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책임론을 둘러싼 지분구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주주'라는 건 이제 식상한 평론이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가 여부다. 안타깝게도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 혼자 결단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다.
여권은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하게 보고 있다. 선거 전략의 실패, 수도권 민심 확인…. 다 좋다. 임명직 최고위원 바꾸고, 대통령 워딩이 부드러워진 것도 다 좋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패배에 이르게 된 것은 큰 정치적 흐름 위에서 조망돼야 한다 . 이번 패배는 켜켜이 축적된 모순이 일시적으로 폭발한 결과다. 그리고 그에 따른 후폭풍은 여권을 더 진득한 수렁 속으로 몰아 넣을 것이다.
'이념형 검찰 공화국'의 피로감
선거 전에 두 번의 굵직한 이슈가 있었다. 첫째, 9월 2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이다. 이 소식은 지난 2년간 검찰의 수사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던 중도층의 의구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검찰이 무능하거나, 무리한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그리고 추석을 지낸 후 6일, 헌정 사상 35년만에 이균용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부결됐다. 정치사적으로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이 중차대한 사건의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여권에 전혀 없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기껏 나온 말이 "방탄"(한동훈 법무부장관)이란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은 중요한 정치 행위이긴 하지만, 적극적 정무 기획이 아니라 대통령의 일상적 통치 행위다. 일상적 통치 행위를 건드릴 경우 통상적으로 명분은 대통령이 가져간다. 그런데 부결을 주도한 야당에 역풍이 불지 않았다.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47.1%가 "부결은 잘한 것"이라고 답했고, 34.5%가 "부결은 잘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인사 검증 부실 문제다. 인사 검증 책임자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다.
'2연타'를 맞은 여권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공천한 김태우 후보를 열심히 도왔지만, 결론은 처참했다. 이미 김태우 후보 공천 때부터 모순이 노정돼 있었다는 건 비밀이 아니지만, 대통령만 몰랐다.
김태우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올라선 계기가 된 '조국 사태'에서 윤 대통령에게 '심적 동지'와 같은 존재였다. 대법원 판결 3개월만에 사면 복권을 한다는 건 이런 대통령의 개인적 심정을 떼 놓고 해석하기 어렵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비리를 폭로한 정의로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사면돼야 하며, 억울하게 잃은 구청장직은 복원돼야 마땅하고, 유권자는 그런 대통령의 선택에 기꺼이 동의할 거라는 '착각'이 있었다. 김태우 공천으로 유추해 본 대통령의 시간감각은 여전히 지난 대선에 머물러 있다. 집권 1년 반이 훌쩍 지났는데도 말이다. 일개 구청장 보궐선거를 '회고형 선거'로 만들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렸다.
징후들이 넘쳐난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회의적이다.
참모에는 실용형 참모가 있고 신념형 참모가 있다. 윤 대통령은 강한 '신념형' 참모들을 대통령실과 내각 곳곳에 포진시켜 놓았다. 대통령이 그동안 해 온 인사를 통해 누적된 것이다. '문재인 모가지' 발언의 신원식 국방부장관, '언론 지형을 평평하게 하겠다'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이미 '블랙리스트' 문제로 논란이 된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 뉴라이트 학자 출신으로 '공산 전체주의'와 싸우는 김영호 통일부장관 등이 그들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대북 강경파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과거 '뉴라이트 운동'과 연관돼 있다. 대통령실로 모이는 모든 정보와 민원의 '길목'인 한오섭 국정상황실장은 뉴라이트 전국연합 기획실장 출신이다. 이미 극우유튜버들이 용산과 정부 부처 곳곳에 스며들었다.
검찰은 어떤가. '윤석열 사단'이 완전히 장악했는데, 이들은 모두 한동훈 장관처럼 행동하고 있다. 박근혜 수사도 4개월, 이명박 수사도 6개월 걸렸다. 야당 대표 수사를 2년째 하고 있는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에도 "한 건 한 건 모두 중대 사안이고 구속 사유(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라고 마치 판사처럼 말한다. "수사의 목적은 기소"(정순신)라는 라는 신념을 가진 '특수통 집단'이 검찰을 장악했는데,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검찰은 정작 영부인 비리 의혹 수사를 뭉개고 있다.
실용형 참모들이 대통령의 판단을 보좌하고, 용산과 부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신념형 참모들은 대통령의 이념을 형태를 갖춰 주물하고 부처 인력을 동원해 추진하는 역할을 한다. 신념형 참모들을 곳곳에 포진시킨 윤석열 정부는 윤 대통령을 머리로 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이다. 실용형 참모들이 많다면, 대통령의 결심으로 국정 운영 전환이 가능할 수 있지만, 신념형 참모들이 많으면 관성이 생긴다. 그러니 스스로 판을 키운 선거 결과를 받아들고 남 일 처럼 언급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기계적으로 자료만 수집하고, 판단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한다"고 했다. 선거 참패에도 '이재명 전담 수사팀'을 일신하고, 헌법재판소장 직에 대통령의 대학 동기를 지명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 '기계화 시스템'을 구축한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미 예견된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시스템이 굴러가는 한 윤 대통령에겐 예상 가능한 몇 번의 고비가 있다. 첫번째 고비는 12월에 처리될 김건희 특검법, 대장동 특검법 등 '쌍특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살아 있는 권력'의 행태에 대한 대중의 인내심이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두번째는 보수 신당 내지는 3지대 중도 신당이다. 그 규모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럴싸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들이 지금 여의도를 떠돌고 있다. 유권자들은 현 정부에 심각한 의구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걸 재빨리 읽은 유승민, 이준석 같은 정치인은 여권의 벌어진 틈을 파고들며 활동 공간을 넓히고 있다. 원심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보수 분열은 예고됐다.
이미 유권자의 신뢰를 한번 상실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다짐과 같은 형체 불명의 어음은 별무소용이다. 조각 수준의 개각이나, 청와대 참모진 대폭 물갈이 등 인적 쇄신이 아니면 안된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부분이 바로 슬픈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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