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당 지도부에 자신을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달라고 요구했다. 당 최고위원회가 인 위원장의 '당 주류 희생' 권고 등 껄끄러운 요구를 자체 의결 없이 공관위에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대의 탈출구를 끊겠다고 나선 셈이다. 혁신위는 또 '당 주류 희생 권고안'의 정식 혁신안 의결 및 혁신위 조기 해산론, 비상대책위원회 전환론 등을 언급하며 지도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인 위원장은 30일 국민의힘 혁신위 11차 전체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당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조치를 국민께 보여드려야만 잃어버린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당 지도부가) 혁신위 제안을 공관위로 넘기겠다는 일반적 답변으로 일관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저 자신부터 먼저 희생하며 당 지도부에 제안한다. 저는 이번 총선에 서대문 지역구를 비롯한 일체의 선출직 출마를 포기하겠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신다고 공언하셨던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인 위원장은 이후 별도 입장문을 통해 "2호 안건(당 주류 희생)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없다면,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려놓을 테니 차라리 공관위원회에서 혁신 작업을 실천으로 완성하게 해달라는 요청"이라며 "혁신위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공관위원장을 요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발언 취지를 설명했다.
'당 주류 희생' 권고의 정식 혁신안 채택도 이날 이뤄졌다. 결과 브리핑에서 오신환 국민의힘 혁신위원은 "6호 혁신안으로 다음과 같이 의결한다"며 "혁신 조치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운 분들부터 총선 불출마 및 험지출마 등 희생의 자세를 보일 것을 재차 요구한다"고 밝혔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오 혁신위원은 '인 위원장의 공관위원장 자천에 혁신위원들이 동의했나'라는 질문에 "인 위원장께서 12명의 혁신위원에게 사전에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시겠다고 양해를 구했다"며 "구체적 내용까지는 저희에게 (사전에) 공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당 주류 희생'을 담은 6호 혁신안의 최고위원회의 보고 시점에 대해서는 "다음 주 월요일이나 목요일 최고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 순서"라고 했다. 그는 '당 지도부가 혁신위의 요구를 받지 않으면 조기 해산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 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대위 전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는 '선거 때까지 현 지도부를 유지하는 데 찬성하나'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하고, '비대위 전환을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에는 "필요하면 해야 한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도부로는 내년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보나'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인 위원장은 "이 지도부가 결단을 내리거나, 아니면 보충하거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나"라며 "원희룡 장관(이 험지인 인천 계양을 출마 시사) 등 아주 신선한 바람이 불고, 좀 이르지만 한동훈 장관도 거기에 몫을 해주십사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답했다. '비대위원장에 한 장관과 원 장관이 거론된다'는 질문에도 그는 "좋다. 다 신선하다. 아주 좋다. 젊고 아주 존경받고 객관적이고 머리 좋다"고 긍정했다.
당 지도부·중진·친윤 핵심 인사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출마 등 '희생'을 요구하면서 자신이 공관위원장이 되어 이를 집행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보임과 함께, 지도부가 이같은 혁신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에는 혁신위 조기 해산이나 비대위 전환 카드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날 혁신위 발표의 요지다. 인요한 혁신위가 이처럼 연이어 강수를 둠에 따라 혁신위와 지도부 간 갈등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인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뒤에 있다. 제 뒤에 굉장히 '빽'이 있는 걸로 착각하는데 국민의 뜻"이라며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본인(김기현 지도부)들이 국민들로부터, 여론으로부터 매를 맞는다"고 추가 압박했다.
여당 지도부 안에서는 혁신위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된다. '당 주류 희생' 권고 이후 혁신위와 갈등해 온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 위원장의 공관위원장 추천 요구에 대해서도 "그동안 혁신위 활동이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그런 목표를 갖고 활동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국회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 공관위원장 자리를 갖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반면 윤석열 대선캠프 대변인 출신인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안타깝게도 세간에서 우리 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혁신위의 변화 속도에 지도부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매서운 질책이다. 혁신위의 실패는 곧 우리 당 지도부의 실패"라며 "지도부가 혁신위 출범에 전권을 약속하면서 어렵게 모셔 온 그 소신처럼 혁신위가 더 가열차게 국민 눈높이에 맞춘 활동을 이어가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청년보좌역 출신인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전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혁신안 대다수도 저 개인적으로는 다 공감한다"며 "지도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혁신안을 수용하는 의지를 보여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도부 일원으로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최고위원은 갈등의 시작점이 된 '당 주류 희생' 혁신안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서 당헌당규상 공관위로 넘기더라도 지도부가 힘을 팍팍 실어서 넘겼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험지 출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국민들이 희생과 결단을 바라신다면 당으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분, 힘 있는 분들부터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치 신인으로서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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