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선거제도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정해졌다. 이 제도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현행 선거제도다. 병립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했지만, 연동형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지난번에는 총 47석 중에서 30석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캡'을 씌웠는데, 한시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47석 비례대표 전체가 준연동형으로 적용된다.
선거제도가 결정되고, 또 민주당이 준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여러 해석과 평가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연동형 선거제도가 일단 지속되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또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이냐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모두 일정하게 타당한 지적이다. 선거제도가 확정된 지금,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민주당의 기득권 여부가 정당의 성격을 결정한다
먼저 이재명 대표가 발표한 비례연합정당이 위성정당일까 아닐까? 답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공식 발표에서는 '통합형 비례정당'과 '준위성정당'이라는 두 가지 표현을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둘의 간극은 매우 넓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위성정당은 그 표현대로만 보면 지속적으로 특정 행성의 중력장 안에 있으면서 주위를 돌고 그 영향력을 벗어나지 않는 정당이다. 나쁘게 말하면 '어용 정당'이고,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비하하는 맥락에서 '2중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현재의 맥락에서 민주당이나 야권에서 추진하는 비례연합정당은 항구적인 위성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서 추천한 비례대표는 민주당으로 돌아간다. 나머지 당선자들은 독립적인 연합정당으로 남을지, 개별정당으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항구적인 '자매정당'이 아니라 일종의 선거연합이다. 유럽에서는 전국적 수준에서 모정당이 있고, 지방선거 등에서는 자매정당들이 활동하기도 한다. 이 정당들이 자매정당인 것은, 선거가 끝날 때마다 모정당에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군'으로서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 정당들은 자매정당이면서 위성정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비례연합정당은 선거 때만 존재한다. 선거 이후에는 한쪽은 아예 통합되고, 다른 쪽은 별개의 정당(혹은 연합)으로 남는다. 교섭단체 요건이 낮아진다면 과거에 정동영-노회찬이 손을 잡았던 것처럼 하나의 교섭단체로 다음 국회 임기 동안 활동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례연합정당이 위성정당이냐 아니냐를 선거 이후의 상황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비례연합정당이 위성정당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선거 시기에 국한된다. 그래서 핵심은 이 정당의 창당과 공천 과정일 수밖에 없다. 지난번 총선 때의 위성정당 논란과 비교해본다면, 특정한 정당이 주도하거나, 또 특정 정당이 과반 이상의 비례의석을 차지한다고 하면, 위성정당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후보를 정하는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정당의 비례대표 순번이 소위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 정당 간 지루하고 볼썽사나운 힘겨루기로 정해진다면, 아마도 국민들이나 언론들은 이 정당을 납득할 수 있는 선거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정당들이 일정한 추천권만을 갖고 국민배심원제 같은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한다면, 선거연합의 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요컨대 그 여부는 주도권을 쥔 민주당에게 달려있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는지에 따라서, 이 정당은 '통합형비례정당'이 될 수도 있고, 준위성정당을 넘어 '사실상의 위성정당'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평가는 분명히 이 정당의 득표율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갖기를 원하면서 위성정당에 가까운 모델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에서 가능한 수준의 연합정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을지가 변수다.
제도 왜곡의 이유는 정당이나 유권자 때문이 아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어쨌거나 현재의 제도가 위성정당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기존 병립형에 비해서 양당의 기득권을 별로 줄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에 높게 평가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평가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각 정당이 득표한 비율에 따라 의석 배분의 다양성과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위성정당들이 출현하면서 양당의 비율 점유율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져서 무려 94%를 넘어섰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정치적 양극화와 팬덤정치의 강화다. 여야 간 초당적 협의나 협력은 아예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다음으로는 한국정치의 한 축인 보수정당이 지난 총선과 이번 총선에서 모두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일관되게 연동형 선거제도가 유지된다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보수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비난을 받지 않는다. 이 점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억울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한쪽은 당당하게 위성정당을 만드는데,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보다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지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당헌당규를 바꿔서 국민의힘과 같은 가치를 지향하면 된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는 완전한 연동형도 아니고, 위성정당의 출현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은 잘못된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선거제도가 왜곡된 가장 큰 이유는, 각 정당들의 이기심이나 유권자들의 평가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핵심적 문제는 부족한 비례대표 정수
현행 선거제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례대표의원 정수다. 47석이라는 현재의 비례대표 제도로는 연동형 선거제도를 시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성정당이 출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 100석, 비례대표 100석의 의회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완전 연동형 제도를 적용하여 A정당이 50% 득표를 받았다면, 이 정당은 비례대표에서도 일정한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 정상이다. 비례대표를 한 석도 못 얻는 경우는 이 정당이 지역구를 한 석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이겼을 때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40%를 득표했다고 하면 80석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 때도 이 득표율로 지역구에서 80%의 의석을 다 차지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연동형 제도를 통해 정당들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적절히 나누어 의석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현재 우리 병립형 선거제도에서는 총 300석 중 지역구가 253석, 비례대표가 47석이다. 만약 한 정당이 40%를 득표한다고 하면 총 120석을 가져가야 하는데(지난 총선에서 두 정당의 득표율은 각각 33.8%, 33.4%에 불과), 이 정도만 되어도 이미 그 비율을 넘어선 지역구 당선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양대 정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사실상 비례대표에서 당선자를 한 사람도 내기가 어렵다. 이것이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양대 정당이 지역구에서 과도한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원론적인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두 정당이 비례대표를 전혀 배출하지 못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제도의 특성상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전문성을 갖춘 국가적 아젠다를 다룰 국회의원들은 어느 정도 비례대표를 통해서 뽑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지역구 출마를 망설이는 후보자들에게도 양대 정당은 아무런 제안을 할 수 없게 된다. 소위 '인재 영입'의 문이 매우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양대 정당의 모든 의원들이 지역구 의원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정당의 정책적 전문성이나 조직적 유연성에서 볼 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결국 양대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일정한 득표를 하면 비례대표에서도 최소한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는 2가지 제한을 적용했다. 하나는 연동율을 50%만 적용하는 것, 둘째는 그나마 30석에만 캡을 씌운 것이다. 나머지 17석은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다. 제도 자체의 취지를 달성하는 것을 과도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에 위성정당까지 생겼으니, 지난 총선은 애초의 취지가 누더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분명하다. 연동형 제도가 취지에 맞게 작동하려면 의석수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많은 정치학자들이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200:200 정도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제안한다. 만약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는다면 200:100 정도로 2:1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하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지역구를 줄이기 어렵다고 한다면 최소한 225:75석 정도가 마지노선이라고 말한다. 지역구 축소가 어렵다면 정수를 50석 늘려서 250:100으로 조정하자는 것이 국회의장의 제안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국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야권의 비례연합정당이 다음 총선에서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완전한 연동형 제도를 통해서 위성정당 없이도 모든 정당이 일정한 비례대표 의석을 가질 수 있도록 선거제를 개혁하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이 제도를 반대하는 보수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보수정당이 정략적인 이유로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할 수 있겠지만, 당내의 압박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는 제도
사실 지난해 4월, 선거법 확정 법정시한을 준수해서 야당이 연동형제도를 결정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처럼 선거법이 정치적 부담이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위성정당 논란이 생긴다면 지난 가을 정기국회에서 위성정당방지법을 통과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정치적 쟁점이 되어서 야당들에게 훨씬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위성정당방지법이 대통령에게 거부당한다면, 지금처럼 시간에 쫒기면서 위성정당 논란에 휩싸이지 않고 훨씬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근차근 야권연합정당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수준에서라도 준연동형 제도가 살아남기를 바란 개인적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먼저 지금 대한민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거대한 위기들, 인구소멸, 지방소멸, 기후위기, 산업전환과 같은 이슈들을 제기하고 다룰 수 있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몇 명이라도 배출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 일정한 수의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지 않으면 현행 선거제도를 다시 앞으로 밀어낼 힘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준연동형 제도의 부작용 때문에 한번 병립형으로 후퇴하면, '연동형' 제도는 실패한 것, 나쁜 제도로 역사에 기록되고 만다. 그러면 아마도 10~20년 안에 선거제도의 개혁을 다시 시도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대체로 그 앞길은 진흙탕이고 여럿이 넘어져서 뒹굴고 몸을 더럽히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다시 마른 땅을 찾아서 뒤로 돌아간다면, 영원히 제자리에 머물게 되고 만다. 그 자리에 머물러서도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저 앞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현행 선거제도를 통해 형성되는 국회를 통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제도는 결정되는 과정도 시기도 모두 문제가 많았다. 앞으로 야권의 비례연합정당이 어떤 모양새로 생겨날지도 불투명하다. 이런 시행착오를 다음에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오늘의 현실에서 더 나은 방법을 조금이라도 더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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