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주.
나무와 망치를 든 예술가로 불리기도 하는 '목수'는 나무로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 이들을 말한다. 목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가 타설될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내부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인테리어 목수', 나무로 집을 짓는 '빌더 목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빌더 목수는 말 그대로 집을 짓는 사람을 말한다. 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시공하고, 인테리어, 설비, 전기 마감 등 모든 공정의 A to Z를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이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8일 충북 충주의 한 작업실에서 5년차 빌더 목수 22살 이아진 씨를 만났다. 아진 씨는 13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전진소녀의 성장일기'에서 목수로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콘텐츠로 만드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영상에서 그는 안전 고글을 끼고 정돈된 작업복을 입은 채로 빌더 목수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드러낸다. 이날 아진 씨는 8kg가 족히 넘어 보이는 툴벨트를 가볍게 허리에 차고 목조 주택에 쓰이는 나무를 전기톱을 이용해 능숙하게 재단했다.
아진 씨가 빌더 목수가 된 건 끝없는 진로 고민의 산물이었다. 경쟁이 중심이 되는 한국 교육에 답답함을 느낀 아진 씨는 14살 이모 손을 잡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홀로 아진 씨를 키우던 어머니는 재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딸의 유학을 지원했다. 호주로 떠난 아진 씨는 꿈을 키웠다. 부모의 직업이 목수인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호주 친구들 곁에서 아진 씨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된다. 건축학과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진 씨는 문득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1년 동안 답을 찾아 고민하던 아진 씨는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 길로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가족을 따라 방문한 건설 현장에서 목조 주택의 매력에 빠졌다. 아진 씨는 빌더 목수가 되어 그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18살 아진 씨가 한국의 건축현장에서 마주해야 했던 것은 고된 노동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건설판에 파다한 '어린애, '여자애'에 대한 편견과 마주해야 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건축현장에 온 아진 씨였지만 그의 간절한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 아가씨가 있네', '레일건(목재에 못을 박는 도구)은 들 수 있겠어?'라며 비아냥 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여자고, 어리다는 이유로 장벽을 느꼈다. 저를 팀원의 한 명으로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냥 아빠 따라온 18살 꼬꼬마 여자애로 봤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은데 저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제가 어느 정도 초보를 지나 실력이 쌓이면서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는 시기가 됐을 때도, 일을 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 일의 과정이라든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데, '어리니까 뭘 모르겠지'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저를 팀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깍두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진씨는 이를 악 물었다. '할 수 있겠냐'는 의심에 대응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더 성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나서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작업 중 새로 알게 된 공법이나 자재를 노트에 매일 써내려 갔다. 그렇게 공책을 빼곡히 채웠다. 40kg짜리 합판을 들어 올리기 위해 근력 운동도 했다. 그는 "내가 성장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서 높이 올라가면, '내가 할 수 있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능력을 알아채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오기로 버텼다. 누가 이기나 보자. 몇 년이 걸리든 나는 보여줄 거니까"라고 말했다.
18살 무급으로 일을 시작했던 아진 씨는 이제 20만 원의 일당을 받는 어엿한 빌더 목수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진 씨는 사회의 시선과 현장 내부의 분위기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에게 아진 씨와 같은 젊은 여성 목수의 비율이 적은 이유를 물으니 단번에 "전례가 없다. 롤모델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주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호주의 경우 여성 목수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보니 일하는 환경이 평등하고 조화롭다"며 "'여자는 목수를 못 할 거야' 라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직업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애초에 여자를 떠나서 젊은 목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 중에서도 아진 씨가 가장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은 블루칼라 노동을 폄훼하는 '노가다'라는 편견이었다.
"'노가다'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애초에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게 귀한 직업, 몸 쓰는 직업은 별로 안 좋은 직업으로 나뉘니까. 이 직업을 선택하는 옵션은 인생에서 빠지게 된다. 여성들도 굳이 이 직업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렇게 교육을 받고 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적성이 이 일과 맞다고 하더라도, 이 일을 자신의 선택지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저도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면 목수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호주에서는 목수들 스스로의 프라이드가 높다. 연봉도 높고, 워라밸도 좋으니까. 제가 호주 학교에서 체육대회 하면 목수들이 일할 때 입는 형광 조끼를 입고 코스튬을 하기도 한다. 큰 트럭을 끄는 게 로망인 친구들도 있었고, 방과 후 학교에서 목수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많았다. 호주에서는 아빠 직업이 목수인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저도 목수가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목수를 하겠다고 하니 '노가다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엥? 싶었다."
아진 씨가 찾은 돌파구는 'SNS'였다. 아진 씨 자신이 목수라는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중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을 입는 대신 작업할 때 입는 '워크웨어'를 직구했다. 사무실에 가려면 양복을 입는 것처럼, 작업을 할 때는 작업복을 입는 마음가짐과 루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진 씨는 13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성장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초보 목수들에게 공법에 대한 팁을 알려주기도 하고, 작업복과 공구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사실 사회적인 시선도 바꾸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작업자들끼리 뭉쳐서 우리가 스스로 바뀌고 싶었다. 일을 하다 보면 노동자 스스로도 '노가다'라고 자신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끼리 높은 프라이드를 갖자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작업복도 소개하고 공구도 소개하다 보면 우리끼리 더 재밌게 공감하고, 또 이 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걸어온 사람들의 문화는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나같은 사람들을 더 늘리는 게 맞지 않나."
아진 씨는 <인간극장>, <아무튼 출근!> 등 지상파 방송에도 출연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아진 씨의 자긍심 넘치는 모습을 보고 후배 목수가 된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를 통해 동기부여를 얻는 이들을 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이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든다"고 말했다. 아진 씨는 후배들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나 목수야'라고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22살인 아진 씨는 23학번 새내기로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현장에서의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그가 하고 싶은 건축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틀이 만들어졌다"며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건축적 신념이 생기니 지식을 쌓고 더 배워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언젠가 '어벤져스팀'을 꾸려 어려운 곳에 도움을 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아진씨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를 하고 싶다"며 "당신들은 그냥 '막노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진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래는 아진 씨와 나눈 주요 인터뷰 일문일답.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이아진 : 저는 22살이고, 집을 짓는 목수, 빌더이자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이아진이다. '전진소녀 성장 일기'라는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이아진 : 목수로 일할 때는 지방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숙소생활을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필요한 작업 도구를 챙겨서 현장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오후 5시에 일이 끝나서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그 날 했던 작업을 복습한다. 새로 알게 된 작업이나 자재, 공법 등을 노트에 적고 복습한다. 더 잘하고 싶고, 빨리 성장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그리고 건축학과에 입학한 뒤로는 학교를 가고,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유튜브 작업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추석 연휴처럼 긴 휴일에는 목수로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프레시안 : 건축학과 새내기인데, 틈틈이 목수로서도 계속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목수도 형틀목수, 내장목수 등 다양한데 아진씨가 말한 빌더 목수는 어떤 일을 하는가.
이아진 : 빌더는 말 그대로 집을 짓는 사람이다. 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시공하고 인테리어, 설비, 전기 마감 등 모든 공정을 컨트롤 할 줄 아는 사람을 빌더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설비, 전기, 도면 등 진짜 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공정을 만드는 사람을 '마스터빌더'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이 라이센스를 얻기 위해 30년의 경력이 필요할 정도로 장인의 느낌이 강하다. 말 그대로 어떤 공간을 짓기 위해서 모든 일을 다 참여하는 게 빌더인 것 같다. 그래서 저를 소개할 때 집 짓는 목수라고 항상 소개한다. 저도 기초 콘크리트부터 시작해서 설비, 인테리어, 골조, 마감 그리고 내부까지 다 하는 편이다.
프레시안 : 느낀 빌더 목수의 장단점을 설명해 달라.
이아진 : 우선 만족도가 높은 게 첫 번째 장점이다. 왜냐하면 보통 목수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목수를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분들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만족도가 높아서 일도 오래한다. 또 연차가 쌓이고, 내가 자리를 잡았을 때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할 수 있는 기간과 공간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또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출장이 잦다는 점이다. 일하는 환경이 항상 다양하게 바뀌는 형태가 제 성격엔 잘 맞았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수익이 좋다. 일한 만큼 얻어가기도 하고 요새는 기술직 페이가 좋기 때문에 수익을 보고 오는 청년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단점은 일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치는 일도 많다. 또, 빌더의 경우 외부에서 일하다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 오는 날이나 장마 기간에는 일을 쉴 때도 있고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몸이 고된 게 큰 단점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을 기피하는 이유가 직관적으로 힘들어 보이고, (흙먼지 등으로) 더러워 보인다는 주변시선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주변 시선은 단점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특징이라고 하고 싶다. 3D직업으로 보는 거죠.
프레시안 : 아진씨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당과 숙련공이 되었을 때의 일당은 어떻게 다른가.
이아진 : 처음 1년은 거의 무급으로 일을 했다. 하루 2~3만원 정도의 돈만 용돈처럼 받으면서 일했다. 그러다 19살 때 다른 팀장님을 만나게 되면서 초보 일당 10만원을 받고 일했다. 그 이후부터 14만원, 16만원 조금씩 오르면서 2023년도부터는 20만원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 : 18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빌더 목수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아진 : 서울대를 목표로 삼고 학원에 가야만 하는 한국 교육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14살에 이모 손을 잡고 호주로 유학을 갔다. 그때 저희 어머니는 한국의 재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3년 동안 세계 여행을 다니셨는데, 방학 기간에는 저도 그 여행에 동참했다. 그렇게 함께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공간'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느꼈다. 그리고 유학을 하면서 저의 적성을 많이 발견했다. 저는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에 관심과 재미가 있었는데, 이 세 가지가 다 모여있는 게 건축인 것 같았다. 건축에는 미술도 있고 음악의 구조도 담겼고 몸을 움직여서 조화롭게 해야 하는 체육적 작업들도 많으니까. 건축을 하게 되면 재밌겠다는 게 막연한 생각이었다.
졸업반이 되고 건축학과로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재밌을 것 같으니 건축학과로 진학을 희망했다. 건축학과에 들어가서 회사 취업하면 건축가가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학과를 가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았고 배우는 시간만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 1년 동안 고민을 한 끝에, 18살 1학기 끝나자마자 자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부모님도 본인들의 집을 만들려는 생각을 해서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일하는 아빠를 따라 나간 목조 주택 건축 현장에서 그 매력에 빠져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그때 제 나이가 18살이었다.
프레시안 : 처음 일 했던 현장에서 빌더 목수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는데, 첫 현장의 어떤 면이 인상 깊었나.
이아진 : 폭염주의보가 있던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첫 현장은 경기도 여주였다. 제가 듣기로는 그날 발 디딤판을 나무로 만드는 데크 작업을 해서 하루 만에 끝나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허허벌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 날은 토목 공사부터 시작해야 하는, 집을 짓는 진짜 첫 번째 날이었다. 데크 작업인 줄 알고 갔는데 너무 힘들 것 같아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밌었다. 측량하고 땅을 파내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하면 앞으로 펼쳐질 날이 기대가 됐다. 학교를 자퇴하고 건축을 경험하고 싶던 찰나였는데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그땐 저에게 그런 경험이 간절했다.
프레시안 : 18살 여성이 현장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
이아진 : 처음에는 여자고 어리다는 이유로 장벽을 좀 느꼈다. 저를 팀원의 한 명으로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냥 아빠 따라온 18살 꼬꼬마 여자애로 봤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은데 저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서 오는 장벽을 많이 느꼈다. 제가 어느 정도 초보를 지나 실력이 쌓이면서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는 시기가 됐을 때도, 일을 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았다. 어리니까 무시를 한 거죠. 저는 그래도 이제 5년차고 어느 정도 이 일의 과정이라든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데, '어리니까 뭘 모르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보통 건설 현장은 나이든 남성분들이 주로 계시니 어린 여성인 저와는 완전히 상반되어 섞이기가 어려웠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저를 팀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깍두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 :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남성 동료에게 동등한 동료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아진 : 어떤 분들은 현장이 저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현장 일은 힘들고, 체력적으로 힘도 많이 필요하니까. 남성들은 나이가 어려도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린 여성인 저는 현장과 안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를 보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부터 했던 것 같다. 저도 한편으로는 그런 의심이 이해는 되지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집짓는 일은 진짜 힘들어서 여자가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 말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많이 물어보고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
프레시안 : 어떤 상황에서 의심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들었는지 알려 줄 수 있나.
이아진 :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설비작업을 하는 다른 도급팀에서 사람이 왔다. 그 분이 제가 현장에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저한테 '어려보이는 아가씨가 있네', '레일건(목재에 못을 박는 도구)은 들 수 있겠어?'하면서 웃으시는데 그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저는 이미 다 할 줄 아는데. 그리고 또 '얼굴마담이네', '현장의 꽃이다', '홍보 모델'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프레시안 : 여자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부당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처했나.
이아진 : '얼굴 마담'이다 이런 이야기는 상대할 가치가 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별로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 '할 수 있겠냐'는 그런 의심에 제가 대응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가 더 성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성장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서 높이 올라가면, 내가 할 수 있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능력을 알아채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기로 버텼다. 누가 이기나 보자. 몇 년이 걸리든 나는 보여줄 거니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악물고 웃으면서 성장하는 수밖에.
프레시안 : 취재를 하다 보니 여성 노동자들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누구나 힘든 상황이어도 여성으로서 편견을 강화할까봐 힘들어도 선뜻 티를 내지 못하더라.
이아진 : 합판이 하나에 20kg이다. 근데 그것보다 더 무거운 합판이 있다. 큰 베란다 문하나 사이즈의 합판인데, 무게가 40kg 가까이 된다. 20kg짜리 합판은 들겠는데, 큰 합판은 사이즈도 크고 무거우니까 들리질 않더라. 자존심이 상했다. '못들지? 앉아있어'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팀원들의 배려는 고마웠지만 내가 직접 들고 싶었다. 계속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 합판을 들고 싶어서 운동도 시작했다. 근력운동을 하면서 일할 때 필요한 알짜 근육을 키웠다. 그렇게 계속 시도한 끝에 어느 날 40kg 짜리 합판을 들었다.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그 큰 합판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배려해줘도 일부러 더 들려고 하고, 더 열심히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못 한다기 보다는, 안 하고 싶다. '너는 못할 것 같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니까 그 전제에 맞춰 행동하고 싶지 않다. 성별로 일의 능력을 판단하는 경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빌더 목수 중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이아진 : 제가 아는 사람은 2명이다. 우선 여성 목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제가 안 보이는 곳에서도 활동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SNS에서나 제가 볼 수 있는 분은 2명 정도다.
프레시안 : 현장에 젊은 여성 목수의 비율이 적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아진 : 우선은 여성 빌더 목수의 전례가 없다. 롤모델이 없다. 외국에는 여성 목수가 진짜 많다. 호주의 경우 여성 목수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환경이 평등하고 조화롭다. '여자는 목수를 못 할거야' 라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직업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애초에 여자를 떠나서 젊은 목수도 없다. 하던 분들만 하고 새로운 유입은 많지 않다. '블루칼라'라는 말도 긍정적인 의미로 활성화된 지 얼마 안됐고, 청년 목수들도 이제 막 생기는 것 같다. 여성 목수가 적은 이유는 우선 목수를 많이 알지도 못하거니와, 이 직업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도 않은 것 같다.
프레시안 : 한국의 건설 현장도 젊은 세대들이 찾는 일터가 되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
이아진 : '노가다'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애초에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게 귀한 직업, 몸 쓰는 직업은 별로 안 좋은 직업으로 나뉘니까. 이 직업을 선택하는 옵션은 인생에서 빠지게 된다. 여성들도 굳이 이 직업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렇게 교육을 받고 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적성이 이 일과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 일을 자신의 선택지에서 제외시켜버린다. 저도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면 목수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업을 선택했을 것 같다. 호주에서는 목수들 스스로의 프라이드가 높다. 연봉도 높고, 워라밸(워크라이프밸런스)도 좋으니까. 제가 호주 학교에서 체육대회 하면 목수들이 일할 때 입는 형광 조끼를 입고 코스튬을 하기도 한다. 큰 트럭을 끄는 게 로망인 친구들도 있었고, 방과 후 학교에서 목수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많았다. 호주에서는 아빠 직업이 목수인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저도 목수가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목수를 하겠다고 하니 '노가다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엥? 싶었다.
프레시안 : 직업 인식에 대한 괴리감이 엄청났을 것 같다.
이아진 : 그 때 제가 찾았던 돌파구가 SNS였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 직업을 향한 프라이드와 존경심을 계속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부터 작업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이 직업을 대하는 리스펙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중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과 밀짚모자를 쓰고 일 했는데, 일 할 때 입는 워크웨어, 테크웨어를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 했던 게 SNS 활동을 위한 첫 시작이었다. 사무실에 가려면 양복을 입는 것처럼 작업을 할 땐 작업복을 입는 루틴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호칭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저를 소개할 때 '빌더'라고 이야기 하는 게 목수도 종류와 작업이 다양한데, 제 직업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빌더라고 저를 소개한다.
나만 열심히 하고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으면, 씁쓸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이런 저의 생각과 행동을 영향력 있게 더 퍼뜨려야겠다고 생각해서 SNS를 시작했다. 사실 사회적인 시선도 바꾸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작업자들끼리 뭉쳐서 우리가 스스로 바뀌고 싶었다. 일을 하다보면 노동자 스스로도 '노가다'라고 자신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끼리 높은 프라이드를 갖자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작업복도 소개하고 공구도 소개하다 보면 우리끼리 더 재밌게 공감하고, 또 이 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걸어온 사람들의 문화는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나같은 사람들을 더 늘리는 게 맞지 않나. 젊은 목수들이 자신의 작업물을 SNS에 공유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힘이 된다.
프레시안 : 또 미래세대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이아진 : 수익과 직급도 체계화 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시스템이 없다. 미국에서는 국가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국가자격증 없이 일하면 불법이다. 초보, 수습 목수로 시작을 해서 경력을 채워 또 다시 심화된 자격증을 딸 수 있고 그 자격으로 사업을 하는 구조다. 수익 체계도 경력에 따라 세부적인데, 한국은 없어도 너무 없다.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전무하다. 어떤 팀은 팀장의 기분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고,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자격과 경력에 따른 투명한 수익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편견에 상처도 받고 괴리감에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게 만들었던 동기는 무엇인가.
이아진 : 당시 저한테는 일밖에 없었다. 기회가 그것밖에 없었다. 나만의 꿈을 찾겠다고 호주에서 자퇴하고 한국으로 왔는데 이 기회 앞에서 도망치면 다른 데서도 도망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도망다기 싫어서 버텼다. 신념이 있고 노하우가 있다기 보다는 포기를 안 한 거다.
프레시안 :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이아진 : 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제 후배들도 생겼다. SNS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방송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전부 다 목수로서의 제 삶을 다룬 방송에만 출연을 했다. 그걸 보고 '저 시작했다',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냐' 등 메시지도 많이 받는다. 그 중에는 여성분들도 있어서 정말 좋았다. 저를 통해 동기부여를 얻는 이들을 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이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든다.
프레시안 : 일을 배우기 위해 기술 공부를 더 하고 자격증도 딴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자격증을 땄나.
이아진 : 건축목공기능사, 방수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현장에 다녀와서 매일 밤 복습도 하고, 근력 운동으로 실전 근육도 키웠다. 새로운 자재와 공법들도 외국 채널을 통해 공부한다.
프레시안 : 건축학과로 대학을 진학하기도 했다.
이아진 :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틀이 만들어졌다. 제가 그게 없어서 대학을 안 가고 자퇴를 했던 건데.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나만의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건축적 신념이 생기니 지식을 쌓고 더 배워야 했다. 저는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 하면서 저만의 기초 토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토대를 만들었고 이 위에 집을 지어야 하니, 지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입시 준비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 후배들이 일하는 현장은 어떤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나.
이아진 : 이 현장에서 일을 하는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는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프라이드 높은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고, 오고 싶은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나는 현장 다녀', '나 목수야' 라고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일터였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이아진 : 나중에 건축을 더 배워서 저만의 '어벤져스 팀'을 만들고 싶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재난 지역이나, 학교와 공공 공간이 필요한 나라들에 도움을 주고 싶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우리 팀이 함께 하는 거다. 그런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실무를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수로서의 커리어도 중요하다. 이 일로 꼭대기까지 가보고 싶다. 사람으로서 꾸준하게 성장하고 싶은 것도 나의 목표다. 멋있는 선배로 성장해서 후배들을 많이 양성하고 싶다.
프레시안 :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나.
이아진 :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들은 엄청 멋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막노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진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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