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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민영화', '에너지전환 좌초'가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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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력 민영화', '에너지전환 좌초'가 현실화되고 있다

[함께 사는 길] 발전공기업들, 왜 승률 0% '언더독 베팅' 할까

6개 발전공기업(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이 향후 5년간 2조1751억 원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삭감하려는 계획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6개 발전공기업은 같은 기간 4조7379억 원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것으로 보이는데, 석탄·LNG 등 화석연료 발전 시설에 24조2566억 원을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5분의 1 수준이다.

이와 같은 계획은 '2022~2026 재정건전화계획'에 따른 것으로, 한국전력 및 산하 11개 전력그룹사가 지난 2월 사장단 회의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논의한 결과의 후속 조치로 판단된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및 누적되어 온 한전의 적자와 경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마련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

▲한국서부발전이 2015년부터 운영 중인 화순풍력. ⓒ한국서부발전

사실상 단계적 전력 민영화 속도내기

우선 6개 발전공기업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 전력 시스템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의 존재가 희미하게 증명하듯, 우리 전력 시스템은 공공기관을 통해 전력 생산부터 공급까지를 모두 책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 전후로 발전 부문 먼저 민간에 개방되었다. 이윽고 이명박 정부에서의 강력한 경쟁체제 도입 드라이브를 거쳤고, 이후 정권들 역시 시장 친화적 정책 기조를 수정하지 않으면서 2022년 기준으로 전체 발전 설비 중 40%를 민간 기업이 소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신설된 발전기가 많은 가스 화력과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 민간 기업의 점유율이 높은데, 가스의 경우 약 60%가 민간 기업 소유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더 압도적이다. 전체 신재생에너지 설비 중 한전 및 발전공기업이 보유한 비중은 약 7.5%에 불과하다. 90% 이상의 설비가 민간 기업 소유인 것이다.

정리하면, 발전공기업은 전체 발전 설비의 약 60%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적으로 석탄 화력·원자력·LNG 일부와 같은 오래된 설비, 위험한 설비에 의존한 것이다. 물론 석탄 화력과 원자력이 설비 용량 대비 이용률이 높기 때문에, 아직은 전체 소비되는 전력의 70% 가량을 공공 영역이 공급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은 다르다.

윤석열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2036년까지 석탄과 LNG의 발전량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기준 석탄 32.5%, LNG 27.5%이던 것을 2036년까지 각각 14.4%, 9.3%까지 줄이기로 한 것이다. 더 장기적 계획은 문재인 정부 당시 수립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인데, 시나리오 A안에 따르면 2050년, 원자력 6.1%, 석탄 0%, LNG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발전공기업의 주요 사업 분야가 사실상 30년 안에 소멸하는 것이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전·현 정부의 시각차가 뚜렷이 존재함에도, 에너지 정책의 공통 전제가 되는 것은 총론적으로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드는 시대가 곧 끝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원자력 발전을 독점하는 한수원이야 회사 존립의 불투명성이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애써 자위해 볼 수 있겠지만, 나머지 5개 발전공기업은 사업 부문을 전환하지 않으면 망하는 게 기정사실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발전공기업들은 재생에너지라는 신산업 투자를 줄이고 역으로 화석연료 설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승률 0%의 '언더독 베팅'을 하는 걸까. 거기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음은 물론, 도리어 발전 시장을 사실상 민간에 완전히 넘기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발전공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투자 철회 방식은 세부적으로 지분 투자 축소, 신규 사업 철회부터 지분 매각까지 있다. 현재도 발전공기업의 설비 자산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0% 내외인데 이마저 더 줄이겠다는 뜻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설비는,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 목표치로 봐도 2023년 32.8GW에서 2036년 108GW까지 세 배 이상 뛸 예정이니 발전공기업들의 계획은 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철수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환경 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 방안'에서 그 행간을 찾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향후 재생에너지 보급을 민간이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것을 정책 골자로 삼고 있다. '민영화'를 협의로 이해하면, 공공서비스 분야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또는 공기업을 민간 자본에 매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간 전력 시스템의 변화를 발전 부문 자유화, 경쟁체제 도입 등이라는 완곡한 이름으로 불러왔고 이는 일부 환경 진영에서도 답습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분명 이를 우회적 민영화로 이해하는 흐름도 존재했다. 이제 후자가 더 정확한 이해였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발전공기업들이 원전을 제외한 신규 발전 산업에서, 사양산업인 화석연료에 자본을 투입하면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시장 점유율을 민간에 압도적으로 넘겨주려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경쟁 체제'에서 스스로 도태되어 퇴장하겠다는 선언이다. '재정 건전화 계획'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전력 시스템에서 공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무력화되며 더이상 발전 부문을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9.23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석탄발전은 이제 그만'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공공 주도 없이 에너지전환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의 보수적인 목표치를 따라도 재생에너지 보급은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신규 보급 용량은 2020년 5.5GW를 정점으로, 2021년 4.4GW, 2022년 3.8GW(잠정)로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올해 보급 용량은 3GW에도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재생에너지에 적대적인 정부의 출범에 따른 시장의 위축을 포함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재생에너지 원별로도 다르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재생에너지가 신규 부지를 찾지 못하는 문제, 정부의 소극적 지원으로 경제성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 문제가 표면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는, 정부가 일종의 신(新)산업인 재생에너지 사업을 민간에 맡기고 있으면서 제도 개선과 정책 정비를 통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적 측면에서나 신산업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나 육성되어야 하는 부문이라는 것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현실 정치 세력도, 정부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말만 요란해지고 실제 현장에선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다양한 시장 지원 제도를 도입해 재생에너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RPS 개선, 한국형 FIT 확대, RE100 지원 강화,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규제 개선, 인허가 간소화, 계획입지 및 경쟁입찰 제도 도입 등 제도 개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급격하게 늘리고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 추진되어야 할 정책이다.

그러나 더 확실하고 가시적인 방법은 이미 우리 정부가 가진 '자산'인 발전공기업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공공 주도의 대규모 입지 선정, 인허가 간소화, 계통 연계 등은 공기업과 연계할 때 더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도 더 수월함은 물론이다. 더욱이 재생에너지 설비가 대부분 민간 자본의 소유인 상황에서 에너지 부문의 공공성을 사수하려면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가 더 절실하다.

재생에너지 잠재 입지가 큰 입지들은 주로 해상, 담수호, 농지, 도로·철도, 산업단지와 같은 곳이거나 도심지 내 주차장, 공공건물 옥상 등이다. 전자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가능한 지역이고 후자는 분산형 에너지를 위해 꼼꼼히 챙겨야 하는 지역이다. 또, 대규모 설치가 가능한 지역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공공의 정책 지원과 연계되어야만 사업의 효율성이 형성된다. 이 경우 발전공기업이 사업자로 참여해 주도성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하고, 그래야만 한다. 중소규모 재생에너지는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동조합형으로 시민 소유·주도의 공공성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수만 명을 직간접 고용하고 있는 발전공기업들이 재생에너지로 사업 분야를 전환하지 않은 채로 탈화석연료 시대가 도래하면, 노동자들의 대규모 일자리 위기와 에너지전환 사이에 심각한 도그마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공공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전환 속도 측면에서나 전환의 질적 측면에서나 에너지전환의 좌초 리스크가 상당해진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가로막는 기후 악당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왜곡된 인식(혹은 정체성) 때문이다. 그들이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키지도 못하면서, 공공부문을 무작정 민간에 위탁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세력이라는 것이 첫 번째 문제다. 다음으로는 오염 폐기물을 배출하는 동시에 위험하기까지 한 사양산업인 원전에 집착하는 원전몽(夢)에 사로잡혀 신산업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저하는 무능력함이 문제다. 그래서 9.23 기후정의행진에서 3만 명의 시민들이 외친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라는 구호는 윤석열 정부에 내리치는 죽비 같은 명령이었다. 지금이라도 기후위기 대응과 공공성의 확대를 위해 발전공기업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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