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경찰청은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주요내용은 심야시간대 집회·시위 전면금지, 소음규제 강화, 드론채증 도입 등이다. 그밖에도 경찰의 집회·시위 현장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들이 빼곡히 열거되었다. 이미 '집회·시위금지법'으로 기능하고 있는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더욱 개악하고, 집회·시위를 사전신고단계부터 사후처벌까지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대통령실이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방안에 대한 국민참여토론을 진행한 후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7개 부처로 구성된 '공공질서 확립 특별팀'이 내온 방안이다. 단지 경찰청의 여러 업무 방안 중 하나가 아니라, '집회·시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인 것이다.
경찰이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집회·시위 개선방안'
집회·시위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찰에 관련 계획을 신고하는 것이다.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현행 집시법은 경찰에게 집회에 대한 보완·제한·금지 통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집회시간과 장소, 교통소통, 소음 등을 제한 또는 금지할 수 있는 사유들로 빼곡하게 명시한다. 집시법의 마지막은 이러한 경찰의 제한·금지 통고를 지키지 않을 시에 이루어지는 처벌조항들이다. 헌법은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를 금지하지만, 집시법은 엄청난 재량권을 경찰에 부여하며 허가제처럼 운용되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무려 3년 동안 코로나19를 이유로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행태를 보였지만, 윤석열 정부는 집회·시위 대응에서 전임정부가 법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비판하며 이번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심야시간대 집회·시위 전면금지, 소음기준 강화와 제한통고 처벌규정 신설, 집회 현수막 게시 기간 한정, 질서유지선 손괴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 추진을 밝혔다. 한편 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경찰이 휘두르는 재량권을 통해 집회신고 단계에서부터 제한·금지 통고를 적극적으로 하고 특히 출퇴근 시간대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해산명령과 직접해산 조치를 강화 적용하고 집회·시위 수사전담반을 신설하며 손해배상 청구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드론채증 도입을 통한 집회·시위 참여자에 대한 감시 강화도 밝혔다. 경찰의 권한을 극대화해 집회·시위를 시작부터 끝까지 경찰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강력하게 관리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경찰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와 출퇴근 시간대 집회에 대해 자의적인 금지 통고를 남발하고 있다. 이에 불복해 행정재판을 청구한 다수의 집회들이 금지 통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고 집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경찰은 법원의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지 통고를 반복하고 있다. 집회를 진행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거나, 경찰의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이번 발표는 대통령실의 지휘 아래 집회·시위를 더욱 깨알같이 관리하고 옥죄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누구나 함께 모여서 말하고 행동할 권리, 집회·시위의 권리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복잡한 법 논리와 막무가내 경찰 공권력 아래에서 집회·시위를 기획하고, 애초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집회·시위 참여자들에게도 경찰의 관리와 통제는 이제 익숙하고 관례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일상이 아닌 사건, 집회·시위
집회·시위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집회·시위, 결사의 자유 그리고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권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 자체는 큰 의미가 없기도 하다. 경찰도 윤석열 정부도 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은 자신들이 만든 합법과 불법 프레임을 통해 허가할 집회와 탄압할 집회를 구분한다. 정부와 경찰의 이러한 자의적인 법 집행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집회·시위를 위축시키는 행태이지만, 공적 장소에서 집단행동으로서 '집회·시위'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방안을 낸 '공공질서 확립 특별팀'은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질타 이후 구성되었다. 이는 건설노동자들이 노조탄압 규탄과 열사 추모를 위해 5월 16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1박 2일 집회를 개최한 것 때문이었다. 도심 곳곳 건설현장마다 언제나 건설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건설현장의 펜스를 벗어나는 것은 일상이 아니다. 건설노동자들이 펜스 밖으로 나와 집단적으로 노조탄압 중단을 외치며 서울 도심에 등장하자 정부와 언론은 온갖 비난과 혐오를 쏟아냈다.
퇴근길에 시민들은 서울 광장 주변을 가득 메운 건설노동자들과 마주치며, 무슨 일인지 묻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 건설현장 안에서, 도심의 지하에서, 야간에 노동하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건설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노조할 권리'를 외쳤다. 억울하게 죽은 동료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투쟁을 시작했다. 각자 현장에 흩어져있다면 불가능했을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은 집회·시위를 통해 함께 모이는 '사건'이 되었고, 소스라치게 놀란 정부와 경찰은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야간집회와 해산명령 불응을 문제 삼아 노조 집행부를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시는 도심에서 이런 집회를 못하도록 하겠다며 '공공질서 확립 특별팀'을 구성하고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건설자본의 숱한 비리,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안전사고와 노동자들의 권리침해 문제는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장애인 권리보장을 외치며 전장연이 이어온 출퇴근 탑승 시위다.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사회와 격리된 시설을 강요받고, 대중교통을 비롯한 도시의 공공 인프라 이용에서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고용, 주거, 교통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시스템에서 배제되어온 장애인들이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에 집단적으로 등장했다. 바로 지하철 출퇴근 현장이다. 바로 그 시위를 통해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얼마나 구조적으로 배제해왔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지하철 탑승 시위에, 1박 2일 노숙 투쟁에 전방위적 탄압을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자신들이 지시하고 허용하는 방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이 관리통제하는 집회·시위는 '일상'이지만, 사회가 지정한 자리를 벗어나 건설노동자와 장애인이 모이고 외치는 집회·시위는 '사건'이 된다. 이를 통해 '모이고 외칠 권리'를 넘어 권리를 짓는 행위이자 해방의 장소로서 집회·시위가 펼쳐진다.
권력에 맞서 우리가 만드는 '해방의 시공간'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2016년 탄핵촛불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서울 사대문 안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대열 속에 있던 그 누구도 집회신고 여부, 경찰의 허가 여부를 신경쓰지 않았다. 집회·시위는 원래 그런 것이어야 한다. 집회·시위가 만드는 '해방의 순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한 2011년 희망버스의 기억이 짙게 남아있다. 그 기억은 밤새 이루어졌던 경찰과의 대치라는 '충돌' 행위가 아니다.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경찰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 장소를 함께 지키겠다는 공동의 결의와 행동이 만들어낸, 희망버스 탑승자들이 열어낸 시공간의 경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더 시도되어야 할 것은 아무런 문제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권력에 맞서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해방의 시공간'으로서 집회·시위이다.
이는 단지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의 충돌을 감수할 것인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집회·시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집단적 권리이자 사회적 행위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다. 다양한 매체가 넘쳐나는 지금, 어떤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집회·시위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많다. 그리고 몇 차례의 집회·시위로 이를 통해 제기하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광장, 거리, 공원과 같은 공적 장소에 집단적으로 모이는 집회·시위를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는 그렇게 모임으로써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서로를 확인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가로막는 새로운 권리의 주체들이 형성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정이기에 집회·시위는 권리를 짓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집회·시위에 함께 하는 이들이 이러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기획과 행동들을 얼마나 충분히 소통하며 만들어가는가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개입과 통제'는 대응해야 할 과제이지, 집회·시위 기획의 전제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 경찰의 개입과 통제에 대응한다는 것이 물리력으로 경찰에 맞서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경찰의 지시와 통제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모든 종류의 행동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함께 경찰에 항의하며 자리를 지키고 침묵시위를 이어가며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다양한 불복종 행동들은 집회·시위 현장을 경찰이 아닌 바로 우리의 장소로 만들기 위한 '경찰 대응'이다.
'준법집회는 두텁게 보장하고, 불법집회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경찰에게 '집회·시위는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외치자. 언제 어디서 모여서 무엇을 외치고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를 경찰에게 사전에 검토받거나 허가받을 일이 아닌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집회 장소와 시간, 행진코스 등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경찰에게 이것은 '우리의 집회·시위'라고 맞서자. 이런 대응을 쌓아갈 때 집회·시위는 권력이 틀어막고 덮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권리를 짓는 행위이자 해방의 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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