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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를 가르는 '죽음의 철도', 그 죽음을 숨긴 야스쿠니의 C56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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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를 가르는 '죽음의 철도', 그 죽음을 숨긴 야스쿠니의 C5631호

[도쿄 야스쿠니에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까지] ① 불행한 과거를 봉인한 채 빛나는 증기기관차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을 연재 하고 있는 자칭·타칭 '철도 덕후' 사회공공연구원 박흥수 철도 전문위원은 지난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 태국 철도 답사를 다녀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철도 노선으로 불렸던 시암 – 버마 철도 구간 중 현재 남아 있는 방콕 – 남톡 구간을 달리며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 공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역사의 한 부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동아공영권의 울타리를 철도로 달린 그 이야기를 <도쿄 야스쿠니에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까지>라는 부제로 몇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이번 여행은 우연한 독서로 시작되었다. 무더위로 몸과 마음이 흐느적거리던 지난해 8월,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철도가 배경인 소설과 마주쳤다. 시간을 끌 것도 없이 새로 적응 중인 전자책 단말기로 내려받았다. 61년생 호주 출신 작가인 리처드 플래너건(Richard Flanagan)은 아버지의 전쟁 포로 경험을 바탕으로 끈질긴 취재와 집필 끝에 12년 만에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하 좁은 길)>을 완성했다.

<좁은 길>은 오스트레일리아 군 의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도리고 에번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빠져버린 사랑, 별다른 사건 없는 전쟁터에서 갑자기 포로가 되어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겨우 살아나온 삶의 여정이 미니시리즈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이 소설은 2014년 지금은 부커상으로 이름이 바뀐 "맨부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도리고 대령이 포로 생활을 했던 곳은 시암-버마 철도 건설 현장이었다. 말레이반도를 따라 올라와 방콕 서쪽에서 북으로 이어져 버마까지 연결되는 철도 노선이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방콕 북서쪽 도시 깐짜나부리에 있다. <좁은 길>을 읽고 난 뒤에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만난 것이 <레일웨이 맨>이다. 책은 품절이었지만 다행히 중고서점을 이용해 구할 수 있었다.

<레일웨이 맨>이 내게 더 특별했던 이유는 소설이 아니고 실제 참전 군인인 에릭 로맥스(Eric Lomax)의 수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 생생하게 옛 포로 수용소 한복판으로 독자를 이끈다. 같은 현장에서 있었던 사건을 하나는 픽션으로 다른 하나는 논픽션으로 접하고 난 뒤에는 종종 저가 항공권 검색 앱을 열어 태국 항공권 가격을 탐색했다. 주변에는 태국행이 예정되어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렇게 떠벌이는 이유는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행위이기도 하고 동행을 모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여행 패턴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 태국하면 떠오르는 가성비 높은 호텔에서 쉬면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대신 주로 기차를 타고 하루 2만 보씩 걷게 될 수 있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주변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여행 경로를 잡아 나갔다. 시암은 태국의 옛 이름이다. 흔히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말레이반도, 시암. 버마, 인도차이나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80여 년 전 일본이 설정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범주 안에 있었다. 20세기 초반 일찌감치 식민지로 삼은 조선을 발판으로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동아시아까지 손에 넣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엄청난 확장이었다. 가까운 과거였는데 놀라울 정도로 실감하지 못했던 역사였다.

▲야스쿠니 전쟁박물관에 사진으로 남아 있는 태평양전쟁 시절 태국 버마 철도노선 운행당시의 C5361호 증기기관차 모습 ⓒ박흥수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유슈칸 1층에 전시된 C5631호 증기기관차 태평양 전쟁 시절 태국 버마 철도노선을 달렸던 기관차였다. ⓒ박흥수

1943년 10월 25일 C5631호가 개통식에 참석한 일본인과 태국인 귀빈들을 객차 3량에 태우고 죽음의 철로를 달렸다. <좁은 길>에서는 이 장면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열차가 죽음의 철로를 처음 달렸을 때, 그 바퀴 밑에는 공사 중에 스러진 사람들의 뼈가 한없이 깔려 있었고, 그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인 구천 명 중 삼분의 일의 유해도 포함되어 있었다." 죽음의 철로는 말 그대로 인간을 갈아 넣어 만든 철도였다.

미츠비시 중공업과 히다치, 닛폰차량을 비롯해 일본 주요 열차 차량 제작사에서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모두 164대가 생산된 C56계열의 증기기관차는 1호부터 90호, 161호에서 164호를 포함해 95대가 2차대전 당시 동아시아 지역을 달렸다. C5631호는 기관차가 잘 관리 되었는지 태국 – 버마 철도 노선 공사 중 완공된 부분의 시운전을 도맡아 했다.

다시 <좁은 길>로 들어가 보자. "이 신사에는 증기기관차 C5631호 외에 봉안자 명단도 보관되어 있다. 1867년부터 1951년 사이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백만 명 이상의 명단이다. 이 신성한 신사에 봉안되는 것은 모든 사악한 행동을 면죄 받는다는 뜻이다. 그 많은 이름 중에는 이차대전 이후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된 천예순여덟 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 일부는 죽음의 철로 공사에 관여했으며, 나중에 전쟁포로 학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증기기관차 C5631 앞에 붙어 있는 설명문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23년 10월, JR동일본 여객철도 노동조합과의 교류차 도쿄에 방문했을 때 공식 일정을 마무리 지은 다음 개인 시간을 내 야스쿠니를 찾았다. 야스쿠니 전쟁박물관인 류슈칸 1층에 전시된 C5631호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철도 연구를 위해 여러 차례 일본을 드나들었지만 야스쿠니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가끔 일본 친구들과 차를 타고 야스쿠니 근처를 지날 때 일본인 친구들이 "저게 야스쿠니에요"라고 말해주면 그런가 보다 했던 장소였다.

야스쿠니 신사 입구에 섰을 때 도쿄 도심에 이토록 크고 조용한 신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종종 방문했던 번잡한 서점 거리 진보초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신사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 입구 역할을 하는 대형 구조물이 서 있다. 전국 곳곳 신사에 있는 도리이라고 불리는 기둥문이다. 그중에서도 야스쿠니의 도리이는 거대하기로 유명하다. 제1도리이는 2019년 1월 높이 25미터 중량 100톤에 이르는 기둥문으로 개보수 됐다. 야스쿠니 신사 본관 앞에 서 있는 제2도리이는 한 때 일본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청동 도리이로 15미터 높이에 달한다. 메이지20년(1887년)에 일본 최대 군수 공장이었던 오사카 포병공창에서 주조됐다. 초입부터 군국주의의 향이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휴일을 맞아 신사를 찾은 시민들은 이 구조물 아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인 뒤 본관으로 향했다.

▲휴일 오전 야스쿠니를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일본 시민들. ⓒ박흥수
▲야스쿠니 신사 앞의 제1기둥문 ⓒ박흥수
▲야스쿠니 신사 앞의 제2기둥문 ⓒ박흥수

야스쿠니 신사 본관 앞에서 참배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본관 앞에 서서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갖췄다. 참배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하나하나 만나면 좋은 사람들도 집단이 되면 괴물이 되기 쉽다.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는 맹목적 국가의 관념이 인간의 뇌를 지배할 때다. 야스쿠니가 일본인들에게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발걸음을 야스쿠니 전쟁 박물관으로 옮겼다.

유슈칸에 다가갈수록 1층 대형 전시실에 자리 잡고 있는 검은색 증기기관차가 크게 보였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태평양 전쟁 시절 활약을 펼쳤던 전쟁 기계들이 말끔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 옆으로 C56계열의 31번째 생산 기관차인 C5631호 증기기관차가 육중한 몸체를 자랑하듯 서 있고 그 옆에는 대포 2문이 포신을 세운 채 도열해 있다. 대포의 오른쪽 앞에는 일본이 자랑해 마지않았던 해군 전투기 제로센이 날개에 붉은색 원을 얹은 채 주기되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가 제로센 전투기의 완성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창공을 날아디니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전투기를 만든다. 순수한 꿈의 결과는 해군과 육군 비행대가 요구하는 기체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일본사람들은 제로센 전투기가 자랑스러운 과거였을지 몰라도 이 전투기들은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대였다. 게다가 전쟁 말기 가미카제란 이름 아래 일본의 젊은이들을 자살특공용으로 소진시켰던 기체였다.

천왕과 침략전쟁에 나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광기가 평범한 사회정신으로 추앙되고 통용됐던 시대를 추억하는 전시실이라니,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천왕과 군대가 강조했던 것은 왕에 대한 충성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었다. 생명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고 역사에 대해 무지하며 정치적 사욕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자들이 애국심을 강조할 때, 이때 발현되는 애국심은 가장 저열한 정치이념으로 변질되어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 애국심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무작정 힘을 과시하자거나 전쟁 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의 손에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이 사로잡히게 되면 비극이 시작된다.

천천히 C5631호 기관차와 안내문들을 둘러보았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커넥팅로드에 연결된 거대한 6개의 동륜이 거인의 다리처럼 기관차를 지탱했다. 석탄과 물을 채우면 당장이라도 기적을 울리며 달릴듯한 모양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한 후 태국에 남겨졌던 C5631호는 태국 국철에서 운행되다 1979년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좁은 길>에서 밝혔듯이 C5631호를 설명하는 안내문 어디에도 이 기관차가 달린 노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기관차, 대포, 비행기는 2차대전 당시 중요한 전쟁 수행 기계였다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1층에 도열한 무기들 ⓒ박흥수
▲근대 일본 항공산업의 총아이자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공중 전력의 상징이었던 제로센 전투기. 오른쪽 날개 붉은 원 위에는 전시장 밖에 서있는 가미가제 특공용사 동상이 보인다. ⓒ박흥수

안내문의 문구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한때 영국군이 건설을 구상했지만 단념한 것으로, 험한 지형과 열대 기후 등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지 주민 등 약 17만 명이 종사해 1년 3개월이라는 경이적인 공사 기간을 거쳐 쇼와 18년(1943년) 10월에 개통했다."고 자랑하듯 쓰여 있다.

시암-버마 철도는 태국 농프라독(Nong Pladuk)에서 버마 탄부자얏(Thanbyuzayat)까지를 잇는 415km 구간이다. 19세기 영국인들이 태국 아유타야 시대에 미얀마 태국 국경에 만들어진 세 개의 사리탑 이름을 따 Three Pagodas Pass라는 이름으로 철도건설을 시도했으나 험난한 지형 조건으로 포기했던 곳이었다. 1942년 버마를 침공한 일본은 자원 약탈과 군대의 보급을 위해 철도가 필요했다. 1942년 노선의 양 끝에서 공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일본조차 5~6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공사를 책임진 것은 전쟁자원 확보에 눈이 먼 일본군이었다.

일본군은 이미 경의선 건설 경험을 통해 철도 속성 건설에 대한 노하우를 갇고 있었다. 일본군은 경의선을 러일전쟁 승리의 핵심 인프라로 여겼다. 러일전쟁 개전 보름 만에 조선정부로부터 부설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은 철도부설을 위해 만든 임시군용철도감부 소속 철도 대대를 앞세워 경의선 건설에 나섰다. 1904년 3월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4월 청천강, 대령강 두 철교를 제외한 전 구간을 완공해 용산-신의주간 연락운전을 시작했다. 총길이 499km를 1년 조금 넘는 기간에 건설을 끝냈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선로 마디마다 침목 하나마다 조선인들의 피와 원한이 깔린 길이었다.

일본군은 초속성 공사 작전 개념을 도입해 16개월 만에 공사를 완료했다. 영국조차 난공사로 포기했던 구간을 지형이 험난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공사 소요 기간을 몇 배나 단축시켜 완공했다면 그 공사는 지옥의 공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6만명의 연합군 포로와 20만명 이상의 동남아시아인이 강제노동에 투입됐다. 공사에 투입된 인력의 1/3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 속 말라리아와 이질이 들끓는 정글에서 하루 18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는 현장이었다. 살아남는 게 기적인 환경이었다.

전시실에 공개된 현장 공사 사진 속 설명은 가관이었다. 암반 폭파를 위한 사전 작업 광경을 보여주는 사진에는 폭파작업이 일본 병사의 손에 의해 진행되어 무사고로 완료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안내문만 읽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공사에 자발적으로 대량 참여했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했던 것처럼 보인다. 사실 왜곡을 넘어 미화하고 있다. 철도건설 행위가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자 건설에 나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야스쿠니 전쟁박물관을 찾는 일본인들은 대포들과 제로센 전투기, C5631호 증기기관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때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호령했던 국가의 화려한 과거를 떠올릴까?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는 게 역사적 사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제된 채 열려있는 야스쿠니 전쟁박물관의 모습은, 그 평온한 겉모습과 달리 무섭기만 하다.

박물관을 나오면 입구 한쪽에 가미가제 특공 용사의 동상이 서 있다. 전투기 조종사 복장의 청년이 늠름한 자세로 두 손을 허리에 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 동상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 전혀 없다고 웅변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미래가 더 어두운 건지도 모르겠다. 야스쿠니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입구 야외 마당에 서있는 가미가제 특공용사 동상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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