유지하여 보증금채권을 담보하는 수단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본다.
임차인A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약속된 이사 날짜에 맞추어 이삿짐을 쌌다. 전세보증금은 전세자금대출을 통하여 마련하였고, 전세대출금은 은행에서 곧바로 집주인에게 이체되었다. 그런데 임차인A는 새집으로 이삿짐을 옮길 수 없게 되었다. 기존 임차인이 임대인으로부터 자신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므로 이사를 나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임대인은 임차인A가 전세자금대출로 받은 전세보증금을 종전 임차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 종전 임차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 점유해야 했다. 그 결과 임차인A는 대출로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언제 돌려받을지 기약도 없이 이사할 집이 사라지게 되었다. 임차인은 오히려 이사할 집의 임대인에게 계약금 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임차인B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였다. 임대인이 계약기간 만료 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다 해도 보증기관HUG 등이 바로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다. 임차인은 정해진 법정 기한 내에 임대차계약 만료 후 계약갱신하지 않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통지해야 하고, 임차권등기명령을 받는 등 HUG에서 요구하는 절차를 거치고 서류를 준비하여야 한다. 계약해지통보, 임차권등기명령, HUG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기 번거로웠던 차에,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한 전세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새 임차인이 이사 오고 잔금을 받으면 곧바로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계약서까지 보여주는 임대인을 믿고 임차인B는 임차권등기명령절차를 하지 않은 채로 자기 일정에 맞춰 먼저 이사를 나갔다. 그러나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임차인C는 HUG에 보증금반환을 요청하였으나, 대항력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당연히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었다.
임차인C는 신축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였다. 임대인은 이른바 영끌 신혼부부였는데, 전세보증금만으로는 잔금을 납부하기 어려웠다. 전세금에 은행대출까지 추가로 받아서 겨우 잔금을 납부할 수 있었다. 대출 은행은 당연히 선순위 근저당을 요구했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근저당이 우선순위가 되도록 잠시 전입을 빼줄 것을 요구하였다. 임차인은 선순위 근저당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보다 주택가격이 충분히 높다는 중개사와 임대인의 말을 믿고 은행이 선순위 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도록 협조하였다.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당시의 아파트 가격인 8억 원이었는데, 임대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아파트 가격은 5억 원 아래로 추락하였다. 대출이자도 연체되어 결국 은행에서 경매신청을 하였다. 임차인은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인하여 자신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처했다.
위의 사례들에서 임차인A, B, C는 임차 주택이 점유 가능한 상태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보증금을 미리 지급하거나, 임대인의 말만 믿고 보증금을 돌려받기도 전에 부동산 대항력을 상실하여 담보를 확보하지 못하였거나, 은행에 선순위근저당을 허용하여 스스로 담보를 포기한 셈이 되었다.
민간에만 의존하는 임대차계약이 문제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이처럼 여러 위험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임대주택 계약이 공공이 아닌 민간의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임대차관계는 민법상 채권계약이다. 특별법인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해서 예외적으로 임차인에게 물권에 준하는 강력한 대항력을 부여한다. 최우선변제제도, 임차권등기명령제도 등도 도입 되었다. 청년전세임대제도, 주택기금 등 공적 자금을 활용한 저리의 전세자금대출이 도입됐고, 임대보증금보호를 목적으로 임대보증보험제도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결국 채권계약인 임대차계약에 물권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복잡한 내용이다 보니 다양한 양태의 부동산 임대차관계에서 일반 국민이 계약의 의미를 이해하기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임차인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임대인에게도 임대차계약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일반적으로 임차인보다는 임대인이 훨씬 더 부동산 관련 지식이 많다. 따라서 통상 임대인이 더 유리하다. 임차인 권리는 쉽게 보호받기 어렵다.
특히 주로 서민 청년의 주거지인 3억 미만 중저가 주택, 즉 저층주거지의 임대차관계로 인해 서민이 겪는 피해가 문제다. 주택 임대차계약에는 주택 관리의 문제, 주택 하자의 문제, 불충분한 계약 내용 등 다종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데, 주택 자산 수준이 크지 않은 임대차 당사자들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큰 비용을 들이기 어렵다. 때문에 중저가 주택 임대차 분쟁은 법률전문가들에게도 외면받는 시장이다.
더구나 저층주거지는 쉽게 투자 대상이 되지 않는 만큼, 주택가격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적다. 이 때문에 저층주거지에는 중저가 주택시장 정책이 없는 상태에서 주택가격 분석과 기준 없이 단편적인 정책이 남발됐다. 대표적인 대책이 임차인 전세자금조달과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전세자금대출, 전세보증보험제도와 임대주택공급을 위한 등록임대주택 세제혜택 등이다. 이는 정책 목표와 달리 되레 저층주거지 가격을 올려 임차 서민에게 피해를 야기했다. 임차 서민을 노린 이들이 의도적으로 저층주거지 매입에 나서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혜택을 누리고 집값은 띄웠다. 결국 저층주거지 주택시장마저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무주택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근본적으로 민간 임대차시장의 계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봉책이 줄을 이은 결과, 여러 정부가 내건 대책의 핵심은 결국 전세자금 대출 규제 완화로 귀결됐다.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조달하는 것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공적기금을 동원한 전세자금대출이 도입됐으나, 이는 결국 집주인 주머니로 들어가 전세 가격을 더 높이고 임차인이 더 큰 빚을 지게 만들었다. 임차인 전세보증금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어설픈 보증보험제도 또한 부동산가격을 높이고 임차인의 위험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 논란이 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서도 이 문제를 볼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된 임차인에게 정부가 지원한 주된 혜택은 주택구입 시 저리 대출, 대출 확대와 취득세 감면 등의 세제혜택이다. 지난 1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신년 부동산정책에서 민생대책으로 내놓은 것 또한 소형주택에 대한 대출 확대와 취득세 감면이었다. 임차인보호정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은 다주택을 장려하고, 가계대출을 확대하여 부동산 가격을 부양하는 정책이다. 임차인을 지원하는 명목의 정부정책과 정책자금은 겉으로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지원금은 임차인을 스쳐서 임대인과 땅주인, 부동산업자에게 흘러들어 부동산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공공주택공급을 외면하고 세금과 공공기금을 임차인에게 쏟아부어봤자 그 돈은 민간사업자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 집값과 땅값을 올리고 임차인의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 해답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인데 이를 외면하고 사적계약 위주의 임대차시장을 그대로 두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주택공급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때가 되었다. 적어도 영세 서민 임차인이 주로 거주하는 저층주거지는 공공임대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저층주거지에는 거주민 소득수준에 맞는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이런 지역은 당연히 대규모 개발방식으로는 사업성이 없다. 높은 분양가로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물가 시대에 고분양가로 분양하기 어려운 지역의 사업성은 점점 더 떨어진다.
저층주거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거주민의 소득으로 감당가능하도록 가성비 있는 관리와 정비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의 몫이지, 시장에 맡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에 임대주택이 많아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저층주거지를 재개발해 신축아파트가 들어와야 소득수준이 높은 주민이 유입된다. 즉 기존 거주민을 몰아내면, 공공기여로 기반시설이 정비되고 취득세 등 세수 확대 효과도 얻는다. 지자체는 이를 노린다.
따라서 대규모 개발로 인한 저층주거지 소멸은 결국 저소득층 주거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주거 생태계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다. 저층주거지 거주민의 삶을 조금 더 밀착해서 들여다보고, 이들의 생애주기 눈높이에 맞추어서 복지정책과 부동산정책, 일자리정책, 공공토지비축과 주택공급 정책을 결합하는 창의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연일 속도감 있는 주택공급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주택공급은 누구를 위한 공급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은 기존 주택, 토지 소유자들의 자산가치를 올려주고 집값을 더 올릴 뿐이다. 이제 산업화, 도시화, 고성장, 인구폭발의 시대가 아니다. 주택을 구입해서 깔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자산가격이 상승하여 자산이 축적되는 시대는 끝났다. 저성장, 도시공동화, 인구감소, 저출산 고령화의 시대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시대가 변했으면 정책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한 기성 정치인들과 부동산 관료들은 아직도 고도성장 시대의 꿈길에서 헤매고 있는 듯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세사기, 임대차문제는 결국 오랜 기간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소홀히 하고, 주택문제를 개인 간의 사적 계약의 영역에 방치하였기 때문에 발생했다. 서민거주지인 저층주거지 정책은 실패했다. 거주민과 청년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사업 일변도의 정책 역시 문제다. 이제 빚내서 집 사고, 집 사면 집값 올라서 돈 벌었던 시대의 달콤한 환상에서 모두가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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