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너무 많이 버는 은행업
특정 산업의 과도한 이윤이 정책 이슈로 떠오르고 나아가 입법 과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물론 특정 산업의 높은 이윤 수준과 그 배경이 언론의 관심을 받은 적은 가끔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그것이 입법 논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은행의 특별 이윤에 횡재세를 매기자는 최근의 논의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이는 은행들이 올리고 있는 이윤율 수준이 그만큼 예외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3월에 발표한 <2022년 국내 은행 영업실적> 자료에 따르면 일반은행(특수은행 제외)의 2022년 당기순이익은 13.4조 원으로 2021년의 10.1조 원보다 3.3조 원이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32.7%이다. 이에 따라 일반은행의 자기자본 순이익률(ROE)도 2021년의 7.06%에서 2022년에는 9.02%로 1.96%p가 증가했다. 여기에서 자기자본 순이익률이란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인데, 수익성을 재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2021년 국내 은행 영업실적>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도 당기순이익은 앞선 해의 8.7조 원에서 1.3조 원이 증가했고(비율로는 15.4%) 자기자본 순이익률도 6.55%에서 0.51%p 높아졌다. <2023년 상반기 은행 영업실적> 자료는 은행업 이익의 증가세가 올해에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을 보여준다.
은행들이 너무 큰 이윤을 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은행들의 이익단체인 전국은행연합회는 올해 8월에 <은행 산업 역할과 수익성>이라는 보고서를 내서 우리나라 은행들의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보고서는 그 근거로 우리나라 은행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주요 나라들이나 다른 산업에 비해서 낮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22년까지 10년 동안 은행산업의 평균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우리나라가 5.2%인데 비해, 미국은 10.2%, 캐나다는 16.8%, 싱가포르는 10.8%였다. 우리나라의 은행산업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미국 등 주요 나라 은행들의 절반 또는 그 이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평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산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낮다. 예컨대 2013~2022년의 평균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증권업은 6.7%, 보험업 6.8%였고 비금융업은 6.2%였다.
은행연합회 보고서가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주의 깊게 더 따져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 은행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실제로 다른 나라들보다 낮은가 하는 점이다. 은행연합회 보고서는 은행업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의 수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의 이 비율이 마치 낮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금융경제연구소가 세계은행 <데이터베이스>의 가장 최근 자료를 이용하여 2021년 기준의 은행업 자기자본 순이익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캐나다 14.9%, 미국 12.9%, 우리나라 7.0%, 영국 7.0%, 프랑스 6.7%, 일본 3.6%, 독일 1.0%, 스위스 0.2%였다. 이 수치들에서,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영국이 은행 중심 금융제도의 여러 요소들을 여전히 간직한 일본, 독일보다 비교적 더 높은 자기자본 순이익률을 나타내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금융경제연구소의 조사는 2021년 수치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은행연합회 보고서의 미국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수치의 추세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곧, 우리나라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주요 나라들에 비해 결코 낮다고 얘기할 수 없다.
둘째, 다른 산업과 비교해서도 은행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낮은 편이 아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2013~2022년의 평균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은행업은 5.2%이고 비금융업은 6.2%이다. 이 수치만을 보면 은행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비금융업보다 분명히 낮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은행이 크게 상업은행 업무를 수행하는 일반은행과 정책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은행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높은 이윤율을 달성하는 데에 목표가 있는 상업은행에는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비해 법으로 정해진 특정한 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목표가 있는 특수은행에는 자기자본 순익이익률이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특수은행에 중요한 것은 정책 목적의 달성 정도이지 이윤율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은행업과 다른 산업의 수익성을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특수은행을 제외한 일반은행(상업은행)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더 적합하다. 위의 5.2%라는 수치는 특수은행을 포함한 우리나라 은행업 전체의 평균값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은행의 2013~2022년 자기자본 순이익률 평균값은 6.6%이다. 일반은행만을 떼 내서 보면 은행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비금융업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은행업 자기자본 순이익률을 계산할 때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은행의 자기자본에 신종자본증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기준 일반은행의 자기자본은 145.7조 원이다. 여기에는 신종자본증권 7.3조 원이 포함되어 있다. 신종자본증권이란 후순위 채권을 말하는데,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본질은 채권이지만 청산과정에서 순위가 밀린다는 점에서 자본의 성격도 일부 갖는 증권이다. 신종자본증권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자기자본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여러 은행들은 사실상 부채인 신종자본증권의 발행을 늘려왔다. 부채 성격의 신종자본증권이 자기자본에 포함됨으로써 은행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그만큼 낮게 나타난다(자기자본 순이익률을 계산할 때 분모에 들어가는 자기자본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입된 공적자금이 은행업의 자기자본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금융위원회가 국회에 보고한 <2023년 3분기 공적자금 운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에 86.9조 원(출자 34.0조 원, 출연 14.4조 원, 자산매입 등 14.4조 원, 부실채권 매입 24.6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이 가운데 72.7조 원이 회수되었다지만 이는 원금 기준이고 이자를 감안하면 공적자금의 실질적인 회수율은 매우 낮을 것이다. 회수되지 않은 공적자금은 이러저러한 형태로 은행업에 남아 있는데, 이 때문에 자기자본의 규모가 그만큼 부풀어 있다. 자기자본이 커졌다는 것은 자기자본 순이익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은행만을 따로 떼 내고 여기에 신종자본증권이나 공적자금 투입 금액을 고려하여 은행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을 계산하면 이 수치는 은행연합회가 제시하는 것보다 틀림없이 훨씬 클 것이다. 물론 공적자금의 실질적인 회수 금액을 계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끌어낼 수는 없다.
은행업이 돈을 많이 벌면 위험한 이유
그렇다면 은행업이 돈을 많이 벌면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은행의 사회적인 기능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은행업은 크게 두 가지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가 스스로 수행해야 할 기능을 분업 원리에 따라 떠맡아서 수행한다. 자본가들이 사업을 운영하려면 준비금을 보유해야 하고, 송금, 지급결제, 환전 등의 기술적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사회의 총자본 가운데 일부가 독립하여 이러한 업무만을 전담한다면 영업 준비금을 줄일 수 있고 기술적 업무의 효율성도 더 높일 수 있다. 은행업은 말하자면 이러한 기술적인 기능에 특화한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은행은 사회의 화폐자본에 대한 총관리자 기능을 수행한다. 은행업이 발달하면 대부분의 화폐자본은 은행으로 집중된다. 은행은 모든 화폐 소유자들을 대표하여 화폐 수요자의 요구에 대응하여 화폐자본을 분배한다. 화폐자본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은행의 손에 달려 있다. 은행은 '심사'를 통해 누가 먼저 화폐를 받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우선권을 정한다. 은행이 '심사'를 잘해서 정말 필요한 곳에, 곧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곳에 화폐자본을 분배한다면 그 사회의 부가가치 생산량은 늘어날 것이다. 만약 은행이 엉뚱한 곳에 화폐자본을 분배한다면 그 부분은 사회적으로 낭비가 될 것이며, 이 때문에 금융 위기가 생길 수도 있고 사회 불평등이 심해질 수도 있다.
은행의 사회적 기능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기능이 사회의 부가가치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은행업은 기술적인 업무처리를 통해서 사회 전체의 '간접비용'을 줄이고 필요 준비금을 절약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화폐자본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 하여 부가가치의 생산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은행이 '직접'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그 기능을 통해 생산적인 부문의 부가가치 생산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업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쓸모 있는 기능이지만 그럼에도 부가가치의 생산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은행업은 그 본성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은행은 생산부문의 부가가치 창출을 지원한 대가로 그것의 일부를 나눠 받는다. 은행의 기술적 기능에 대한 수수료와 대출에 대한 이자는 그러한 대가의 주요한 형태이다. 은행이 나눠 받은 부가가치에서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이자를 뺀 금액이 은행의 이윤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 생산이 증가하면 은행들의 이익도 대체로 증가할 것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 곧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면서 은행 이익이 늘어난다면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다.
만약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는 증가하지 않는데도 은행 이익만 늘어난다면, 그리고 그러한 추세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다시 얘기해서, 은행업이 다른 산업보다 체계적으로 더 높은 이윤율을 얻는다는 사실은 다른 산업이 억눌리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사회 전체의 잠재적인 발전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나라 일반은행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은 비금융업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의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은행의 기능장애는 화폐자본의 흐름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은행은 특정한 분야로 흘러 들어가는 화폐자본의 규모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주요한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은행이 화폐자본을 배분하는 대상은 크게 두 부문이다. 하나는 산업자본의 순환과 연계를 맺는 부문인데 시설자금 대출, 운영자금 대출, 노동력의 유지나 보존과 관련된 생계비 대출이 여기에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수익 청구권 매매를 중개하는 부문인데 유가증권 구입자금 대출(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조달도 유가증권 구입자금 대출에 들어간다)이나 부동산 담보대출이 여기에 포함된다.
수익 청구권 매매를 중개하는 대출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 이러한 종류의 대출은 기본적으로 부가가치 생산과 별 관련이 없다. 예컨대 부동산담보대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회의 부가가치 생산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청구권 매매를 중개하는 대출은 이론적으로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산업자본과 연계를 맺는 대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시설자금 대출은 실물 자본 규모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부동산담보대출은 그 증가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이끌어서 담보가치를 높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담보대출을 가능하게 한다. 중앙은행이 은행들의 대출을 뒷받침하는 한 은행들은 이런 식으로 부동산담보대출을 계속 늘려갈 수 있다.
최근의 은행 수익 급증에 대해 그 원인의 많은 부분은 청구권 매매를 중개하는 대출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 은행의 수익은 크게 이자 수익과 비(非) 이자 수익(수수료)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가 전체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이자 수익은 예대 마진(대출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이)에 대출량을 곱한 값이다. 예대 마진이 커지거나 대출량이 늘어나면 전체 이자 수익이 증가한다. 그런데 은행들의 대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의 은행 대출 증가세가 가팔랐다. 이러한 대출 규모의 증가가 은행 수익 급증의 배경을 이룬다. 물론 시장 금리 상승 국면에서 생긴 예대 마진 폭의 확대도 은행 수익 급증에 기여했다.
은행 대출이 생산적인 부문보다 청구권 매매를 중개하는 부문에 집중되면 사회 전체 부가가치 생산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은행 이익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면 은행업의 순이익률은 다른 산업에 비해 높게 나타날 것이다. 현재 은행들의 이익 증가 현상은 바로 그런 사례처럼 보인다. 이때의 은행 이익 증가는 화폐자본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곳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 면에서 화폐자본의 많은 부분이 가공자본(특히 부동산)의 거래에 분배되기 때문에 은행의 이윤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사회의 위험 신호이다.
은행들은 특정 부문으로 향하는 화폐자본 흐름의 차단을 통해서도 이익을 늘린다. 은행들은 차입자에 대한 신용평가를 강화하여 이를 반영한 신용점수로 대출하는 영업 관행을 굳혀왔다. 이처럼 엄격한 신용점수에 바탕을 둔 영업은 부실률을 낮추어서 은행의 단기 이익 증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업 관행은, 현재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래성이 있는 기술 기업들, 그리고 노동 능력이 있지만 당장은 이를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일자리를 잡아야 하는 청년, 일자리에서 잠시 밀려나 있는 실업자,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없는 영세 소상공인 등)을 은행 문밖으로 쫓아냄으로써 노동력의 손실, 나아가 경제 잠재력의 손실을 만들어낸다. 은행 이용 기회 자체를 빼앗긴 다수 인구의 존재 상황은 '금융 배제 현상'으로 불린다.
금융배제 문제의 권위자인 딤스키(G. Dymski) 교수(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 소사이어티에서 활동)는 금융배제 현상의 연구를 통해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을 밝혔다. 첫째, 1980년대 중후반 이후 금융 개방과 빅뱅식 금융 규제 완화를 계기로 금융배제 문제가 심각해졌다, 둘째, 1980년대 후반의 은행 위기 과정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가 커진 대형은행들이 금융배제를 주도했다. 다시 말해서 대형은행들의 수익성 추구 일변도의 영업 전략이 금융배제의 중요한 원인이다. 셋째, 영미식 금융제도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금융배제 문제가 더 심하게 나타났다. 딤스키 교수가 분석한 금융배제 문제의 특징적인 면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금융 개방, 금융 규제 완화를 계기로 금융배제 문제가 심각해졌다. 둘째, 외국자본이 장악한 대형 은행들이 금융배제를 주도했다. 셋째, 영미식 금융제도로 틀을 바꿔가는 과정에서 금융배제가 심각해졌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외국자본이 장악한 대형 은행들의 영업행태가 금융 배제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대형 은행들은 선진 영업기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대출보다 부유층 대상의 주택담보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들을 신용점수로 줄 세워서 신용이 낮은 계층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영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대형 은행들의 이러한 영업행태는 은행의 공공성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은행의 공공적인 기능은 무너졌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은행의 이익은 증가했는데, 이 이익은 사회 전체의 장기적인 이익을 희생시킨 대가이다.
정리하면, 은행 이익의 급증은 은행이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화폐자본이 생산적인 곳보다 비생산적인 곳(특히 부동산 대출)에 쏠리고 있는 현실, 특정한 계층이나 기업이 은행 이용 기회 자체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그러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은행이 사회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경제의 발전 잠재력은 줄어들고 금융위기 가능성은 커지며 불평등 수준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돈을 많이 벌면 위험한 것이다.
위험을 줄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산업이, 사회가 기대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을 낸다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은행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은행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면 사회적인 평균보다 더 높은 이익률 수준을 장기간 누릴 수는 없다. 이러한 이치는 은행업의 본질을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은행업은 부가가치를 직접 생산하는 업종이 아니며 따라서 그 이익을 다른 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은행업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조건은 다른 산업이 부가가치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업이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만약 은행들이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빠져서 자금을 생산적인 곳이 아닌 부동산 대출에 집중시킨다면, 그리고 잠재 고객을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문밖으로 계속 쫓아낸다면, 미래의 부가가치 생산 전망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영업 행태는 은행들의 단기 이익을 높여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의 영업기반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은행업이 산업 성장과 경제 발전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사회적인 기능에서 너무 멀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아 은행의 영업 행태가 사회의 이익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첫째, 부동산 담보대출에 집중하는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모습은 특히 대형 은행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많은 양의 화폐자본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특징이기는 하다. 화폐자본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자산 가격에 투기 거품이 형성되고, 결국 파국을 통해 강제적으로 정리된 다음, 사회적인 비용으로 이를 처리하는 과정은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익(임대료) 청구권의 중개가 부가가치 생산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들의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의 영업 행태는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특히 투기 이득의 기회만 넓혀줄 뿐인 다주택자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은 매우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BIS 자기자본을 계산할 때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서는 높은 위험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의 부동산 담보대출 총량에 대해 부담금을 매길 수도 있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담보대출에 대해서는 금리를 훨씬 더 높게 적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외국자본이 장악한 대형 은행들의 영업 전략 때문에 은행 문턱에서 밀려난 계층을 다시 제도 금융으로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주식회사인 은행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은행이 상법상의 조직이 아니라 은행법상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은행법상의 은행은 상업적인 조직일 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띠는 조직이기도 하다. 금융배제 문제를 완화할 정책 수단으로 대형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제도금융권에서 밀려난 계층을 다시 흡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은 이러한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의 재투자법을 본떠서 우리나라에서도 서민대출이나 지역대출, 그리고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평가하는 '지역재투자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배제를 실질적으로 완화할 정도의 의무 규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은행 영업행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은행의 소유구조와 거버넌스를 바꿔내야 한다. 주요 은행을 외국자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은행들이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 현실에서 은행들의 공공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국자본이 대형 은행들을 장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형 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겨준 사례를 주요 선진 경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또한 공공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은행 거버넌스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은행의 의사 결정에 주요한 이해 관계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넷째, 공공은행 설립을 검토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서 정부 소유의 은행을 대부분 외국자본의 손으로 넘겼다. 은행의 공공성이 무너진 배경에는 이러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무엇보다 대형 은행들의 소유구조를 개혁해야겠지만 이와 나란히 (지역) 공공 은행을 설립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도 은행의 40%가 공공 소유 이다. 공공성을 앞에 둔 공공은행의 영업 행태는 기존 상업은행들의 영업 행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은행의 과도한 이익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세금 형태이든 부담금 형태이든 은행의 초과 이윤에 대해서는 마땅히 부담을 지워야 한다. 더 고민할 지점은 횡재세를 어떻게 걷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것을 넘어서, 횡재세 이슈를 매개로 은행의 영업 행태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하는 데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움 받은 자료>
데이비드 하비, 강신준 옮김(2016),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창비.
이강원(2023), <국내 은행의 수익성 추이와 시사점>, 금융경제연구소, 2023.10 25.
전국은행연합회(2023), <은행 산업 역할과 수익성>, 2023.8.29.
금융감독원, "국내은행 영업실적", 각 연도, 각 연도 반기.
금융위원회(공적자금관리위원회)(2023), "2023년도 3분기 공적자금 운영현황", 2023.11.29.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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