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남북관계와 위태로운 한반도 평화를 재설정하려면,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미래를 향해서만은 안 된다. 과거를 제대로 복기할 수 있어야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말에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한) 정권이 10여차나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왔다"며 흡수통일을 시도한 것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진단은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의 인식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김정은이 남한의 보수 정권뿐만 아니라 민주(진보) 정권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저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고, 앞선 글들에서도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 본 글에서는 보수든 민주(진보)든 남한의 역대 정권이 흡수통일을 추구해왔다는 김정은의 진단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남북대화가 본격화적으로 시작된 1990년 이래 한국의 역대 정부가 흡수통일을 공식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았다. 다만 보수 정권으로 분류되는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내심으론 흡수통일을 도모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진보 정권으로 일컬어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기조로 '흡수통일 배제'를 내세웠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민주' 정권도 흡수통일을 도모했다는 김정은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30여년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남북한은 한편으로는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로 합의하고는 점진적·단계적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분단 이후 최초로 열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선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후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기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미동맹의 작전계획과 이를 연습하는 한미연합훈련에 유사시 무력 흡수통일 방안도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연합훈련
당초 한국전쟁 직후에 마련된 작전계획은 북한의 남침시 북한을 38선 이북으로 되돌리는 방어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미국은 1973년 '전진 방어(Forward Defense)' 전략을 채택해 유사시 북한의 개성까지 점령하는 방향으로 작전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그리고 1992년에 개정한 작계 5027에는 유사시 한미 해병대가 원산 상륙작전을 펼쳐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에 나선 한미 보병과 함께 평양을 포위하는 개념이 포함되었다.
또 1994년 2월초 북미 간 핵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한반도 유사시 단시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통일한다는 '작전계획 5027-94'가 언론에 공개됐다.
이 계획에 따르면 1단계로 신속전개가 가능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2단계로 북한의 서울 이북 남침을 저지하는 것과 함께 북한의 후방을 파괴하며, 3단계로 북한의 주요 전력을 격멸시키고 원산 등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한 이후, 4단계로 평양을 고립시키고 점령지역에서 군사통치를 실시하고, 마지막 5단계로 한반도를 한미동맹의 주도하에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작계 5027상의 또 한 번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점은 1998년이다. 이 개정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의 작계가 주로 북한의 남침을 상정한 것이라면, 5027-98에서는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가 포착될 경우 북한의 포병 부대와 미사일, 공군기지 등을 선제공격을 통해 파괴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4년 개정판에는 '한반도 우발 상황'에 대한 새로운 개념 규정이 포함되었다. 이전까지 5027이 적용되는 '우발(contingency) 상황'은 북한이 남침을 하거나 확고한 남침 징후가 포착되었을 때를 의미했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북폭을 단행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보복 공격에 나서는 상황도 우발 상황에 포함시켰다.
이와 관련해 이준 당시 국방장관의 2003년 1월 16일 국회 국방위 증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 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우리 군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우발 상황'에 북한급변사태론도 포함됐다. 2008년 8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뇌관련 질환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그 계기였다. 한미연합사가 범주화한 북한급변사태에는 대량살상무기 유출, 쿠데타 발생, 대규모 민중 봉기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유고도 포함됐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이러한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북한을 안정화하고 통일을 달성한다는 작계를 수립했고, 이를 언론에 공공연히 흘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 징후 포착시 명령권자인 북한 지도자를 제거한다는 '참수작전'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보수정권이나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앞서 소개한 작전계획 및 연합훈련의 공세적인 변천은 진보·보수 정권과 관계없이 이뤄졌었다.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문재인 정부가 참수작전과 선제공격 같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언급을 자제한 것은 맞다. 또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로 실시했던 연합훈련의 규모와 기간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이 있었다. 정치적 표현은 완화되었지만, 군사력의 구성은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참수작전은 주로 박근혜 정부 때 거론되었지만, 그 군사적 능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구비되기 시작했다. 유사시 북한 전쟁지도부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임무여단'은 2017년 12월 1일 창설됐다. 북한 지도부 참수작전 및 북핵 선제타격의 핵심 전력으로 거론되었던 F-35 40대 도입도 박근혜 정부 때 결정되었지만 도입 및 전력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본격화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8월에 실시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까지 포함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유사시 북한 점령 훈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필요한 개념 및 전력도 크게 증강시켰다. 미래합동작전개념과 입체기동부대 창설이 바로 그것이다.
입체기동부대는 공중에서 투입되는 공정사단, 지상에서 진격하는 기동군단, 해상에서 투입되는 해병대로 구성됐다. 유사시 이들을 동시에 투입해 평양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것이 미래합동작전의 요체인 것이다.
이를 주도한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인 송영무는 이러한 능력 및 개념 마련이 자신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체결한 9·19 남북군사합의의 서명 당사자였다.
이러한 조치들의 시기도 큰 문제였다. 혹자들은 비핵화의 전망이 불투명했던 만큼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국방예산을 8.8%나 올리기로 한 시점은 2018년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한 직후였다.
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대규모 전력 증강에 기반을 둔 '국방개혁 2.0'을 재가한 시점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2019년 1월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단을 약속했던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한 것도 '하노이 노딜' 3주 후였고, 2019년 판문점 번개팅에서 트럼프가 중단을 거듭 약속했던 연합훈련이 8월에 또 강행됐다.
이 사이에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만나서는 평화의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서는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고 첨단무기를 도입하는 이상한 행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연합훈련은 세계 최대 규모로 실시되고 있고, 군비증강의 고삐도 더욱 당겨지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한국의 군사력은 역대 최고 순위인 세계 5위로 올라섰다. 또 북한의 핵사용 징후시 선제공격에 나설 수 있고, 북한의 핵사용시 "북한 정권 종말"도 공언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방안도 수립하겠다고 한다.
성찰의 지점들
이렇듯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과 군사전략을 포함한 국방정책 사이의 엇박자는 너무나도 컸다. 특히 진보정권 때 그러했다. 그리고 이러한 엇박자는 한미동맹의 비정상적인 구조, 특히 한미연합사의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전작권을 가진 미국은 작계 수립과 개정, 그리고 이와 연동된 연합훈련 주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전작권을 가져야 한편으로는 자주국방에 다가서고, 다른 한편으론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보수 진영의 정략적인 선택이 발목을 잡고 만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4월에 돌려받기로 한 전작권 환수 시기를 2015년으로 미뤘다. 뒤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을 뒤집고 또 다시 전작권 환수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시기도 정하지 않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자고 미국에 제안해 이를 관철시켰다. 왜 그랬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보수 진영이 전작권 문제를 '반(反) 노무현'의 관점에서 바라봤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다고 하지만, 만약 한미가 합의했던 대로 2012년이나 2015년에 전작권을 환수했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9년에 남북관계가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넌 데에는 북한과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했던 문재인 정부가 역대급 군비증강에 나서고 트럼프가 중단을 거듭 약속했던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한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전작권 환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하여 중장기 대책의 핵심은 30여 년 간 노정되어온 대북정책과 국방정책 사이의 커다란 엇박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에 유사시 무력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내용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요한다.
이는 전작권 전환과 관계없이 한미가 머리를 맞대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작계와 연합훈련에 포함된 선제공격론과 무력 흡수통일론은 '과거의 북한'을 상대로 한 것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이 북한 붕괴로 이어질 수 있고, 또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선제공격과 무력통일을 통해 핵개발의 역량과 주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북한은 '가난에서 탈피하는 핵보유국'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한국군과 함께 북한 점령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이렇듯 북한과 미국은 크게 달라졌는데, 한국이 무력 흡수통일론을 고수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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