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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에 단식투쟁도 안 되니 전주서 서울까지 700리길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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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삭발에 단식투쟁도 안 되니 전주서 서울까지 700리길 내달렸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0] 전북도의원들의 투쟁일지

"달리는 내내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운 맘이 들었습니다. 단지 전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나와 내 이웃, 주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서러움이 한꺼번에 폭발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뛰었습니다."

지난달 26일 전북도의회를 출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11월7일까지 13일동안 마라톤 대장정에 나선 박정규 전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 임실)은 도로를 달리다 서러운 눈물을 쏟아 냈다.

박정규 의원은 ‘분노의 질주’에 앞선 기자회견을 통해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폭거에 맞서 180만 전북도민의 분노를 온몸으로 알리고자 국회를 향해 마라톤 시위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전북도의회 의원들의 삭발과 단식에도 묵묵부답이고 자신의 공약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대통령에게 새만금과 전북의 운명,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지 깊은 의문이 들었고 힘없는 전북의 서럽고 분한 마음을 이 한 몸을 던져서라도 전 국민께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박정규 의원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열정과는 달리 마라톤의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뜀박질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신발조차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지쳐버린 것이다.

박 의원은 ‘부끄럽지만 평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고 자신을 질책했다.

▲새만금 예산 삭감에 항의해 전주에서 서울까지 마라톤에 나선 박정규 전북도의원(가운데)과 릴레이 동행에 참여하고 있는 도의원들이 휴식시간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기 도의원SNS

숨이 막히고 알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엄습할 때마다 ‘이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중단되지나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생면부지의 국민들이 지나던 차를 세우고 ‘새만금 사업은 꼭 진행돼야 한다’거나 아주머니들이 과일을 깎아 건네며 ‘열렬히 지지한다’는 격려가 뜻밖에 큰 힘이 되었다. 충남의 논산지역을 통과할 때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며 경찰서에서 에스코트를 지원해 줘 무거운 여정에 큰 용기와 감동을 주기도 했다.

‘마라톤 시위’에 나섰던 초반 북받치는 분노의 감정은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그래도 악착같이 싸워서 전북의 미래세대에게는 이러한 설움을 남기지 말자’는 간절함과 다짐으로 오히려 힘이 솟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칠팔월 땡볕이 열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전북의 미래 또한 이런 고난과 역경을 뚫고 희망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

마침내 1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 5000여명이 참가한 범전북 도민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에 커다란 환대를 받으며 13일간 280㎞의 질주는 막을 내렸다.

박정규 의원은 여정을 마친 뒤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의 부당성과 이는 곧 전북 홀대, 명백한 지역 차별이란 것을 전 국민께 알렸고 새만금이 전북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임을 당당하게 외쳤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새만금 예산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짓밟힌 전북의 자존심을 되찾고 전북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새만금을 살려내라" 11월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범도민 총궐기대회에서 국주영은 전북도의장과 도의원들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북도의회

박정규 의원의 마라톤 시위에 앞서 전북도의회가 새만금SOC 정부 예산안 대폭 삭감에 따른 전북도의회 차원의 집단 항의는 8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주영은 전북도의회 의장과 도의원 39명 전원이 참여한 ‘새만금SOC예산 정상화 및 잼버리 진실규명 대응단’은 이날부터 활동이 필요한 때까지 무기한으로 활동에 나섰다.

대응단은 또 빠른 의사결정과 기민한 대응을 위해 8명으로 별도의 실무추진위원회(위원장 김정기 도의원)를 구성하고 범도민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이들의 첫 번째 활동은 결성 다음날인 8월23일 국회를 찾아 잼버리 진실규명과 관련해 여성가족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를 각각 방문해 위원장과 각 간사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대응단을 대표해 국회를 찾은 염영선 전북도의회 대변인과 김정기·김성수 의원은 각각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행안위 간사, 고민정 최고위원, 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 김의겸 법사위원, 국민의힘 이만희 행안위 간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을 만나 전북의 입장을 전달했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 원인을 두고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이 전북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여야 정치권이 새만금 잼버리를 정쟁의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국정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 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다.

또 새만금 잼버리를 빌미로 새만금 국가 예산만 챙겼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와 거짓 주장이 재생산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도 요청했다.

야당의원들의 공감과 지원약속이 이어졌고 여당에서도 “새만금 잼버리에 대한 전북도청의 책임론을 말한 것이지 전북도민과 부안군민에게 피해 줄 의중은 전혀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대응단이 꾸려지고 실무추진위가 갖춰지자 속속 도내 시민단체와 향우들의 참여가 늘기 시작해 약 20여일만인 9월12일 전북지역 102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참여하는 ‘전북인 비상대책회의’가 결성됐다.

언어는 비장했고 결의는 뜨거웠다.

역사의 고비마다 부당하게 침해받고 정의와 상식이 훼손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항거해왔던 전북인의 후손들은 “이번처럼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자행된 새만금 죽이기 차원의 무자비한 공격은 온 몸으로 막아서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만금 국가사업 정상화를 위한 전북인 비상대책회의 출범식이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라감영 선화당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여단체 대표 등이 발언을 듣고 있다. ⓒ프레시안

새만금 비상대책회의는 △잼버리 파행 책임을 전북에 떠넘기지 말 것 △새만금 국제공항 정상 추진 △감사원은 맞춤형 표적감사를 하지 말 것 △국민의힘 송언석, 정경희는 악의적 허위 발언을 사죄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전북인 비상대책회의 출범을 독려한 것은 앞선 전북도의원들의 1차 집단 삭발과 단식농성이었다.

9월5일부터 시작된 1차 삭발투쟁에는 14명의 의원들이 참여했으며 릴레이 단식 농성에는 11월8일까지 65일간 도의원 35명이 참여했다.

제403회 임시회 개회식이기도 한 이날 도의회 청사 앞에서 열린 1차 삭발식에는 이정린·김만기 부의장, 김정수 운영위원장, 나인권 농산업경제위원장, 박정규 윤리특별위원장, 염영선 대변인, 임승식·황영석·박용근·김동구·윤수봉·한정수·장연국·진형석 의원 등이 참여했다.

또한 전북당원들의 국회 항의집회가 열린 9월7일에는 전북지역 김윤덕, 김성주, 신영대, 김수흥, 윤준병, 이원택, 안호영 국회의원과 함께 이병철 전주을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이 추가로 삭발 대열에 합류했으며 기획재정부에 대한 항의집회와 8명이 참여한 2차 삭발투쟁이 9월 12일에도 이어졌다.

2차 삭발에는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과 전북도의원으로는 이병도, 김성수, 최형열, 권요안, 김대중, 김정기, 박정희, 전용태 의원 등 8명이 동참했다. 특히 박정희 의원의 경우 여성의원으로 삭발에 나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다음날에는 민주당과 전북도의 예산정책협의회가 열리는 현장을 찾아 피켓시위를 벌이고 19일에는 전북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앞두고 도의회 대응단 차원의 입장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답보상태를 보이던 전북도의원들의 투쟁은 릴레이 단식으로 이어지다가 대응단과 전북인 비상대책회의가 합동으로 수도권 출향인 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다시 불타올랐다.

10월16일에 열린 수도권 출향단체 간담회에는 재경전북도민회와 신구회장협의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경기인천 전북도민회 연합회 등이 참여해 보다 체계화되고 강력한 결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이날의 모임은 11월7일 국회에서 열린 대규모 궐기대회의 시발점이 됐다.

한편으로는 대응단은 전북 시군의회 의장협의회와 간담을 이어가고 민주당 원내지도부를 만나서도 재차 도의회의 입장을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북도의원 30여명이 24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전라북도 국정감사장 입구에서 국감의원들이 입장하는 동안 '새만금 SOC예산 살려내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프레시안(김대홍)

이어 10월24일 오전 전북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 30여명의 도의원들은 피켓을 든 채 침묵하는 시위로 국정감사 위원들에게 전북도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예산삭감을 항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전북도의원들의 집단 삭발과 릴레이 단식에 대해 지나치게 과격한 투쟁방식이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참여했던 이들은 정당한 권리의 표현이자 항의의 수단이었다는데 입을 모은다.

김정기 대응단 실무추진위원장은 “난생 처음 삭발과 릴레이 단식에 동참하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러한 행위가 전북도의원으로서 정당한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새만금 예산삭감은 절대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로, 삭발과 단식은 물론 예산복원을 위한 행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결의를 밝혔다.

현재 전북도의회는 65일간의 단식일정을 일단 마무리하고 도의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행정사무감사와 전라북도와 도교육청에 대한 예산심의에 돌입했다.

수도권 출향인 단체의 한 사무총장은 “지난 몇 달간 전북도의원들의 지역을 위한 끈질긴 투쟁과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지역을 책임지는 정치인들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고향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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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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