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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서울민국! 정치인은 표 얻고 토건족은 떼돈 버는…

[철도는 혐오시설이 아니다 ①] 일본은 왜 '철도 지하화' 하지 않을까

지난 10월 말, 일본 철도 JR 관계자 만남과 현장 실사를 떠나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 중 우연히 본 뉴스 하나가 일본 답사 일정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성동구, 송파구, 광진구 구청장이 지상 구간으로 운행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한양대역 – 잠실역, 성수역 – 신답역 구간의 지하화 추진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기사였다. 기사는 도심을 관통해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도시철도 지상 구간을 지하화하기 위한 공동의 첫걸음이라고 추켜세웠다.

철도 지하화는 지난 수십 년간 철도가 지나는 모든 곳의 정치인들이 한 번쯤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주민 불편 해소와 지역 개발 논리를 앞세워 선거철이면 좀비처럼 살아났다. 지하화 공약에는 여야의 구분도 없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서울 지하철 1호선과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간조선>은 21년 10월 17일자 기사를 통해 이재명 후보의 지하화 공약은 주변 교통에 미치는 악영향과 막대한 재원 마련 논란 등으로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대형 토목 공약이라며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는 지도가 그려진 도판을 준비해와 직접 철도 지하화 공약을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보다 더 광범위한 전국적 철도 노선을 대상으로 했다.

철도 지하화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다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뜻을 모았고 국토부가 나서 '철도시설 지하화 및 상부개발 등에 관한 특별법'(가칭)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예산인 22조가 투입됐다는 4대강 사업의 두 배가 넘는, 45조로 예상되는 대규모 토목 잔치가 열리게 되는 판이다. 국토부는 도심 지상철도 지하화 사업은 막대한 비용과 낮은 경제성, 복잡한 규제 때문에 추진이 어려웠으나 특별법 제정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것 이라고 밝혔다.

국토부의 설명을 찬찬히 뜯어보면 막대한 비용과 낮은 경제성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지만 특별법으로 어쨌든 실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어느새 지상 철도는 정치인들이 주민을 위해 개선해야 할 혐오시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거대한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상 철도가 사라진 공간은 거대한 부동산 개발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재원의 상당 부분은 민간투자 유치다.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민자사업들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합법적 장치로 기능해왔다. 지상에서 철도가 사라지면 시민들은 행복해질까?

45조의 예산은 주로 서울과 수도권을 대상으로 집행된다. 집권 여당은 서울 주변의 경기도 도시들을 서울로 편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호를 서울민국으로 바꿔야 하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반 지방 정책들이 구사되고 있다. 서울을 거대 블랙홀로 만들고 있다.

지상철도 지하화의 문제는 정치인들은 표를 얻고 토건족들은 떼돈을 벌지만 서울의 고질적인 교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은 지옥철로 불리는 교통 환경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접근성을 기준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보면 아직도 상당 거리를 마을버스에 의지하는 등 적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이 철도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많은 노선들은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혼잡도를 보이고 있어 용량 증대나 대체 노선 확보가 필요하다. 장애인이나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확충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하화 공약은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을 조금도 개선하지 못한다. 지금 존재하는 지상 철도를 그저 지하로 넣겠다는 것이다. 45조나 쏟아붓는데 교통 여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의 공약이요 정책인가?

철도지하화 공약의 이면에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부동산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하화로 확보된 철도 부지 개발을 통해 너도나도 한 몫 잡고 말겠다는 욕망이 지하화 공약을 미는 거대한 추진체가 되었다. 철도 관련 최신 뉴스를 보려면 부동산 커뮤니티를 찾는 게 가장 빠르다. 서울 철도 구간의 지하화가 시도되면 주변 땅값과 집값의 고삐가 풀리게 된다. 서울의 자치구가 모두 서초, 강남구가 되겠다는 욕망을 갖는 순간 서민들이 살 자리는 사라진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지자체장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철도 지하화는 신념체계를 넘어 신앙이 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 정신이 사라진 그만큼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도쿄 도심을 질주하는 지상 전철은 시민들의 삶에 녹아든 일본의 아이콘이 되었다ⓒ박흥수

나리타 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도교 시내 숙소에 도착한 곳은 우에노 역 근처였다. 우에노 역은 도쿄에서 일본 동북지역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신간센과 재래선 열차 노선의 주요 기점이다. 서울역이 14번 승강장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우에노 역은 지하 신간센 승강장을 비롯해 지상과 고가까지 22번 승강장을 갖고 있는 거대 역이다.

우에노 역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선로는 도쿄역으로 향한다. 이 선로는 도쿄 도심을 관통하는 고가철도다. 서울의 3개 구청장이 혐오시설이라며 땅에 묻겠다는 지하철 2호선의 한양대 – 잠실역 구간의 고가철도는 선로가 2개인 복선이다. 반면 우에노 역에서 도쿄 도심을 뚫고 달리는 고가철도는 3복선이다. 게이힌 도호쿠선, 우에노 도쿄선, 도호쿠 본선, 야마노테선이 쉴 틈 없이 달린다. 사실 이 3복선은 우에노 전 역인 오카치마치 역까지는 신간센이 붙어 있어 4복선으로 운영된다.

10개의 선로가 있는 고가철도는 한국의 철도 지하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쿄도지사나 일본 총리, 도쿄도 지역구 의원들이 도쿄 곳곳의 지옥 같은 지상철도를 지하로 넣겠다는 공약을 내지 않는다.

철도 지하화론자들은 지상 철도가 지역을 갈라놔 발전을 저해한다고 한다. 도심 철도가 지역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런 문제로 철도 주변이 낙후되거나 발전이 저해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도심 철도 주변 지역의 발전은 철도를 그대로 놔두고도 할 수 있다. 현대 도시에서는 철도 주변이 낙후되는 것이 아니라 역세권 효과를 타고 더 세밀한 개발로 철도가 파생시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4~5복선의 거대 고가철도를 보는 도쿄 시민들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상 철도는 도쿄시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일본, 특히 도쿄의 일상을 상징하는 장면은 도쿄 타워가 아니라 고가철도 위를 달리는 전철이다. 회사원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신주쿠 거리 위 철교를 통과하는 열차는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우에노 역에서 고가철교 밑을 따라 차도를 하나 건너면 재래시장 아메야요코초를 만난다.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풍경을 보여주는 이 재래시장은 고가철교 구조물 아래 형성된 상점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확장됐다. 저녁이면 퇴근길 회사원과 전 세계에서 몰린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시장을 가득 메운다. 시장통을 걷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머리 위 고가철도에서 굉음을 날리며 달리는 열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달리는 열차는 그저 일상에 녹아든 풍경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심 지상 고가 구간을 달리는 신간센과 관영 전철 ⓒ박흥수
▲선로와 건물이 닿을 정도로 밀착해 도쿄 시내를 달리는 신간센 고속열차 ⓒ박흥수

도쿄 지상을 달리는 철도 노선이 특이한 점은 선로가 주변 건물이나 거리에 바짝 붙어있다는 것이다. 중년 남자가 퇴근길 전철에서 역에 붙어 있는 건물의 댄스 교습소 창문을 보고 춤을 배우러 다니면서 삶이 변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가 <셀위댄스>이다.

지난해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철도 로드무비라고 해도 무방하다. 주인공 시골 소녀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기차 타고 도쿄까지 가게 된다. 이때 위험에 빠진 도쿄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은 도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 구간이라는 오차노미즈 역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카페 뤼미에르>의 엔딩 크레딧 배경 화면을 장식하는 오차노미즈 역은 지하철과 지상 전철의 3개 노선이 운하를 끼고 교차하는 곳이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이 아름다운 교차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힐링 타임을 갖곤 한다.

전철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아파트 발코니에 널은 빨래를 걷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밀착해 달리는 도쿄 전철 선로에는 그 흔한 방음벽도 보이지 않는다. 철도가 시민들의 삶과 나란히 존재하고 있는 일본의 풍경과 혐오대상이 된 한국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도쿄 노면 전차 ⓒ박흥수

도쿄 시내에는 한국에서는 진즉에 사라진 노면전차가 아직도 달리고 있다. 일부 구간은 지역을 가르는 전용노선이 있고 일부 구간에서는 차도 위를 자동차 속에 섞여 함께 달리기도 한다. 도쿄 사쿠라 트램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 노면전차는 노선 주변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자 도쿄 교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라면 효율성에 밀려 사라졌을게 분명한 노면전차가 지금은 더 큰 효용을 발휘하며 건재하고 있다.

45조로 예측되는 지상 전철 지하화라는 수도권 중심 거대 토건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예산의 절반 이상은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이기 위한 지역 철도망 구성에 투자되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과 기후위기 대응에 꼭 필요한 일이다. 나머지 예산은 수도권 철도망의 유기적 구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지하철 혼잡률이 극심한 노선에 대한 보완 노선 건설이나 용량증대가 우선이다. 이른바 '헬'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1, 2, 4, 5, 7, 9호선과 경의 중앙선, 김포 골드라인 같은 교통환경을 그대로 두고 멀쩡한 철도를 땅속으로 밀어 넣는데 돈을 쏟아붓는 일은 세기적 낭비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도쿄 번화가를 관통하는 오차노미즈 역 풍경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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