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통과가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태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주범으로 지목받았고 이와 같은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옹호론자들은 조례를 폐지하면 학교가 과거로 후퇴할 것이라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은 이미 교육부가 교권보호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므로 조례를 재개정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옹호론자도 정부도 재개정에 필요한 대안 제시는 없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냐 존치냐 양자택일의 문제로 수렴되어 가고 있다. 12월 15일 충남도의회는 최초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고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 고시 vs 학생인권조례, 누가 해결해야 하나
교육부는 교권보호를 위해 지난 9월 1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고시'를 발표했는데, 이 고시는 학생인권조례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따라서 교육부 고시를 고치거나 학생인권조례를 고쳐야 하는데, 교육부는 고시는 조례보다 법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학생인권조례를 고치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률의 권위가 국회에 있고, 시행령의 권위가 대통령, 고시 등의 권위가 대개 장관에게 있을 때 장관의 권위가 지자체의 권위를 넘어선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례가 법령과 시행령보다 하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례가 고시의 하위 조항인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 현재 법제처의 해석이다. (출처 법제처 홈페이지: '조례의 제정한계 등'에 대한 행정법제국 법제관의 답변 중) 교육부는 11월 29일 '학교 구성원 조례'라는 예시안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자율적으로 고치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논란에 답해야 할 곳은 국가인권위
교육부 고시와 학생인권조례의 충돌에 답변을 내놓아야 할 기관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다. 국가인권위야말로 학생인권 침해 논란에 대한 판단과 권고를 통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실질적으로 강권해 온 기관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7개 지역에서만 운영되고 있지만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모든 지역에 다 적용된다.
국가인권위는 2012년 8월 '인권친화적 학교문화조성을 위한 종합권고'를 통해 교육부 장관 및 17개 시도교육감에게 학생 인권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법, 교육과정, 교사 양성 및 임용과정, 학교규칙, 학교폭력 처리절차를 모두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모든 시도교육감은 학생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개선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또 경남, 강원, 부산, 대전, 울산 등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대부분의 시도교육감이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국가인권위와 MOU를 체결한 상태이다. 따라서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유지되든, 폐지되든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어차피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모든 학교에 학생인권조례를 실질적으로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고시와 학생인권조례의 충돌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교육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교육부는 고시를 발표하기 전 국가인권위의 검토 및 시정 권고를 받았는데, 그중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와 국가인권위 사이에 어떤 교감이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네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부과 국가인권위는 빠른 시일 안에 이 논란에 대해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①휴대폰 사용 제한
교육부 고시와 학생인권조례가 충돌하는 부분 중 첫째는 휴대폰의 제한 관련이다. 교육부 고시는 수업 중 휴대폰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며 교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을 사용한다면 압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하며 학생의 물품 압수는 더욱 최소화하여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가인권위는 학교의 권리는 헌법상 자유권 및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넘어설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휴대폰 사용 제약의 필요성보다 학생이 필요할 때 통신할 자유와 사생활 보호가 더 상위의 권리라고 결정했다.
학생이 필요할 때 외부와 통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수업 중 학생의 휴대폰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며 이를 어길 시 압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히 충돌한다. 교육부와 국가인권위는 이 부분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교육부 고시 중 휴대폰 사용 제한에는 아무런 권고를 하지 않았다. 원래 국가인권위는 통화가 필요할 때마다 선생님에게 휴대폰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맡게 하는 것이 개인에게 지나친 불편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학생들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알게 되어 사생활 침해라는 기존의 결정례를 이제 포기한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②수업 중 분리 규정
두 번째 충돌 지점은 수업 중 분리 규정이다. 심각한 수업방해 및 교권침해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야말로 현재 교육부 고시 중 핵심적이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뜨거운 감자이다. 수업 중 교사가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법률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의 학습권은 헌법적 권리이고 교사의 수업권은 그에 종속적인 것이므로 학생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판결이었다. 국가인권위도 당연히 이 부분에 반기를 들었다. 수업 중 학생을 분리하는 것은 낙인효과 같은 인권침해 소지가 크므로 '다른 방법이 없을 때'라는 단서 조항을 붙이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웬일인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만약 '다른 방법이 없을 때'라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면 수업 중 분리 규정은 유야무야됐을 것이다. 분리 조치했다가는 다른 방법이 없었느냐는 문제제기를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채 현재처럼 '필요 시' 분리할 수 있다고 놔두었다.
수업 중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하는 것이 그동안은 불법이었는데, 이제 갑자기 합법이라고 하고, 국가인권위에서는 인권침해라고 했는데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아무 입장표명이 없으니 교사들은 혼란스럽고 두렵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교육부를 믿어도 되는가. 아니면 국가인권위를 믿어야 되는가. 그동안 교육부는 수업 중 학생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입장을 충실하게 따라 무슨 일이 있어도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고 했었다. 교육부의 입장이 바뀐 것인지, 바뀌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③반성문 작성
세 번째는 반성문 작성이다. 국가인권위는 교육부 고시 중 생활지도 단계의 훈계 수단 중 하나로 반성문이 들어간 것에 대해 '반성문 작성은 양심의 자유 침해이니 성찰문으로 바꾸라'고 권고했고 교육부는 이 권고를 수용했다. 반성문 작성이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해석은 1991년도에 신문사 사죄 광고 조치가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에서 온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 중 서면사과가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논란이 계속 있어 왔다.
그런데 올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서면사과 조치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합헌이 나왔다. 학폭 조치 중 서면사과는 양심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조치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피해 학생의 피해 회복과 정상적인 학교생활로의 복귀를 돕기 위한 교육 조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길고 긴 논란은 여기서 끝난 것이라 봐야겠다. 신문사에, 방송사에 사과 강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계속 내려왔던 헌재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서면사과가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는 반성문 작성에 대해 왜 헌법재판소와 다른 판단을 했는지 해명해야 하고, 교육부도 마찬가지로 왜 국가인권위의 다른 권고는 수용하지 않았는데 반성문 강제 금지는 수용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④두발, 용모, 복장의 제한
네 번째는 두발과 용모 복장에 대한 제한이다. 교육부 고시에는 건전한 학교생활을 위한 용모 및 복장을 지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는 교육부 고시에 대해 아무런 시정 권고도 하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국가인권위의 입장과 반대로 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용모 및 복장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 침해이므로 제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왔다.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의해 최소한으로만 할 것이고 학생이 지도에 따르지 않는 경우 웬만하면 지도하지 말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에서 '개성의 실현권'에 해당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12조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고 학교장과 교직원은 학생 의사에 반해 용모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
만약 두발과 복장의 제한이 학생인권 중 개성의 실현권 침해라는 기존의 주장이 맞는다면, 국가인권위는 교육부 고시에 대해서 빨리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두발과 복장에 대한 모든 제한이 학생 인권 침해’라는 주장 때문에 학교는 이미 있는 규칙도 적용하지 못했고, 오히려 규칙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권 침해자로 내몰려 왔기 때문이다.
교권 침해에 침묵해 온 인권위의 편파 판정
얼마 전 국가인권위의 편파성을 지적하는 보도가 있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3805건, 이중 구제조치 권고 등으로 이어진 사례는 508건이었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인권위에 낸 진정이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국가인권위는 공공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만 다루는데 교사는 공인(公人)이고 학생과 학부모는 사인(私人)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 논리는 매우 궁색하다. 국가인권위는 '모든 국민의 불가침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30조 1항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뿐 아니라, 2항 사인에 의한 차별행위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공인이고 누가 사인인지, 어떤 게 인권침해이고 어떤 게 차별행위인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는 이런 불명확성 속에서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판정을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사인에 의한 인권침해를 보호할 의무가 국가기관에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가 교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학교장과 교육장에게 시정 조치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 국가인권위는 지금이라도 그동안의 판정을 사과하고 교권침해를 막기 위한 시정권고를 내려야 할 것이다.
교사의 생활지도권과 학생인권조례 논란에 답해야 할 때
공교육의 목적은 사교육과 다르다. 공교육의 목적은 사회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의 생활지도, 즉 훈육과 훈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기본법에도 공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을 길러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의 생활지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생인권 침해 논란에 대해 그동안 국가인권위는 교사가 받아들이기 힘든 판정을 해 왔고, 교육부는 무비판적으로 국가인권위의 입장을 수용해 왔다. 학생인권조례가 존폐의 기로에 놓인 작금의 현실에서 또 한 번 아무런 논의 없이 폐지냐 유지냐 양자택일로 내몰린 교육계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만약 국가인권위가 학생인권조례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재개정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부와 국가인권위는 교사의 생활지도권과 현행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충돌에 대해서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여야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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