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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달 뛰고 유치한 서울올림픽, 5500억 날린 부산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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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달 뛰고 유치한 서울올림픽, 5500억 날린 부산엑스포

[정희준의 어퍼컷] 2030엑스포, 생각 없이 열심히 뛰어다닌 국가 프로젝트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세력은 곧이어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후 민심 수습에 나서게 된다. 국민의 눈을 군부독재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적의 프로젝트로 올림픽을 선택한다. IOC에 1988년 올림픽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게 마감 직전이었던 1980년 12월 2일. 상대는 이미 4년을 준비해온 나고야. 차기 개최지를 결정지을 1981년 9월 30일 IOC총회까지 채 열 달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국제사회에서 존재감도 없던 개발도상국 한국이 5년을 준비한 경제대국 일본을 누르고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IOC총회에서 서울은 52대27이라는 의외의 압승을 거둔다. 유치활동 기간이 채 열 달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2030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후 지금 정부와 여당이 내놓는 '유치 경쟁에 늦게 뛰어들어서,' '전 정부 탓' 같은 변명은 스스로의 무능함만 드러낼 뿐이다.

당시 몇 가지 승인으로 수십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두 가지로 축약된다. 우선 외적 요인. 88올림픽 유치전은 한국과 일본 간 경쟁이었지만 일본의 유치를 경계하는 독일 스포츠자본, 즉 '아디다스'와 '푸마'의 불안감이 크게 도움이 됐다. 당시 일본의 '아식스 타이거,' '미즈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이들 입장에서 올림픽이 일본에서 개최될 경우 주도권을 일본에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막후 거래가 이루어졌다. 서울올림픽 유치단은 당시에는 개념도 희미하던 스포츠마케팅 권한을 아디다스에게 주기로 합의한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설립자는 형제였고 전통적으로 유럽의 귀족과 엘리트들의 놀이터였던 IOC의 가장 큰 후원자는 이들 기업이었다. 아디다스가 서울 지지로 돌아서면서 유럽은 물론 아디다스와 푸마의 스포츠 지원사업의 혜택을 누려오던 아프리카의 몰표를 가져올 수 있었다. 투표는 철저하게 실리를 놓고 이루어진다.

내적 요인은 국내 재벌사들의 총력전이었다. 사실 당시 남덕우 총리 등 경제관료는 물론 서울시도 회의적이었다. "도대체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정주영, 동아의 최원석 등 재벌 회장들이 해외 지사까지 총동원한 덕에 나고야에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재벌들이 총력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건설업으로 성장한 재벌들이 유난히 열심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떼돈을 벌던 건설업체들은 중동 경기가 쇠퇴하자 난관에 봉착한다. 중동 건설 붐 때 사들였던 중장비들과 고용했던 인력이 놀고 있는 상황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실제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자 이들 재벌들은 올림픽 특수로 다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올림픽 경기장 건설, 도로 건설, 한강 개발뿐 아니라 재개발과 아파트 건설 등 올림픽 특수의 알맹이가 고스란히 이들에게 떨어졌다.

올림픽 유치의 1등 공신이라 할 정주영은 왜 모든 것을 걸다시피 유치전에 뛰어들었을까? 당시 삼성과 현대는 박정희가 사라진 '새 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 그런데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자 삼성의 이병철은 신군부가 '사부'로 모시던 'TK계의 대부' 신현확 전 총리와의 친분을 이용해 신군부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에 몸이 달았던 정주영은 올림픽을 반격의 카드로 선택한 것이다. 결국 5공 출범 초기 삼성에 유리하게 돌아갔던 재계 판도는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현대에 유리한 국면으로 다시 바뀌게 된다. 결국 재벌들이 그토록 열심히 유치활동에 매진한 이유도 결국 실리였다.

이번 2030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의 이유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사실상 유치를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탈리아 로마가 17표를 얻었는데 5500억 원을 썼다는 부산이 어떻게 고작 29표를 얻었는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지난 수년 간 엄청난 국가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사실은 '엉뚱한 짓'만 골라가며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외부 요인. 투표 결과를 분석해 보면 아프리카는 감비아를 제외하면 모든 국가가 사우디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이고 미주 지역도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제외하면 20개국 이상의 압도적 사우디 지지였다. 심지어 아시아에서도 일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모두 사우디 쪽에 선 것으로 보인다. 전 정부 시절 남방외교의 주요 대상국이었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사우디 편에 선 것으로 나타난 점이 뼈아프다. 대통령 등 정부 인사들이 유치를 위해 '지구를 243바퀴 돌만큼 어마어마한 거리'를 다녔다는데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것인지, 그 결과도 참 어마어마하다.

이번 결과를 놓고 보면 글로벌 외교무대에서 제3세계 국가들에 가장 영향력이 큰 중국과 척을 진 상태에서 이런 메가이벤트 유치경쟁에 나서는 것 자체가 몰상식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세계는 이념 경쟁이 사라진 시장 경쟁 시대다. 최근 사우디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중국은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 군사원조는 물론 대규모 경제지원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아프리카 몰표는 그에 대한 보답이다. 지금 중국이 바로 그때의 아디다스다. 오직 실리가 표를 보장한다

다음은 내적 요인. 마지막 PT를 놓고 말이 많다.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K팝 스타를 신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만들었나 싶은데 선거판 홍보영상으로 착각한 것인지 수없이 '1'을 강조하고 'Your Choice'가 반복되는 화면은 표 구걸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미래'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압권(?)은 반기문(79), 한덕수(74), 박형준(63), 최태원(63)으로 구성된 고령, 남성 위주의 발표자 라인업이다.

2020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관광도시' 공모사업에서 부산은 치열한 경합 끝에 선정된 바 있다. 당시 국제관광도시가 인천으로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였고 그래서 부산시는 최종 PT에 사활을 걸었다. 발표자는 30대 남녀 주무관들이었다. 결과가 발표되고 청와대로부터 나왔던 반응도 "부산이 PT를 잘했다면서요"였다.

개표 결과를 보면 최종 PT가 대세에 영향을 미쳤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황망한 수준의 최종 PT를 보면 이번 엑스포 활동의 전반적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외적 요인 그러니까 외교적 사안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전략을 짠 것이고 내적으로도 대통령부터 고위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비행기 타고 악수만 하고 다녔지 한 마디로 '영혼 없는 유치전'을 펼친 것이다. 전략도, 분석도 없었던, 5500억짜리 영혼 없는 프로젝트였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 재벌 총수들은 이미 판세를 읽었을 텐데 왜들 그렇게 열심히 다녔을까? 사실 별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냥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모두들 별 생각은 없었지만 참 열심히 다닌 국가사업이었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본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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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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