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40년 베테랑 잠수사가 물속에서 죽었다.
이내흥(가명, 당시 61세) 씨의 업무는 낡은 수문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교체 작업 전 누군가 수문을 닫아놔야 했다. 하지만 수문은 열려 있었고, 이 씨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약 6시간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 당시 이내흥 씨가 남긴 지갑에선 그의 딸 사진이 발견됐다. 딸은 친구 같던 아빠를 물속에서 잃었다. 2021년 7월 2일, 경북 경주시 보문호 수문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당시 이 씨의 유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아빠 주변 잠수부 분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수문을 열어놓고 잠수사를 투입하는 건 죽으러 들어가는 것이라고...."
-2021년 7월 26일 이내흥 씨 유족의 <안동MBC> 인터뷰 내용
죽음의 책임을 따지는 형사 재판이 시작됐다. 이내흥 씨는 한국농어촌공사가 하도급을 준 건설회사 소속이었다. 농어촌공사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023년 3월 법원은 농어촌공사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있고 불과 3개월 만에 또 노동자가 죽었다. 이번에도 '농어촌공사'의 '수문'에서 '위험작업'을 하다가. 지난 6월 전남 함평군에 있는 학야 제수문. 수리시설 감시원(이하 수문감시원) 오혜선(가명, 67세) 씨는 폭우 속에 작업을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2년 사이 일어난 두 건의 닮은꼴 사망사고.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내흥 씨 사고에 대한 판결문을 입수했다. 판결문에는 2년 뒤 함평에서 일어난 이 닮은꼴 사고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또 이 사고와 관련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이 이미 담겨 있었다.
2021년 7월 2일 오전 10시. 이내흥 씨는 경북 경주시 보문호에 있는 취수탑 아래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취수탑에 있는 수문이 열리면, 강한 흡입력으로 주변의 물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작업 전에 수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문은 사람도 빨아들였다. 이내흥 씨는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수문에 가까이 갔다가 열린 수문 사이에 끼였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는 6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농어촌공사와 관계 부서 직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농어촌공사는 "사업을 맡긴 발주자에 불과하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급인(농어촌공사)이 작업 전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농어촌공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농어촌공사 측이 사고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여름은 농업용수 공급 요청이 빈번해 수문이 수시로 개방되는 시기"이므로 공사가 수문을 닫고 취수탑의 가동을 정지할 것을 지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은 올해 3월, 농어촌공사에게 산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농어촌공사 경주지사장도 산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다른 직원 두 명에게도 각각 1000만 원, 1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했다.
이 판결 후 3개월이 흐른 6월 27일. 전남 함평군 엄다천에 있는 학야 제수문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
"어머니는 이미 그날 오후에 수문 일부를 열어두셨어요. 비가 많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비가 계속 쏟아지니까 나머지 수문도 열려고 아버지랑 함께 수문에 가신 거죠."
-오 씨의 둘째 아들 지현배 씨
그날 함평에는 시간당 70mm의 비가 내렸다.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긴급재난문자가 연이어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는 밤, 오혜선 씨는 수문을 열러 나갔다. "위험하니 작업에 나서지 말라"는 안내는 없었다. 농어촌공사는 수문감시원 업무가 '위험업무'라는 잘 알고 있었다. '(수문감시원) 도급업무 위탁내역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촘촘한 사고 예방책이 필수적인 업무. 그러나 학야 제수문 안전에는 '구멍'이 많았다. 오혜선 씨는 수문에 끼인 이물질을 제거하던 중에 하천으로 추락했다고 추정된다. 도급업무 위탁내역서에는 수문을 관리할 때 "농업부산물 더미 등 장애물을 육안(맨눈)으로 확인 후 정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어머니께서 수초를 제거하려다 장대가 부러졌고, 그 반동으로 급류에 휩쓸리신 것 같아요. (중략) 그때 다리에 난간만 설치돼 있었어도...."
-오 씨의 첫째 아들 지근창 씨
학야 제수문에는 난간 같은 추락방지 시설이 없었다. 오혜선 씨에게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관리하시던 수문은 현재 전체 새로 단장돼서 없었던 난간과 구명장비가 생기고 노후했던 작업대 등이 교체됐습니다. 만약에 이런 작업이 (사고) 전에 있었다면 과연 어머니는 사망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아들 지근창 씨
'수리시설감시원 안전관리 행동요령'에는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원칙'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그날 오혜선 씨와 함께한 건 다른 수문감시원이 아닌 남편이었다.
"7월 말에 농어촌공사 측과 만나 여러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현재 매뉴얼에 (위험 작업 시) 2인 1조가 규정돼 있지만 인원 부족 등으로 사실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지부장
오혜선 씨가 사망하자, 농어촌공사는 임직원 대상 '성금'을 모았다. 그런데 유가족에게 성금을 전달하기 전에 '합의서'를 내밀었다. '앞으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가족은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합의안을 만들어 농어촌공사 측에 전달했다. 핵심은 '유사 사고 재발방지'와 '문서 형태로 된 공식 사과 성명 발표'다.
농어촌공사는 오혜선 씨가 '농어촌공사의 노동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수문감시원들과는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는다는 게 이유였다. 사고 이후 3개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농어촌공사는 '책임'도 '사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농어촌공사를 향한 질타가 나왔다.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무한한 책임감, 죄송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109일 만이었다. "처리 과정에서 유족께서 느낀 점에 대해서도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이 사장은 '법적 책임을 피해 가기 위해서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한 게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노동청에서 조사 중이다"라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셜록>은 1일 농어촌공사에 '수문감시원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지' 공식 입장을 다시 한 번 질의했다. 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부 관계자는 "국정감사 당시 이병호 사장의 말에는 노동당국의 철저한 원인 규명이 이뤄지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자원관리부 관계자는 "지난주 수요일(10월 25일)에 이병호 사장이 유가족과 면담했다"며, "유가족 뜻에 따라 사과문을 발표할 계획이고 구체적인 문구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농어촌공사에서 가입한 보험이 있어유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오혜선 씨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 즉 농어촌공사의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동시에 농어촌공사가 산안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위반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이와 별개로 전남노동권익센터, 민주노총 나주지부 등 지역 노동계도 농어촌공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다.
판례에 따르면, 근로자성 여부는 계약 형식보다 '실질적인 종속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박준성 노무사(금속노조법률원)는 이번 사건에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봤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하천 관리'라는 서비스의 제공을 도급하는 사업주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구체적인 업무지시와 지휘ᆞ감독 등이 있었다면 직접 사업주로서의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박준성 노무사
조승규 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도 근로자성이 인정될 확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업무에 대한 지시 관리가 필연적일 것이고, 업무공간인 학야제수문도 회사(농어촌공사)의 공간이며, 수리시설 감시가 (오혜선 씨의) 자기 사업이라고 볼 여지는 매우 낮은 등, 이런 이유에서 (오혜선 씨가 농어촌공사의) 근로자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조승규 노무사
'수리시설 운영관리지침'에는 수문감시원의 업무가 명시돼 있다. '도급위탁내역서'에는 일지를 작성해 월별로 제출하고, 월간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이 같은 사실을 들어 농어촌공사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문감시원들은 지침을 위반하거나, 업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계약 종료 등 징계를 받습니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자에게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야 하는 점에서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근로자'로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종사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손익찬 변호사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적용 대상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종사자'로 규정한다. 종사자의 정의는 "도급, 용역, 위탁 등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한 자(중대재해처벌법 제2조제7호)"다.
경주 이내흥 씨 사망사고 판결에서 법원이 언급한 단어가 있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재판부의 경고. 하지만 이 판결이 나온 지 불과 3개월 뒤에 함평 수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반복되는 죽음을 막으려면 위험의 외주화를 끊어야 한다. 노동계가 수문감시원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선 '직접 고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현재 전국에는 7337명의 수문감시원이 있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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