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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준비하는 정치인들, 그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는데…

[지방정치 오디세이 13] 정치인들의 서재에 꽂힌 책들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 각광을 받는 시대다.

디지털 문해력이란 전자도서나 유튜브,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매체를 접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의미한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점차 그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식사회에서는 ‘올드 미디어’로서 책을 소환하고 있다.

그가 읽은 책으로 그의 관심도와 지적 능력을 가늠하고 그의 철학이나 지향하는 바를 추론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서가에 꽂혀 있는 도서 ⓒ프레시안

<프레시안>전북취재본부는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전북지역의 입지자들이 읽은 책과 그 책 속의 한 구절도 궁금했다. 다양한 각도의 질문을 통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의식세계의 일단을 살펴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최근에 감명깊게 읽은 책과 책 속의 한 구절을 소개해 주시지요”라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총선입지자들

정치분야에 국한될 것이라는 당초 가설과 달리 의외로 내년 총선을 앞둔 전북지역 입지자들의 관심분야 도서는 다양했다.

당연히 정치관련 서적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소설은 물론 인문 교양서적, 수필집은 물론 시집과 심지어 논문을 꺼내든 입지자들도 있었다.

모두 36명의 입지자들이 답변을 보내 왔으며 이 가운데 5명은 해당 질문에는 응답을 하지 않았다. 답변을 하지 않은 이유도 부기하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바쁜 일정 탓에 ‘최근’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62)은 “바쁜 일정으로 최근에 읽은 책이 많이 없기도 하지만 크게 감명 받았던 구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밝히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조정래 작가의 글과 생각 그리고 실행력에 대한 설명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조 작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하게 하여 인생은 한발 한발 걸어야 하는 천리길이란 것을 깨우쳐 줬다고 한다”며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조 작가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과 같은 지역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유재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책을 읽는 삶보다는 책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로 특정한 도서를 꼽지 않았으나 그는 평상시 상당한 독서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답변에 응한 입지자들이 꼽은 책을 종류별로 보면 정치관련(정치인의 자서전 포함)분야가 12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역사인문 4종, 소설과 경영, 종교분야 각 3종, 수필 2종, 논문과 시집 등이 각 1종이다.

중복된 추천도서는 ‘정세현의 통찰’

여러 종의 책 가운데 중복으로 추천된 도서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최근 펴낸 ‘정세현의 통찰: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가 유일했다.

이 책은 저자가 50년 가까이 학문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천착해 온 국제질서와 남북관계 등에 대한 현상과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 외교의 ‘자국 중심성’을 명쾌하게 설명한 역저다.

이 책을 꼽은 이는 전주시을에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는 이덕춘 변호사와 익산의 이희성 변호사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같은 직업에 관심사도 비슷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인 이덕춘 변호사.

이덕춘(47) 변호사는 이 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외교의 목적은 국익이다. 자국 중심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희성(51) 변호사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중국과 미국 양강체제로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역할, 남북관계의 해법, 중국에 편중된 무역구조의 재편 등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인의 저서를 꼽은 또 다른 입지자는 유성엽 전 국회의원이다.

그는 김종인이 쓴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를 꼽고 책 속의 한 구절로 ‘벽을 깨부수지 않고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는 부분을 짚으며 “현재 많은 국민들이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위기 상황 또는 극단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며 함께 노력해 장벽을 부수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두세훈(47) 변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저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를 꼽고 ‘정치인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국민보다 반보만 앞서가야 한다’는 구절을 제시했다.

황현선(57)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조국 전 장관의 신작인 ‘디케의 눈물’에서 ‘법을 이용한 지배는 가짜 법치이다. 시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고통받는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이 진짜 법치의 출발점이다’라는 구절을 들었다. 최근 여야간 ‘법치’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책 속의 한 구절로 대신한 것을 보인다.

정치에 나서려는 자, 정치를 더 깊이 알아야 한다는 다짐일까. 정치 관련 에세이도 관심의 대상이다.

전권희(52) 진보당 익산지역위원장은 ‘정당의 발견’에 등장하는 ‘정당체계는 다원적이어야 하고 정당 조직은 유기적이어야 한다. 먼저 정당체계는 사회적 다원적 갈등 구조에 맞게 폭넓은 구도를 가져야 한다’는 구절에서 공감을 표했다.

정희균(56) 노무현재단 전북 공동대표는 막스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라는 구절에서 감흥을 얻었다고 밝혔다.

최형재(60)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박상훈의 ‘정치적 말의 힘’ 책 속에 소개된 오바마의 연설문 가운데 ‘선거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냉소의 정치인가, 희망의 정치인가, 여러분을 희망의 정치로 부르고 있다’는 구절을 주목했다.

진보-보수에 따라 확연하게 갈라지는 책의 취향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보수 성향의 입지자들은 정치적 지향에 걸맞은 책을 꼽았다.

국민의힘 소속인 나경균(64) 전북대학교 특임교수는 2017년 양동안 교수가 펴낸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꼽았다. 보수 일각에서는 ‘한국 최고의 사상 전문가’라고 꼽히는 양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가 ‘느슨한 형태의 내전 상황’이라고 진단했으며 반공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좌익세력과 반공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우익세력 간에 내전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경균 국민의힘 김제부안 당협위원장. ⓒ

나경균 특임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대한민국이 존립을 계속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판가름되는 이 마지막 순간에 그 방향선회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단서가 아직은 있다.’는 구절을 꼽았다.

조배숙(67) 전 국회의원은 올해 8월에 출간된 ‘다문화주의는 국가자살이다’라는 책을 꼽아 들었다. 조 전의원은 책 속의 한 구절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부분을 들어 결혼 이민 등으로 다른 사회에 정착한 이들을 ‘굴러온 돌’로 표현 책 속의 내용에 공감을 표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만섭 박사가 현지에서 살면서 경험헸던 체험을 바탕으로 '다문화 국가? 순진함과 어설픔'이라는 주제의 글을 서술했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개념 정리도 없이 다문화나 다민족화, 다문화에 대한 한국 다문화주의자들의 나이브한 감성자극적 접근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페미니즘 비판으로 잘 알려진 오세라비 작가는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있다'에서 서유럽에서 실패한 다문화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한국 상황의 우려를 담았다.

정치와 한 걸음 떨어져 세상을 바라 보리라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정치적인 책만 가까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성 충만한 서설이나 수필, 시 등에 관심을 보이고 철학서나 인문학 분야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입지자들도 많았다.

성준후(57)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은 박종화의 소설 ‘금삼의 피’를 꼽았다. 성 부대변인은 “이 책은 문제적 인간인 연산군을 세상으로 처음 소환한 소설로 역사가 증언하는 실록의 연산보다 어머니를 잃고 그것을 안 자식의 슬품 그리고 외롭고 고통스런 인간 연산을 이해의 한계를 넓혀 그려냈다”면서 “연산의 복수가 시작되고 이른바 갑자사화 당시 귀인 정씨와 염씨의 아들로 하여금 자루에 쌓인 어머니를 ‘뭉둥이로 때리라’라고 말하는 장면과 살기 위해 그를 실행하는 장면은 권력과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듯 소름 돋는다”고 평했다.

강성희(51) 국회의원은 ‘나미야잡화점의 기적’ 중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어라’라는 구절을 꼽았으며 박희승(60) 변호사도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구절을 제시했다.

채이배(48) 전 국회의원은 독특하게 시집을 펼쳐 들었다. 나희덕 시집 ‘속리산에서’를 꼽은 그는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을 감명깊에 읽었다고 밝혔다.

국내외의 지식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으려는 입지자들도 많았는데 고상진(50) 익산발전연구원장은 프랑스 여성철학자이자 인공지능 교수인 로랑스 드빌레르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모든 삶은 흐른다’ 가운데 방파제가 주는 교훈을 들었다. “마음이 강하든 여리든 우리는 슬픔을 누를 수 있는 마음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는 문장이다.

김원종(59) 전 대통령 비서실 선임행정관은 맬컴 엑스의 ‘희지 않은 것은 모두 검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지역감정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가 문제의 근원이다.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호남이 호남 외 지역과 연대 강화를 통해 균형발전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안호영(58) 국회의원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저서인 ‘처음처럼’에 등장하는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이다.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것보다 더 단단하다.’는 구절을 꼽으며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벌판에서도 작은 보리는 초록의 싹을 틔우듯 상황이 어려울수록 희망을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됐다고 설명했다.

▲오형수 정의당 전 전북도당 위원장ⓒ

오형수(60) 정의당 전 전북도당 위원장 이어령 전 교수의 ‘마지막 수업’ 가운데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나이 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 없이 함께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는 구절을 꼽았다.

이춘석(60) 전 국회의원은 1997년에 출간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역저 ‘총, 균, 쇠’를 들고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에게만 감염된다’는 구절을 꼽으며 “균은 21세기 현재에도 인류를 가장 괴롭히고 있다. 정부와 정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던 문장”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인생도처에 배움터가 널리 있나니…

가장 눈길을 끈 입지자는 박준배(67) 전 김제시장이었다. 그는 ‘호주육아정책동향’을 꼽았으며 그 가운데 ‘출산율 향상을 위해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장을 들었다. 평소 ‘워크홀릭’이라는 평을 듣는 그 답게 논문이나 정책보고서를 꼽은 것이 주목된다.

고종윤(43) 변호사는 금세기 베스트셀러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그 안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구절을 들었으며 김윤덕 국회의원은 ‘지도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저)를 꼽고 ‘지도 밖으로 행군한다는 것은 주어진 길을 벗어나 미지의 새로운 길을 닦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평범하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가슴 뛰는 모험을 한다는 것’이라는 구절로 자신의 가슴도 뛰었다고 말했다.

박진만(61) 전북건축사회 회장은 현직교사인 이기훈이 쓴 ‘동이한국사’를 꼽고 ‘우리는 밝음의 영역을 확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이 많은 고통 속에 소리 없이 사라져 간 우리 조상들의 태양처럼 밝은 소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구절을 제시했다.

신원식(67) 전 전북도정무부지사는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이 쓴 ‘초격차’에 등장하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를 이끌어 가는 리더에게 맡겨진 사명은 생존과 성장일 것입니다’는 구절을, 신현갑(56) 완주무진장 당협위원장은 벤저민 하디의 저서인 ‘퓨처셀프’속에 나오는 ‘당신의 모든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뉜다. 즉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미래의 당신이 갚아야 할 비용 아니면 미래의 당신에 대한 투자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전주시병에서 활동폭을 넓혀가고 있는 정선화(42) 국민의힘 혁신위원은 ‘상도’에 등장하는 ‘경영이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고 얻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배움을 얻었다고 전했다.

▲허남주 국민의힘 전주시갑 당협위원장 ⓒ

종교관련 서적을 꼽은 입지자들도 여럿이다. 그 중 임석삼(66) 한국폴리텍대학 전 김제캠퍼스 학장은 김장환 목사의 ‘승리하리라’라는 책을 통해 영적 능력의 확장과 믿음에 대한 의지를 새긴다고 말했다.

허남주(60) 전주시갑 당협위원장은 법정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절을 되새긴다고 했으며 이환주(62) 전 남원시장은 미얀마의 우조티카 사야도 큰 스님의 편지글을 모은 ‘여름에 내린 눈(SNOW IN THE SUMMER)’가운데 ‘내가 만든 한계와 구속, 내가 풀어야 합니다’는 구절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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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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