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부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안 공청회가 열리면서 정부 예산안에 관한 본격적인 평가의 막이 올랐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657조 원이다. 3%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쳐 사실상 감액됐다. 관련 통계 집계 사상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그로 인해 재정정책의 총괄 책임자인 정부가 제 역할을 방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정부 예산안의 문제점을 더 상세히 살펴보는 '제11회 2024 나라예산 토론회'가 이날(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미 논란이 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의 문제를 더 상세히 진단한 한편,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세부 분야의 예산 배정 문제도 전방위적으로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참여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후솔루션 등 시민사회단체와 김주영, 민형배, 양경숙, 이소영, 정태호(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혜영(정의당), 윤미향(무소속) 의원 공동 주최로 마련됐다.
재정 건전성도 나빠진 尹 예산안
윤석열 정부의 내년 예산은 크게 '재정 책임성과 재정 건전성이 모두 하락'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총괄 평가가 내려졌다.
재정 책임성 하락 평가 원인은 물가를 고려하면 사실상 줄어든 총지출(657조 원) 규모다. 그만큼 정부가 재정 사용을 아껴 재정 정책 효과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특히 문제는 내년도 예산안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재정 건전성마저 헤쳤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도 총수입은 올해 대비 2.2% 줄어든 612조 원대로 추정됐다. 이는 총지출 예산보다 45조 원가량 부족하다. 결국 적자재정인 셈이다.
이상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은 "내년 총수입 규모가 -2.2%, 총지출 규모는 2.8%로 각각 집계돼 총수입 증가율과 총지출 증가율 차이가 -5%포인트에 이른다"며 "총수입보다 총지출 증가율이 5%포인트 하락하는 상황은 코로나19 시절 등을 제외하면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의 법인세 감세 정책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내년 내국세 수입은 올해 대비 36조 원가량(-10.1%) 줄어든 322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 36조 원의 감소분 중 법인세 감소분이 27조 원에 이른다. 내년 정부 총수입 감소의 핵심이 법인세 부문 감소인 셈이다.
법인세수 감소 이유로는 일단 경기 둔화가 꼽힌다. 하지만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것으로 지적됐다.
이 실행위원은 국회예산정책처를 인용해 "지난해 정부의 세법개정안으로 인해 앞으로 5년간 법인세 감소만 32조 원에 달하고 내년에는 7조 원의 법인세 감소 효과가 발생한다"며 "이에 더해 국회예산정책처 추산 이후 정부는 반도체 등 분야에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추가 감세 정책을 크게 확대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No!
정부는 예산안 발표 시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23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지출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을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2.8%로 제한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정부의 지출구조조정 덕이 아니라 내국세 감소에 따라 자동으로 교부되는 지방이전재원 감소 탓"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이 실행위원에 따르면 이렇다. 매해 예산이 책정되면 정부가 지방정부에 교부하는 교부세와 지방교육청에 교부하는 교육재정 교부금이 각 내국세의 19.24%, 20.79% 비율로 자동 책정된다.
그런데 앞서 살폈듯 내년도 내국세 수입은 올해보다 10%가량 줄어든 322조 원이다. 그만큼 지방이전재원이 줄어든다. 이렇게 자동으로 감소한 지방이전재원 규모는 15조4000억 원이다.
이처럼 지방이전재원이 줄어듦에 따라 내년도 정부 총지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즉 "내년도 총지출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증가를 기록한 이유는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내국세가 감소해 지방이전재원이 자동 삭감됐기 때문"이다.
국세 수입 감소로 인해 재원이 줄어든 것을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출 구조조정을 열심히 한 결과'라고 말하기는 객쩍어 보인다.
과학기술·교육·보건 등 예산 삭감돼
내년 예산안을 분야별로 나눠 보면, 정부 총지출 증가율 2.8%보다 더 크게, 즉 평균 이상으로 증가한 부문은 사회복지(8.7%), 국방(4.1%), 산업·중소기업 및 에너지(4.9%), 교통 및 물류(4.6%), 농림수산(4.1%), 통신(3.4%), 국토 및 지역개발(4.7%), 통일·외교(19.5%) 부문이다.
통일·외교 분야 예산은 올해 예산 6조4000억 원보다 1조2000억 원 증가해 7조6000억 원으로 잡혔다. 공적개발원조(ODA)사업 예산이 3조6000억 원에서 5조 원으로 증가한 영향이 반영됐다.
사회복지 예산은 206조 원에서 224조 원으로 증가했다. 순증액이 18조 원(8.7%) 규모다.
반면 올해 대비 감소한 분야도 있다. 과학기술 부문 예산이 9조9000억 원에서 9조1000억 원으로 8700억 원 이상 깎였다. 예산 감소율이 7.5%에 달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R&D 예산이 삭감된 영향이 반영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출연연구기관 지원액이 6000억 원(-17.2%), 미래유망 원천기술개발이 3000억 원(-34.9%) 삭감됐다.
교육 부문 예산은 96조3000억 원에서 89조7000억 원으로 6조6000억 원 이상 깎였다. 감소율은 6.9%다. 내국세 수입 감소로 인해 교육재정교부금이 자동 삭감된 결과다.
보건 분야 예산은 20조 원에서 19조 원으로 1조 원가량(-5.1%) 삭감됐다. 만성질환 예방관리(-48.6%), 국가결핵예방(-29.2%), 국가금연지원서비스(-12.2%), 희귀질환자 지원(-31.2%), 권역감염병전문병원 구축사업(-65.8%), 119구급대지원사업(-34.7%) 부문 예산이 삭감됐다.
기후위기 대응은 뒷전?
세부 예산을 국정과제별로 나눠 보면, 기후위기 대응 예산이 삭감된 점이 문제라고 토론회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구축 운영 예산이 올해 6억1000만 원에서 내년 5억8600만 원으로 감소했다. 특구산업전환 지원액 18억 원이 배정됐으나 이는 별도로 책정된 예산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3월 개소를 발표한 전환 지원센터는 실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산하 지역산업단 직원 2명(책임 1명, 연구원 1명)으로 구성된 데 불과하다.
산업·일자리전환 지원인프라 예산은 올해 72억 원에서 내년 70억 원으로 감소했다. 이 예산은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자리 변동에 대응해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잡혔다.
탈탄소 전환을 위해 내연 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이 필요하나 환경부는 오히려 전기승용차 보조금을 감액하기로 했다.
올해 무공해차 보급사업 예산은 2조4000억 원으로 지난해 예산 2조5700억 원보다 감소했다. 이 예산이 감소한 것은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한 2021년 이후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기자동차 보급 예산이 올해 1조9200억 원에서 내년 1조7600억 원으로 약 8% 감소했다. 수소차 보급 예산은 올해 6300억 원에서 내년 6200억 원으로 감액됐다. "정부가 보조금 액수를 줄이는 대신 지원대수를 늘린다는 방침이지만, 이처럼 대당 보조금을 감액하는 예산안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에너지공기업을 대상으로 책정하는 공공에너지 선도투자 및 신산업 창출 지원사업 예산은 올해 42억 원에서 내년 1억8000만 원으로 거의 전액 삭감됐다.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올해 1조 원에서 내년 6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세부 항목을 보면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예산이 2500억 원에서 750억 원으로 줄어들었고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예산은 4700억 원에서 34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풍력핵심소재부품엔지니어링센터구축 예산은 올해 77억 원에서 내년 58억 원으로 감소했다. 풍력 너셀테스트베드 구축 예산은 54억 원에서 4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이 무더기 삭감됨에 따라 "한국에너지공단의 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해사기구(IMO)의 5050 국제해운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책정된 친환경중소형선박기술역량강화 예산은 올해 53억 원에서 내년 9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그로 인해 중소형 조선소의 환경규제 대응 역량이 악화해 관련 산업 경쟁력이 약화하리라는 우려가 나왔다.
건물 분야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녹색건축물 보급 활성화 예산도 삭감됐다. 녹색건축물보급활성화지원 예산이 올해 46억 원에서 내년 45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 공언한 건물 분야 탄소배출 감축 목표는 현 5210만 톤인 배출량을 2030년까지 32.8% 줄이는 것이다.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이미 지난해 관련 예산으로 "감축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내년 예산은 그보다 더 깎았다.
신사업으로 내년도 대중교통비 환급 지원 예산이 516억 원 새로 책정됐다. 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지원 규모가 작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와 고물가 대응을 위해 대중교통비를 무료화하는 등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는 마당에 이 같은 예산 규모의 두 배 수준인 1000억 원 수준의 예산 책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후솔루션은 " 정부가 2050 탄소중립 달성 의지를 보인데 비해 감축과 전환을 위한 예산이 적고 구체성도 없는데다, 재생에너지 확대 예산은 오히려 축소됐다"며 "국내 온실가스 감축 정책 정합성을 예산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의료 공공성 후퇴 예산
보건·복지 관련 예산도 각 단체 요구안에 크게 못 미치거나,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예산이 올해 9500억 원에서 내년 130억 원으로 급감했다. 이 예산은 당초 감염병전담병원 등 코로나19 환자 치료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손실보상금이었다. 정부는 이 예산을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됐다는 명분으로 대거 삭감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적자에 허덕이며 경영위기를 겪는 데 대해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아 존폐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해당 지원을 중단한다면 "지방 공공병원을 의도적으로 고사시켜 단계적 폐쇄조치를 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정부가 지원해야 하지만 정부가 잡은 내년도 건강보험가입자지원 예산은 10조5300억 원으로 14.4% 지원에 그쳐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윤석열 정부가 과도한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이라며 보장성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경우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8%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6%에도 못 미친다"며 "정부가 국고지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부족의 주요 원인"이라고 일침했다.
저소득층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예산은 올해 9조9100억 원에서 내년 8조9400억 원으로 감소했다. "만성질환 등 비용 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하는 비급여 치료 및 약제의 급여화를 위해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지적, "빈곤층은 아파도 그냥 참으라는 예산"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은 올해 1500억 원에서 내년 1400억 원으로 삭감됐다. 의료서비스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고 지역에서는 필수의료 지원조차 힘들어지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의료공공성 확대 필요성이 커지는 현 시점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의료 복지 예산 증액에는 인색한 정부가 대신 의료민영화 예산은 크게 늘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관련해 비대면 진료기술개발 예산은 올해 56억 원에서 내년 60억 원으로, 마이데이터 활용기술 연구개발 및 실증 예산은 올해 63억 원에서 내년 83억 원으로, 마이데이터 플랫폼 운영 예산은 올해 97억 원에서 내년 122억 원으로 각각 증액됐다.
또 글로벌 혁신의료기술 실증지원센터 예산이 올해 새로 37억 원 책정됐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는 영리 플랫폼이 의료에 진출하는 통로"라며 그로 인해 "과잉 진료 문제 심화, 의료비 증가, 건강보험 재정낭비,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데이터'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에 축적된 개인의 정보, 병원 진료기록 등을 한데 모아 민간기업이 활용하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의료기업에 고스란히 이식하는 내용이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더해 정부가 개인 의료정보를 의료 민영 기업의 '건강관리서비스'에 활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한국 보건의료는 필수의료 붕괴 등 위기상황"이라며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상업화 통제"이지만 "정부는 반대로 공공의료는 말살하고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며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취약계층 지원 예산도 기대 못 미쳐
노인과 유아 등 취약계층 관련 예산도 감액되거나 필요보다 부족한 수준의 증액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인요양시설확충 예산은 올해 55억 원에서 내년 22억 원으로 삭감됐다. 민간노인요양시설의 폐해가 지적되면서 공공 요양시설 확충 필요성이 커졌으나, 정부가 이같은 요구사항을 무시한 셈이다. 국가의 노인 요양 책임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예산은 올해 5000억 원에서 내년 5460억 원으로 증액됐다. 내년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대상자는 노인 인구 증가율 5.3%에도 맞추지 못하고 올해와 같은 55만 명으로 책정됐다. 즉 실제 수요보다 부족한 수요를 가정해 예산의 소액 증액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인구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노인 인구 증가율을 관련 예산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올해 490억 원에서 내년에는 417억 원으로 감소했다. 육아의 어려움이 저출산 문제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데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공공보육이용률 50% 달성 목표를 위해서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예산은 올해 23억 원에서 내년 16억 원으로 삭감됐다. 중증장애인 중 비경제활동인구가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폐기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통약자 이용 편의를 위해 책정된 자동차전용도로 주행이 가능한 저상 좌석버스 표준모델 개발 예산은 올해 40억 원에서 내년 8억9000만 원으로 삭감됐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유일한 장애인 이동권 공약이었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올해 2조 원에서 내년 2조3000억 원으로 상향됐다. 그러나 현재로는 도움 없이 일상생활 영위가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 14만 여 명의 생활 지원이 24시간 이뤄지지 않는 등 제도 자체가 예산에 맞춰 운영되는 실정이어서 제대로 된 장애인 활동 지원을 위해서는 예산 대비 1조 원가량의 증액이 더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돌봄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평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 당연한, 헌법에 명시된 시민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마이너스 예산"이라고 일침했다.
일자리 예산은 부족
일자리 관련 지원 예산도 사회적·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청년일자리창출지원 예산이 올해 8900억 원에서 65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 예산은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6000억 원, 빈일자리청년취업지원금 480억 원으로 구성됐다. 중소기업이나 건설·해운 등 청년이 부족한 산업 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중소기업으로의 청년 취업을 유도하기 위해 현실적인 수단이 지원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삭감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일반 예산이 4300억 원에서 1500억 원으로, 고용보험기금 예산은 2100억 원에서 700억 원으로 각각 삭감됐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때 회사와 정부가 각각 일정액을 적립해 청년에게 목돈을 마련하게끔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사업이라는 이유로 폐지하는 것 아니냐는 함께살기연구소의 지적이 나왔다.
청년취업진로 및 일경험지원 예산은 올해 1260억 원에서 내년 240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그런데 이 사업에서 가장 크게 증액된 부분은 청년일경험지원 프로그램이다. 올해 553억 원에서 내년 1663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는 공공기관 '체험형 일자리' 지원책이다. 즉, 공공기관 체험형 일자리다. 6개월 짜리 인턴 채용 예산인 셈이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사정을 이유로 채용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예산은 올해 120억 원에서 내년 117억 원으로 삭감됐다. 저출생 대응정책의 중요한 업무과제인 여성일자리 관련 정책 예산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저소득 구직자와 청년 실업자 등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원 서비스와 생계지원을 제공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예산은 올해 1조2300억 원에서 내년 94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현재 국민취업제원제도가 절차적 까다로움과 50만 원에 불과한 구직촉진수당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지만, 그렇다면 해당 예산을 줄일 게 아니라 제도의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한 증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창출지원 예산은 1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지역에 맞는 일자리를 설계하는 걸 지원해 지역고용인프라를 늘린다는 취지의 예산이다. 일자리의 서울 집중 현상을 고려하면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사업을 복원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사회적기업 육성 예산은 올해 690억 원에서 내년 290억 원으로 삭감됐다. 2003년부터 실시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은 내년 예산안에서 폐지됐다.
장기간 성공적으로 진행된 관련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열악한 노동자와 사업주를 지원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예산은 올해 1조1000억 원에서 내년 8400억 원으로 감소했다. 오히려 현재 10인 미만인 지원 대상 사업장을 30인 미만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12억 원으로 책정된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은 5억 원으로 삭감됐다. 아울러 21개소인 고용평등상담실 사업이 8개소로 축소됐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정 장치마저 놓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근로조건개선지원 예산은 167억 원에서 119억 원으로 삭감됐다. 최저임금 위반이 만연한 상황에서 아예 최저임금 준수 지도 및 홍보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함께살기연구소는 "2024년 예산은 작년에 이어 사회적경제 예산을 대규모 삭감해 존폐에 직결될 정도"라며 "지난 20년의 노고를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역사적 퇴보"라고 평했다.
종교단체는 봐주기?
비정규직 관련 예산도 삭감되거나 필요 수준에 못미쳤다. 차별개선지원 예산이 올해 43억 원에서 내년 33억 원으로 삭감됐다. 비정규직 관련 연구 예산이 50% 삭감됐고 실태조사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최저임금 수준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임금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운수노조는 "2024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2.5~2.7% 수준으로 2021~2024년 동안 실질임금이 5.4~7.0% 삭감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해소를 위해 약 2000억 원의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밖에 예산이 삭감되거나 필요 수준 대비 충분히 증액되지 못한 부분을 보면, 우선 눈에 띄는 건 회계공시대상에 종교단체를 제외한 조치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에 회계투명성을 빌미로 회계 내역을 공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종교단체는 여전히 회계공시와 세법 보고의무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공익법인의 절반 이상이 종교법인인 만큼, 공익법인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종교법인에도 회계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종교투명성센터로부터 나왔다.
21개 국립공원의 보호와 시설 관리 등에 사용되는 국립공원 및 지질공원사업 예산은 올해 2900억 원에서 내년 2100억 원으로 삭감됐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복원에 필요한 생물자원보전 종합대책 예산은 올해 294억 원에서 내년 289억 원으로 삭감됐다.
살처분 가축의 사체처리지원 예산이 98억 원에서 29억 원으로 삭감됐다. 가축방역대응지원 예산은 올해 1287억 원에서 978억 원으로 삭감됐다. 대규모 유행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상황에 걸맞지 않은 대책이라는 평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노동자 입에서 '악' 소리가 나는 노동개악 예산"이라며 "노동자가 매일 맞이하는 일터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종교투명성센터는 "공익법인 회계검증을 강화하는 현 정부 정책기조에 무색하게 공익법인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법인에는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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