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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주택 수리 기사, 정말 '0명'이라 제가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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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성 주택 수리 기사, 정말 '0명'이라 제가 시작했습니다"

[나, 블루칼라 여자] ⑤ 주택수리기사 안형선 씨

'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세면대 수도꼭지를 교체하거나, 욕실 환풍기를 수리하는 일은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자니 사소하고 직접 하기엔 어려운 집수리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인터넷에 검색해 호기롭게 스스로 해보기(DIY)를 도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면 결국 동네 철물점을 찾아야 한다. '철물점 아저씨'로 대표되는 집수리 영역에 여성 기술자들이 모여 주택 수리서비스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라이커스'(LIKE-US)라는 이름을 가진 기업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34살 안형선 씨를 만났다. '여성주택수리서비스 LIKE-US'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안 씨는 각종 공구와 자재가 들어있는 가방과 연장벨트, 사다리를 들고 수리 현장을 찾았다. 그는 화장실 세면대를 분리해 수도관을 살피고, 콘센트와 조명을 분리해 전기작업을 했다.

'라이커스'는 형선 씨의 두 번째 사업이다. 택배 회사 영업관리직으로 일했던 그는 물류 업계의 유리천장을 몸소 경험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 일련의 사회적 이슈를 보면서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미션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2018년 다니던 택배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하며 첫 사업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물류 업계의 유리 천장을 깨고자 여성들로 구성된 물류팀을 만들어 물류 창고를 운영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2019년 신림동의 한 빌라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던 20세 여성을 뒤쫓은 남성이 침입을 시도했던 주거 침입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1인 여성가구의 불안함을 자극한 이 사건은 형선 씨가 라이커스(LIKE-US)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된다. '여성을 위해, 여성이 만든 여성 주택수리 서비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인 여성 가구가 맘편히 집수리를 받을 수 있는 여성기술자로 구성된 주택수리서비스를 론칭했다. 기존 수리 서비스들과 다르게 시공 비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방문 손잡이 교체 : 1만1000원', '싱크대 수전 부속(코브라/자바라/헤드) 교체 : 1만1000원', '세면대 교체 : 7만7000원' 등이다. 형선 씨를 포함해 여성 기술자 5명이 소속되어 있다.

"라이커스는 '우리와 같은' 여성을 위해서 만든 서비스라는 뜻을 담고 있다. 1인 여성 가구로 살면서 겪은 여러 불편한 경험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집수리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한 경험 중 하나였다. 집수리를 하고 싶으면 백이면 백 남성 기술자가 오는데 우리가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은 핸드폰 번호 정도 밖에 없다. 성함도 모르고, 연령도 모르고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분은 우리 집 주소를 알고 내 연락처를 알고, 또 내가 혼자 사는 집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그런 것에 우리가 느끼는 불안 요소들이 있는데, 이 불안이 개선된 서비스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9년 10월 '라이커스'를 설립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여성 기술자의 부재였다. 여성 기술자가 적어서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0명'이었다.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선배나 롤모델을 찾는 일도 어려웠다. 여성 기술자를 찾지 못하자 대표인 형선씨가 직접 기술을 배워 수리기사로 일하게 됐다.

"사실 처음 라이커스를 시작했을 때, 제가 직접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활동하는 여성 기술자 분들을 모시려고 했다. 여성 기술자를 주축으로 팀을 꾸리고 확장하는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영입할 여성 기술자가 없었다. 정말로 '0명'이었다. 여성 선배 기술자를 찾아서 경험을 듣기도 어려웠다. 여성 선배 기술자가 있다면 현업에서 뭐가 어려운지 등을 물어보고 싶은데, 한 분도 안 계셨다. 그래서 유관 분야인 타일이라던가 기술 교육을 해보셨던 분이나 과거에 용접하셨던 분 등 이런 여성분들을 물어물어 찾아다녔다. 그러다 여성 주택수리기사는 안 계시니까 우리가 직접 배워야겠다고 결정하고 배우게 됐다."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았던 사설교육기관에서 형선 씨는 유쾌하지 않은 칭찬을 들어야 했다. 그는 "저는 공구를 잘 다뤄서 수업을 잘 따라갔는데 제 옆에 계신 남성분이 서툴면 선생님께서는 '옆에 안형선 씨는 여자 분인데도 잘 하는데, 남자분이 왜 이렇게 못하냐'며 비교를 했다"며 "저를 칭찬하려고 하신 말씀이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말이라 그 말을 듣고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설 기술 교육은 경험이 자산이 되는 직업으로, 경험을 전수해주는 도제식 교육이 특징이다. 특히 집수리 분야의 경우 전문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 부딪히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 막 기술 교육을 마친 개인 여성 기술자가 어디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라이커스는 정식 서비스 오픈전,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집수리 체험단을 모집했다. 10명만 신청해도 많이 신청한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틀만에 100명의 고객이 신청하며 여성들의 니즈를 실감했다.

하지만 남성 기술자가 정상 표본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매일이 도전이었다. 형선 씨는 "경험이나 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은 수용할 수 있지만 '여자라서' 못하는 것 아니냐고 책망할 때면 속이 상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힘이 되는 건 소비자들의 응원이다. 그는 체험단에 참여한 고객이 남겨주신 피드백 중 '살아 남아 달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하며 "그런 응원에 우리는 계속 해야 한다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고객들에게 연대를 느낀다"고 말했다

"저희가 어떤 분들에게는 유일한 대체제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원룸에 살면 방에 등이 하나인데, 몇 년 동안 못 고치고 사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 등으로 인해 남성 기술자가 오는 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무서워하시는 분이었다.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그나마 우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4년째 사업을 꾸려가는 형선 씨가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부분은 '여성 기술자의 부재'다. 그는 "경력직 여성 기술자를 채용할 수 없고 무조건 신입으로만 채용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성이 주택 수리업에 적은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별이 기인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일이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닌데 건설관련 기능직, 기술직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면 힘을 먼저 떠올린다. 같은 교육기관에서 배출한 똑같은 수준인 여성과 남성이 있다면 남성을 더 선호한다. 또 기술자들이 취업을 하더라도 내부에서 관계유지 방법 중 하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성적인 농담을 할 줄 아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여성이 적응하거나 살아남기 어렵다.

당장 일거리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이고 여성이 느끼는 차별과 불편함에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려면 그런 분위기를 참아야만 한다. 업계의 남성 중심적인 관행들이 여성의 설 자리를 없게 만들고 이미 진입한 여성도 생존하기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 도배사 분이 계신데, 반장님 비위를 맞춰야 일감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기분이 나빠도 나쁜 티를 낼 수가 없는 거다. 일감을 쥐고 있는 자들이 권력자니까."

형선 씨는 여성 기술자들이 적은 한국사회에서 라이커스를 통해 여성 기술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여성 인력을 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누군가 '여자도 전업으로 집 수리를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의심했을 때 살아있는 반박자료로 더 많이 알려지고 싶다고 말했다. 형선 씨는 "라이커스는 정말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집이 고장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다"고 포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래는 안형선 씨와 나눈 주요 인터뷰 일문 일답.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 해달라.

안형선 : 여성 수리기사가 방문하는 마음편한 집수리 서비스, 라이커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왕왕 대표 안형선이다. 나이는 34살이며 수리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사업 운영도 하고 있고 기술 워크숍을 할 때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 : 주택수리기사가 하는 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급하게 집 수리를 할 때 부르는 철물점 사장님 같은 분이 떠오른다. 적당한 비유인가.

안형선 : 그렇게 이해하면 딱 적절하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기엔 사소하고 내가 하기엔 어려운 소수선 영역을 담당한다. 저희는 하루에 여러 집을 가기 때문에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집을 방문해서 고객을 만나야 된다는 부분이 정신적인 피로감을 좀 줄 수 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분들한테는 천직인 것 같다.

프레시안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일주일에 얼마나 일을 하나.

안형선 : 정규직으로 일하시는 수리기사들은 오전에 사무실 와서 그날 혹은 다음날까지 필요한 수리 부품을 차량에 싣고 업무를 나간다. 수리 물품 재고나 수리 내용에 따라 그 다음날도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바로 출장을 가는 경우가 있다. 저는 소속된 수리기사로만 일하는 게 아니라 회사 대표이기 때문에 주 6-7일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라이커스의 수리기사들은 모두 여성 기술자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들은 정규직으로 일을 하나.

안형선 : 현재 계신 수리 기사들도 그렇고 앞으로 들어오실 분들을 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목표다. 도배나 건설업 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이 업계가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만 진입하고 나서 쭉 생존해나가는 것도 어렵다. 내가 일 할 자리를 계속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직이 취업구조가 불안정한 프리랜서 형태이지 않나. 총 급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경험치도 쌓고 성장해나가는 기반을 제공하고 싶다. 아직 작은 회사이지만 정규직으로서 이런 기반을 마련하면 여성 인력 배출을 조금이라도 더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하루 일당은 어느 정도인가.

안형선 : 하루 평균 시공건수가 3건이라고 치고 기술자가 개별수입으로 가져간다면 20만~25만 원 선이 되겠다. 보통 건설업체 숙련공에 준하는 일당이다. 오래 일하시는 분은 35만 원까지도 받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저는 이 일이 비전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목표는 하루 세 건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분들을 채용할 수 있을테니까.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주택수리기사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안형선 : 부모님께서는 약간의 걱정은 하셨지만 구태여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괜찮겠냐 몸으로 하는 일인데'라고 여전히 걱정은 하신다. 가끔 방송에 출연하거나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일 년에 한두 번씩 연락하는 친구가 "방송 봤다 나도 너처럼 살겠다"는 응원의 연락을 준다.

프레시안 : 주택수리기사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안형선 : 택배 회사에서 영업관리직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창업하고 싶어 퇴사하고 창업 교육을 받게 됐다. 교육받으면서 여성에 대한 개인적인 미션이 커져서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커리어를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물류업 내에도 유리 천장이 공고하니까 여성들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해서 첫 사업으로 여성 물류팀을 만들고 운영하게 됐다. 풀필먼트라고도 하고 물류대행업이라고도 하는데, 물류창고에 물품을 상시로 보관하고 포장하고 택배도 보내는 사업이다. 그 이후에 라이커스를 시작했다. 라이커스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라고 할까 그런 부분이 더 좋아서 물류업은 중간에 접고 라이커스에 매진하게 되었다.

프레시안 : 언제 라이커스를 만들게 됐고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

안형선 : 2019년 10월 법인을 설립했고 이후 몇 개월 정도 집수리 기술을 배우고 운영 체계를 짰다. 사실 처음 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제가 기술을 직접 배우는 게 아니라 활동하는 여성 기술자들을 모시려고 했다. 여성 기술자를 주축으로 팀을 꾸리고 확장하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영입할 여성 기술자가 없었다. 정말로 '0명'이었다. 여성 선배 기술자를 찾아서 경험을 듣기도 어려웠다. 여성 선배 기술자가 있다면 현업에서 뭐가 어려운지 등 물어보고 싶은데, 한 분도 안 계셨다. 그래서 유관 분야인 타일이라던가 기술 교육을 해보셨던 분이나 과거에 용접하셨던 분 등 이런 여성들을 물어물어 찾아다녔다. 그러다 여성 주택수리기사는 안 계시니까 우리가 직접 배워야겠다고 결정하고 배우게 됐다.

프레시안 :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어떤 경로로 일을 배우고 시작할 수 있나.

안형선 : 건설 기능직 교육이 도제식이지 않나. 경험이 정말 중요한 직업이다. 급여는 낮고 허드렛일의 비중이 크고 전수 속도가 느린 게 특징인데, 도제식 교육이라는 특징이 (주택수리기사로서) 여성의 진입과 생존을 막는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설 교육기관에서 기술 교육을 이수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일은 타일이나 전문 시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자격증이 없다. 사설 교육기관에서 기본적인 기술 교육을 수료한 뒤, 당장이라도 명함을 만들어서 돌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좀 못하더라도 일단 부딪히면서 경험을 쌓아도 된다. 하지만 여성이라면 그렇게 일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여성 기술자가 어떤 브랜드나 기업에 속해있지 않는 이상, 개인 여성 기술자라고 한다면 소비자들도 반신반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선을 직접 느껴봤기 때문이다. '숨고'('숨은 고수'의 준말로 전문가 매칭 서비스 플랫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많은 수리 경험을 쌓는 게 현실적인 방법 같다.

프레시안 : 처음 기술을 배웠을 당시를 기억하나. 여성 주택수리기사가 '0'명이라면 강사도,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수강생도 남성이었을텐데. 분위기는 어땠나.

안형선 : 교육 받으면서 성차별이 있었지만 그 강사님은 성차별이라고 생각을 안 하실 거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구를 가지고 노는 게 취미라 공구를 잘 다뤄서 수업을 잘 따라갔는데, 옆에 계신 남성분이 서툴면 선생님께서 항상 비교를 했다. '옆에 안형선 씨는 여자분인데도 잘하는데 남자분이 왜 이렇게 못하냐'. 저를 칭찬하려고 하신 말씀이지만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말이니까. 그런데 저를 칭찬하고 싶은 선생님의 의도를 헤아리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보니 수업 하면서 공구를 잘 다루거나 하면 제가 더 무안해지고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이 많았다. 그때의 경험은 저희가 공구를 다루는 여성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성이 자신의 돈을 내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차별적인 분위기가 깔려있어 불편했다. 그래서 여성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평등한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어 워크숍도 개최하게 되었다.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라이커스'(like us)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우리와 같은'이라는 뜻이다. 왜 기업 이름이 라이커스인가.

안형선 : 라이커스는 '우리와 같은' 여성을 위해서 만든 서비스라는 뜻을 담고 있다. 1인 여성 가구로 살면서 겪은 여러 불편한 경험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집수리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불편한 경험 중 하나였다. 집수리를 하고 싶으면 백이면 백 남성 기술자가 오는데 우리가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은 핸드폰 번호 정도 밖에 없다. 성함도 모르고, 연령도 모르고 어디 사는 누군지 모르지 않나. 하지만 그 분은 우리 집 주소를 알고 내 연락처를 알고, 또 내가 혼자 사는 집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그런 것에 우리가 느끼는 불안 요소들이 있다. 게다가 서비스 자체도 투박하게 진행되어 왔다. 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면 '가봐야 안다'는 식으로 불투명하고, 수리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면 '잘 끝났어요' 정도로 대충 설명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건데 윽박지르듯 이야기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있다. 결국 수리 서비스를 요청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분이 우리집에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성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불안 요소들이 개선된 서비스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번째로는 이 영역(집 수리)에서 왜 여성 기술자를 만나 본 적이 없나, 여성이 정말 일하기 어려운 것인지 직업적인 의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만약 일하고 싶은 여성이 있는데 그동안 공고했던 남성 중심의 산업에서 여성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했던 거라면 우리가 뭔가 그런 분들한테 사업을 통해서 기회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라이커스를 만들었다. 저까지 정규직 노동자는 4명이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은 3분이 계셔서 총 7명이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여성에 대한 개인적인 미션이 커져서 라이커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했는데, 그 계기가 있나.

안형선 : 2018년 1월에 첫 창업을 했는데, 당시에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다. 라이커스를 창업하던 시점에는 신림동 주거 침입 미수 사건이 있었다. 그런 일련의 사회적 이슈들을 보면서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미션이 커졌던 것 같다. 저도 택배회사에서 일하면서 불평등을 피부로 느꼈다. 면접을 볼 때 '결혼적령기인데 결혼 안 할거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공고했다. 유리천장이라던지, 이런 부분이 사회적으로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해서 사업까지 연결하게 됐다.

프레시안 :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다. 보통 시민운동이나 정치로 이어지는 영역인데 사업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뭔가.

안형선 : 이런 서비스가 기존에 있었다면 내가 열심히 응원했을 텐데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물류사업을 하면서 직접 사업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레퍼런스가 되어서 나중에 올 다른 여성들에게 뭔가를 남겨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주변 여성들로부터 여성 기술자가 집을 수리해준다고 하면 당연히 쓸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리 기사님이 오면 신발장에 남자 신발 갖다 놓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있는 불편한 상황들이 연상되는데 여성 수리기사가 온다면 안심할 수 있을 거라는 주변 피드백이 많았다. 우리만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에 입각해 사업적으로 발전시켰다.

프레시안 :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안형선 : 이 직업이 경험이 중요하다보니 처음 기술을 배우고 현장에서 바로 프로페셔널하게 수리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라이커스를 만든 초기 수리를 해드리는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 시공비는 받지 않고 부품 비용만 받고 수리를 해드렸는데 그 분들 덕분에 경험을 쌓았고 그 기간 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다. 한 10명만 신청해도 많이 신청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틀만에 100명이 신청했다. 그래서 금요일 체험단 모집을 했다가 일요일 마감했다. 체험단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확인했다. 저희 초기 고객이 남겨주신 피드백을 살펴보면 '살아 남아 달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 응원에 우리는 계속해야 한다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고객들에게서 연대를 느낀다.

저희가 어떤 분들에게는 유일한 대체제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원룸에 살면 방에 등이 하나인데, 몇 년 동안 못 고치고 사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 등으로 인해 남성 기술자가 오는 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그런 분들을 1년에 한두 분 만나게 된다.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그나마 우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프레시안 : 한국에 주택수리를 업으로 삼은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안형선 : 저희가 알고 있는 이 영역에 계신 분들은 0에 수렴한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DIY 식으로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걸 업으로 삼아서 하는 분은 아직까지 안 계신 것 같다.

프레시안 : 4년동안 직접 수리도 하시고 사업을 운영하셨는데 여성이 주택수리업에 적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형선 : 사회적인 차별에 기인한 것 같다. 이 일이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닌데 건설관련 기능직, 기술직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면 힘을 먼저 떠올린다. 같은 교육기관에서 배출한 똑같은 수준인 여성과 남성이 있다면 남성을 더 선호한다. 또 기술자 분들이 취업하더라도 내부에서 관계유지 방법 중 하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성적인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여성이 적응하거나 살아남기 어렵다. 당장 일거리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이고 여성이 느끼는 차별과 불편함에 공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려면 그런 분위기를 참아야만 한다. 업계의 남성 중심적인 관행들이 여성의 설 자리를 없애고 이미 진입한 여성도 생존하기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 도배사 분이 계신데, 반장님 비위를 맞춰야 일감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기분이 나빠도 나쁜 티를 낼 수가 없는 거다. 일감을 쥐고 있는 자들이 권력자니까.

프레시안 : 건설 업계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봤지만, 여성 관리직이 정말 드물다. 남성 기술자가 정상 표본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안형선 : 저희가 기술을 배운 초창기에 경험이 적어 서툴다보니 한 번에 수리를 끝내지 못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의 임대인이 '여성이라 힘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을 하시더라. 경험이나 요령이 부족했기에 하지 못한 일도, 모두 성별 때문이라고들 흔히 생각한다. 경험이나 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은 수용할 수 있지만 '여자라서' 못하는 것 아니냐는 책망을 들을 때면 속이 상한다. 그래도 저희 고객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적인 현장은 정말 드문 편인데, 저희가 문제를 해결 못해드렸을 때 스스로 갖게 되는 불안감이 있다. 혹시 우리가 여자라서 못했다는 생각을 하시게 될까봐. 저희도 경험치가 쌓이다보니 누수나 인테리어 등 다른 업체가 와야 할 만한 일들은 저희 선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환불해드리고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도와드린다.

프레시안 : '여성이라서 못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거나 차별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나.

안형선 : 어떤 차별적인 이야기들은 듣고 흘려 넘기지만, '여자라서' 못 한다는 이야기에는 여자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드린다. 사실 말씀을 드려도 이해를 못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계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힘들었던 적은 없나.

안형선 :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력직 여성 기술자를 채용을 할 수 없다. 무조건 신입으로만 채용할 수밖에 없다.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을 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일을 새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신입 기술자를 빠르게 성장 시키려고 내부 스터디를 하고 새로운 케이스들을 공유하고 서로 지식을 업데이트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프레시안 : 힘들었던 순간도, 차별을 겪었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형선씨 답변에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안형선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저뿐이다. 우리 회사밖에 없다. 여성 기술자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우니까 그런 것 같다. 모두가 괜찮은 사업 아이템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카피캣이 없다. 이 시장에서 여성기술자를 보유한 기업은 우리뿐이니까, 여성기술자라는 리소스는 우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왜 카피캣이 없지? 이정도면 따라할 법도 한데... 사실 맨 땅에 헤딩을 계속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 일은 미션이 없으면 못 했을 것 같다. 저희랑 같은 시기에 시작했던 집수리 업체들은 줄줄이 폐업했다. 초반에 저희 서비스를 이용해주신 체험단 분들과 같이 저희를 응원해주고 연대해주시는 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누군가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의심했을 때 반박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되지 않나. 살아있는 반박이 될 수 있다. 좀 더 사업이 커져서 저희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혹시 남성 1인가구도 주택수리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나. 확장성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안형선 : 아직까지는 운영되지 않고 있지만 서비스 론칭을 계획중에 있다. 남성 소비자들도 분명 니즈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집수리 서비스 자체가 투박하게 운영되어 왔다. 요금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AS는커녕 수리 후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시공 품목과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친절하게 수리해주는 이들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는 니즈가 남성들에게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남성 기술자를 영입해서 비슷한 서비스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장비가방을 무겁게 들고다니고 장비 벨트에도 몽키스패너, 망치, 드라이버 등 많은 연장들이 꽂혀있다. 이 장비들은 형선 씨에게 어떤 존재이고, 라이커스는 형선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

안형선 : 장비는 저를 먹고 살게 해주는 애들이다. 좋은 장비 하나가 일의 성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내 손에 맞는 장비를 쓰는 게 정말 중요하다. 사실 내 손에 맞는 공구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공구 산업에서 여성이 기준 모델이 아니다보니 대부분 남성 성인을 위한 도구들이 많았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내 손에 맞는 장비를 찾았다.

라이커스는 정말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거창하게 보일 수 있는데, 진짜로 우리밖에 없다. 아무리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대체제가 없다. 나중에 제가 사업 운영을 잘못해서 접더라도 레퍼런스가 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자들은 힘이 없어서 그런거 못해, 여자가 무슨 그런 일을 해? 라고 했을 때 내세울 수 있는 마땅한 기록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록이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안형선 : 집이 고장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다. '집이 고장났을 때 어디에다 알아볼 거야?'라고 물으면 숨고, 당근마켓 등 답변이 다들 다르다. 배달시킬 때는 배달의민족을 생각하는 것처럼 저희도 이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인지하는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동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안형선 : 어느 직종이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업계의 여성으로서 살아남아주면 좋겠다. 여성 고위관리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 끝까지 생존해 주세요.

▲<프레시안>은 지난 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가정집에서 라이커스 대표이자 4년 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씨를 만났다.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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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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