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14일(이하 현지시각)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열린 기자회견 겸 국민과의 대화 '올해의 결과' 라는 제목의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이 3.5%로 예상되고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치인 3%를 기록하는 등 경제 성과를 언급했다고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 통신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의 금융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제 생각에 오늘 우리는 이 목표를 성취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러시아는 달러를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서방은 달러와 유로화 결제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며 "그들(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또 다시 발등을 찍고 있다. 왜 그들은 달러와 유로화의 세계 기축 통화로서 가능성을 줄이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외환이익 규제에 관한 법령이 제 역할을 했다"며 "루블화는 현재 일시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외 무역에서 루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9월 최대 40%, 위안화 비중은 33%인 반면 달러와 유로화 비중은 24%로 줄었다고 결론지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를 수입하지 않는 제재를 하고 있는 것과 관련, "유럽이 충분한 가스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럽의 문제"라고 말해 유럽 스스로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일부 국가들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산 가스를 수입하지 않는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기존보다 에너지 투입에 많은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주권을 잃었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그들은 스스로 해를 끼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유럽과 관계 개선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프랑스와 접촉을 회피하지 않지만 파리 쪽에서 의지가 없다"며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렵지만,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관계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미국과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를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관계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조건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미국이 세계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나라라고 믿지만, 미국의 절대적인 제국주의적인 정책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 그 자체를 괴롭히고 있다"며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날 필요가 있고 타방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편입 시도가 현재와 같은 전쟁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시키기 위해 (러시아) 국경에 더 가까이 다가오고자 하는 욕망이 이 비극을 초래했다. 이 모든 것이 돈바스에서 8년간의 유혈사태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하나의 민족"이라며 "지금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내전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수십 년 동안 우크라이나와 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해왔지만, 2014년 사건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크림반도를 병합한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나토가 활동 반경을 아시아로 넓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는 분명히 이 기구의 법적 목표인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시아에서 무엇을 하나"라며 "그들은 그곳에서 도발하고, 상황을 과열시키고, 다른 구도의 새로운 군사 정치 블록(Bloc)을 만든다"고 비판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은 블록을 만들지 않고 양국의 협력은 제3국을 향하지 않는다"며 "중국과 관계는 전례 없이 좋은 상태이며 올해 무역은 2000억 달러가 넘었다"고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비군사화, 중립적 지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의미하는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의 목표라면서, 우크라이나가 "적은 대규모 반격을 발표했지만 어디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자국민을 몰살시키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다른 나라에 가서 자금을 구걸하고 반격의 '성공'을 보여주려 한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국가 유지와 군사 부품, 장비, 탄약에 대한 추가적인 돈을 구걸하기 위한 여행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군사 충돌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상황 해결을 위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고 이에 대한 양국의 입장도 유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당연히 재앙이다.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 작전과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장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61만 7000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작전 지역에 배치돼 있고, 전선의 길이는 2000km가 넘는다면서 "거의 모든 전선을 따라 러시아군의 위치가 개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동원령에서 48만 6000명이 자원입대를 지원했다면서 병력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을 겸한 국민과 대화 행사는 2001년 이후 거의 매년 열렸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던 지난해는 열리지 않았는데, 침공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해외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자신감을 갖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내년 3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황, 경제 상황 등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보여줘야 할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점도 이날 행사가 개최된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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