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사람들은 왜 드라마에 빠져들까? 재밌어서겠지. 그런데 바보 같지 않니? 현실은 더 드라마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 현실에 펼쳐져도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리곤 해.
# 전 웃고 싶지 않거든요, 웃다 보면 잊어버릴까 봐요. 내가 뭘 하는지
난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 특히 학교 폭력 같은 불편한 주제에도 말이야. 그건 아마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 화면 속에서 아무리 잔인하고 끔찍한 얘기가 펼쳐져도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리 불편한 진실이라도 우리는 2000년 전 콜로세움에서 죽고 죽이는 검투사의 경기를 바라보던 귀족의 마음이 되어서 그걸 바라볼 수 있는 거지. 여긴 안전해. 우린 괜찮아. 저건 드라마잖아. 우리랑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아무리 무서운 맹수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유리창 너머 사파리 투어를 하고 있는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안전하거든.
# 그래서 난 지금 온 생을 걸고 복수하는 중이에요
우리는 왜 그렇게 복수극을 좋아하는 걸까? 나쁜 놈이 악랄하면 악랄할수록 복수는 더 통쾌하지. 반도의 땅에 나고 자라 외세의 숱한 침입을 받아가면서 이어온 목숨들이라 우리의 피에는 복수의 DNA가 들어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 한이 우리에게는 있는지도 몰라. 그런데 우리가 언제 그 한을 제대로 풀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악인의 몰락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면 그 고관대작의 아들은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도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하잖아. 못된 짓을 하고도 벌 받기는커녕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잖아. 바로 얼마 전,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비난한 가해자들에게 '자신의 생으로 진실을 증명하겠다'며 세상을 떠난 피해자도 있었잖아.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려면, 피해의 진실을 밝히려면, 자신의 온 생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복수는 결코 쉽지가 않아. 그래서 우리는 고작 복수극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게 드라마가 아니길 바라면서.
# 다 알면서 하는 거, 다치라고 하는 거, 네가 매일매일 나한테 한 거
학교에 있는 나에게 그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묻지. 요즘 아이들은 정말 저래? 요즘 학교는 정말 저래?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어. 문동은, 넌 어쩌면 운이 좋은 피해자야. 너도 알 거야. 세상의 모든 문동은이 다 복수에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대부분의 문동은은 죽기도 하고 학교를 떠나기도 하지. 그리고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학교 폭력은 피해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살아갈 힘을 남겨 주지 않아. 대부분의 문동은의 이야기는 16화까지 가지 못해. 1화나 기껏해야 2, 3화에서 끝이 나. 이게 현실이지. 그래서 세상의 다른 문동은에게 '너도 억울하면 살아, 억울하면 성공하고 출세해서 복수해.'라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말이지. 살아남은 것 자체가 성공이니까.
#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너 이런 모습,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도 남지 않은 혼자인 모습
그런 상상을 해. 박연진이 혼자였다면 너를 괴롭힐 수 있었을까? 달궈진 고데기 앞에 너의 팔을 대주던 이사라와 최혜정이 없었더라면, 박연진을 사모하던 전재준과, 전재준을 뒤치다꺼리 해주던 손명오가 없었더라면 박연진은 너를 그토록 괴롭힐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려웠겠지. 박연진 혼자였다면. 반대로 너 혼자였다면 박연진 무리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거야, 아마도.
넌 박연진 곁에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도 남지 않게 했지. 그게 고데기로 너를 지지던 박연진에 대한 복수였지. 그런데 팔이 지져지는 고통과 그 곁에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도 없는 외톨이가 된 고통이 같은 것일까? 그 복수는 페어 했나? 눈을 다치게 한 그에게 눈과 이와 귀를 빼앗은 건 아니었나? 하지만 알게 됐어. 끔찍한 화상의 고통은, 외톨이로 저항했던 열여덟 살의 문동은이 겪었던 고통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박연진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문동은 너의 고통은, 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너 혼자 외톨이로 그 체육관에 서 있어야 했던 그런 고통이었던거야.
그래서 넌 박연진의 몸에 상처 주는 고통이 아니라 그를 외톨이로 만드는 쪽을 선택했어. 너의 어머니한테서도 버림받은 외톨이었던 네가 복수의 과정에서 지원군을 얻었고,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박연진이 자신의 어머니마저도 외면한 외톨이가 된 것. 이 기막힌 반전이 복수의 끝이었지. 넌 박연진의 사과로 너의 영광을 찾지 못하자 박연진의 영광을 빼앗은 방법을 택한 거지. 통쾌하면서도 씁쓸했어. 이 복수는 네가 박연진이 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 존엄이라고는 없는, 이미 더 없이 폐허죠
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더 글로리'인지, 드라마를 보기 전에 내내 궁금했어. 이 끔찍한 이야기의 제목이 왜 '더 글로리'인지. 작가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데, 사과를 통해 학교 폭력으로부터 손상된 그들의 '명예, 존엄, 영광'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대. 그래서 그 '명예, 존엄, 영광'의 회복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더 글로리'라는 말을 썼다고 해. '회복'이라는 말은 정말이지 나이스하게 들려. 학교에서 하는 회복적 정의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나 봐. 그치만 그 회복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 걸까?
# 남의 불행에 크게 웃던 그 입과 입 맞춘 모든 입
미안해. 이건 네가 박연진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야. 나는, 사실, 나에게도 너에게 해야 할 미안함의 몫이 있어. 우리는 삶에서, 학교 폭력의 현장에서 우리 스스로가 문동은이었거나, 박연진이었거나 이사라나 최혜정이었다는 걸 잊어버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학교에서 유일한 탈출구이자 안식처의 주인이었던 보건 선생님이거나 자신을 기꺼이 복수의 도구로 써 달라며 다가온 주여정 선생이기를 바라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장에서 방관자의 모습을 한 가해자이기도 했지. 선배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너에게도 문제가 있어.' 라는 식으로. 우리는 늘 멋있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지. 그리고 우리는 때로 피해자가 되기도 해.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학부모들의 원성과 폭력에 시달리기도 하지. 그런 우리가 어떻게 너를 구할 수 있었겠니?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평범한 악이 되어 너의 불행에 크게 웃던 그 입과 입을 맞추게 되었으니 말이야.
나의 사과는 용서 받을 수 없을 거야. 우리도 우리를 용서할 수가 없었거든. 때로는 무력감으로, 때로는 무지함으로, 때로는 비겁함으로 열여덟의 문동은이 학교를 떠나가게 했지. 그러나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해.
# 설마 뭐, 진심 어린 사과 뭐 그런 거 받자고 이러는 거 아니지? 내일 모레 사십에 그건 너무 동화잖아, 동은아. 뭐 지난 일을 이제 와서 어떡하라고, 그렇지?
학교에 있는 우리는 생각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너를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너의 명예를 교실에서 지켜줄 수 있었을까? 지금 세상에는 너희들의 한이 하늘과 땅을 진동하지. 그런데도 한낱 가벼운 종이 쪼가리 사과가 뭐라고, 그것도 받아내기가 힘들지. 하지만 말이야, 너를 향한 사과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기를 울려서, 남의 불행을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 모두의 귀에까지 닿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너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을까? 문동은, 그래야 너의 명예가, 너의 존엄이, 너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진심 어린 사과. 모두의 앞에선 진심 어린 사과. 박연진이 조롱했던 그것이 네가 박연진이 되지 않고서 너의 영광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었겠지.
실은 박연진도 알았을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자기 구원의 길인 것을. 그럼에도 박연진은 그럴 수 없었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건 부끄러울 수 있어, 건강한 수치심에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그 수치심을 감당하기 위해 그녀에게도 한 생이 필요한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감당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우리 교실에, 우리 공동체에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겠지.
그 한풀이가 빨랐다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데 한 생이 걸리지 않았겠지. 실제 대부분의 문동은 이야기는 치명상을 입고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채 1화만에 조기종영된다고 말했지? 하지만 우리는 다른 버전의 조기종영을 원해.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보기 위해, 그 복수로 너의 영광이 찾아졌는지 찾아지지도 않았는지도 모른 채 16화까지 보지 않아도 되기를. 학교를 졸업한 문동은이, 아니 표혜림이 가해자를 고소하여 법적 공방을 벌이다가 결국 죽는 16화 말고, 너의 영광을 1화에서 바로 찾는 조기종영을 말이야. 너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검투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니까.
# 내가 복수를 왜 하는지 알아? 18년 동안 너희가 나를 잊었더라. 그래서 하는 거야 기억되려고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이라 그런지, 나쁜 짓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더는 먹히지가 않네. 드라마에서는 잘못한 전재준과 손명오가 죽는데 실제에서는 문동은이 죽어. 뭔가 잘못됐어. 이상해. 왜 피해자가 죽어야 하지? 이건 정말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알아 왔던 흥부와 놀부의 결말이랑 너무 다른 거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기억되려고 복수한다고 했지? 그들이 널 잊어버려서. 기억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내내 검은색 옷만 입고 나와서 핏기 없는 얼굴로 감정 없이 말하는 네가 저승사자 같기도 했어.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지. 살아 있지만 죽은 자. 죽었지만 억울함에 눈을 감지 못한 자. 그런 네가 우리에게 왔어. 기억하라고. 살아 있어도 살지 못하는 자들의 억울함과 죽어도 죽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잊지 말라고. 검은 옷을 입고 나온 송혜교가, 아니 문동은이, 아니 그 아리따운 유튜버가 나를 잊지 말라고.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가끔 생각해. 기억하는 것, 추모하는 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중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기억과 추모는 권선징악의 서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조기종영 당한 너희들의 한풀이이자 우리 죄의식의 씻김굿이지. 우리를 괴롭히는 건 이 완결되지 않은 권선징악의 서사야. 너희들이 완결시키지 못한 권선징악의 서사는 우리가 완결시켜야 해.
피해자가 죽어버리는 서사는 일단 엉터리야. 우리는 빨리 진실을 파헤쳐야 해. 그리고 잘잘못을 가려야지. 그리고 잘못한 이들이 사과를 하거나 벌을 받아야겠지. 물론 가해자의 저항은 늘 견고하고 완강하지. 이 견고함과 완강함과 우리의 무관심에 진실이 묻혀버려.
진실이 국화꽃 더미에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더 이상 검은 옷을 입고 살아도 죽은 사람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원한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우리도 행복하지 않아. 기억은 사실 너를 위한 게 아니었어. 내가, 우리의 공동체가 살아가려는 몸부림이지.
너를 잊지 않을게. 너의 고통을, 우리의 잘못을.
# "나 이제 더는 그 복도에 서 있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그 체육관에 더는 서 있지 마."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얼마나 오래 울어야 우리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해야 세상은 역설적으로 평화롭고 공평한 곳이 될까? 이런 복수극이 어서 빨리 진부한 것이 되었으면 해. 비로소 원점으로 돌아가는 데에 한 생이 걸리지 않았으면 해.
문동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를 체육관에 홀로 서 있게 한 건 우리의 잘못이야. 그들을 향한 칼날이 네 스스로에게까지 닿아서는 안 돼. 문동은, 이제는 네 차례야. 이제 우리의 구원은 박연진에게 달려 있지 않아. 박연진이 끝내 사과하지 않았지만 너의 영광은 지켜져야 해. 너의 복수는 찬란했지만 그것이 폐허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 네가 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해. 약한 너를, 그 체육관에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너의 수치를, 너의 굴욕감을, 너의 분노를, 너의 증오를 다 보듬어 주어야 해. 바로 네가. 망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 너이지만, 결코 망가질 수 없는 것들이 언제나 네 속에 너와 함께 있었다는 걸 네가 알아봐 줘. 모든 것이 다 너야. 그것들을 다 쓰다듬어 줘. 그래서 너 스스로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기를 바라. 이건 박연진을 용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우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복수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법, 너와 같은 수많은 문동은이 그 피해 속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이제 가을이네. 후회라는 철 지난 옷차림으로 가을 하늘 아래 서 있는 우리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았으면 해. 우리도 언젠가 우리를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이제 세상에 더 이상의 문동은이 없기를, 문동은의 꿈은 문동은이기를.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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