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일명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 혹은 테러 예고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시민들의 일상생활 공간에 장갑차와 경찰특공대까지 배치하며 초강경 자세로 대응하였다. 그러자 이것이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관련 기사 : '시민건강논평' 8 21일 자 ''묻지마 범죄' 대응이 중형? 자포자기자가 형량 신경쓰나') 무엇보다 자명한 사실은 범죄의 공포가 일상생활에 만연할수록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은 늘어나며, 결국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에 대한 공포가 높아지면 지역사회 참여 빈도가 낮아지는 연구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관련 기사 : '서리풀 연구通' 8월 24일 자 '범죄의 공포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도 위협한다')
지역사회 범죄가 비록 나에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도 나의 건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출판된 논문에서는 지역사회의 범죄 발생이 주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 분석을 수행했다.(☞ 바로 가기 : 지역사회 범죄와 비만에 대한 호주 종단 연구) 14년 동안 수집된 조사 참여자의 건강 자료와 지방정부에 요청하여 측정한 지역별 범죄율(전체 범죄율, 폭력범죄율, 재산범죄율)을 이용해, 범죄 발생율의 증가가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또한 범죄 발생과 건강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요인도 함께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지역사회의 범죄율 증가는 체질량 지수와 비만 확률을 증가시켰다. 특히 재산범죄에 비해 폭력범죄가 체질량 지수와 비만 확률을 예측하는 정도가 높았으며, 남성에 비해 여성에서 범죄 발생과 비만의 관계가 뚜렷이 나타났다. 이 관계를 설명하는 변수로는 사회적 자본과 신체활동이 확인되었다. 즉, 범죄율 증가는 개인들의 사회적 자본(지역사회 주민의 공동체 활동, 지역사회 주민에 대한 신뢰 등)과 신체활동을 감소시키며, 이는 체질량 지수 증가와 비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범죄는 직접 피해자도 물론이고 그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던 지역주민들의 심리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 공동체 사회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생활 주변 곳곳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발생할 때, 많은 이들이 심리적 두려움으로 신체활동을 꺼려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긍정적 기능을 증진할 수 있는 여러 외부 활동 역시 참여할 확률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자본과 신체활동을 증진할 수 있는 지역사회 개입(예: 안전한 생활 공간의 확대)과 범죄 피해자들이 일상생활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사회적 개입을 함께 대안으로 제시한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다발적 흉기난동 사태로 홍역을 치른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은 사후관리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범정부 총력대응을 살펴보면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 혹은 범죄 두려움으로부터의 회복"에 대한 정책적 고려와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범죄로부터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온전히 보장하기 어렵다. "함께 살아가는 안전한, 그리고 모두가 건강한 공동체 사회로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전예방과 사후관리 차원의 여러 대안들을 보다 다채롭게, 그리고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
*서지 정보
- Churchill, S. A., & Asante, A. (2023). Neighbourhood crime and obesity: longitudinal evidence from Australia. Social Science & Medicine, 116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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