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임기 1년 남짓의 시장직에 당선됐다. 이듬해인 2022년 7월 재선에 성공한 이후 오 시장이 주력하는 부동산 정책이 있다. 바로 오세훈 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과 '모아타운'이라 불리는 재건축·재개발 정책이다. 신통기획 대상은 오세훈 시장 취임 2년 만에 44개로 늘어났다. 지난 5월부터는 매년 한차례 공모로 진행했던 것을 수시 신청으로 변경하여 매월 후보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대상과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에는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압구정 2∼5구역이 신통기획 대상으로 확정됐다. 압구정 재건축단지를 1만2000가구 이상, 50층 이상 초고층 단지로 개발한다고 한다. 서울시가 재건축 자산투기의 상징 압구정을 전면에 내세워 용적률 완화, 한강수변구역 연계 개발과 같은 전폭적인 혜택을 부여한 셈이다. 서울시가 이 같은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압구정이 신통기획의 홍보를 위하여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압구정동 아파트 소유자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하게 재건축·재개발로 인해 큰 폭의 자산 상승 가능성이 있는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 곧 신통기획 대상이 될 만한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나 주택 소유자들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압구정동 아파트의 재건축으로 인한 자산가치 상승은 서민 주거안정과 주택공급을 위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 발표 이후,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 압구정 집주인들은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대감을 키우는 소식도 들려온다. 최근 압구정의 한양4 아파트(전용208㎡)가 종전 최고가 52억7000만 원(21년1월)보다 11억3000만 원이 오른 64억 원(23년 6월)에 거래됐다는 기사는 집과 돈 있는 사람들의 자산가치 상승 기대감을 키우고, 투기 심리에 불을 붙인다. 1억짜리 재개발구역의 지하층 다세대주택 소유자들도 64억 압구정동 아파트의 재건축뉴스를 보며 동조화되고 그들과 같은 꿈을 꾸게 된다.
어차피 52억이든 64억이든 주택 가격이라고 믿기에는 비현실적인 금액임에도 부동산 추가 상승 기대감이 번지게 된다. 신속한 사업추진과 사업성 개선을 위한 용적률과 층수완화 등은 기존의 자산소유자들의 자산 기대가치를 더욱 높이고 시장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가격이 정상화되는 것을 방해하는데 기여한다. 결국 이런 소식이 이어지면 부동산 소유자들에게는 내 재산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식된다. 오세훈 시장의 신통기획이라는 재개발·재건축 정책은 그래서 위험하다. 부동산과 주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이 정상적인 자기 책임과 자원 배분 절차를 통해서 순환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소유자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탐욕, 투기 심리만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최근 한 소송절차에서 자체적으로 소규모 재건축을 추진 중인 사업구역에서 현금청산 대상이 된 몇몇의 주민들을 만났다. 1980년대 초반에 건축된 낡은 연립주택, 개발이 완료된 소규모 아파트 단지, 재래시장과 저층주거지가 혼재한 서울의 변두리 지역 거주민들이다. 재건축 이슈로 인해 아파트 가격과 분양가격이 치솟다보니, 건설 시행사가 붙어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존 소유자들이 연립주택을 내놓고 새집을 받아가는 조건이었다.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 중 일부는 자신의 주택이 신통기획 재개발에 편입될 때 더 큰 폭의 자산가치 상승이 기대되므로 소규모 재건축사업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개발로 인하여 자산소유자와 개발시행사가 누리게 되는 자산가치 상승은 제로섬 게임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반드시 누군가의 부담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기존 자산소유자의 이익이 커지지만, 부동산 시장이 악화하는 경우에는 개발비용과 미분양 위험이 기존 소유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전가된다. 기존 자산 소유자의 이익이 커질수록 자산을 갖지 못한 아래 세대에게 더 큰 위험과 부담이 전가된다. 투명한 절차, 적절한 책임과 부담이 전제되지 않은 개발사업, 부동산 가격의 급등락은 부동산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우리 모두를 불행에 빠트린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 관료, 언론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 이유가 '공급 부족'이라 소리 높여 외쳤다.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이 폭등하니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여 대폭적으로 공급을 늘려야한다고 하였다. 공급 확대는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한 마법의 황금열쇠였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부터 경제상황에 큰 변동이 생겼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 긴축 기조가 확산하면서 부동산 거래량이 급속히 축소됐다. 미분양 확대와 부동산 경기위축으로 인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졌고 부동산 위기가 금융권으로 연결되는 시스템 위기를 염려해야하는 국면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시장은 여전히 '신속한 주택공급'을 강조하며 신통기획을 추진 중이다.
기성 언론들은 주택 인허가와 착공 건수가 감소했다면서 향후 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주택가격이 다시 폭등할 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다. 정부 또한 이런 기성언론들의 지적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9.26.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적보증기관 HUG, 주택금융공사 등을 통한 보증규모·대출한도 확대, 심사기준 완화, 적극적인 금융공급 지속 등의 내용을 담았다. 부동산가격 폭등기의 부동산 대책도 공급 확대였으며, 부동산 경기 위축기의 부동산대책 또한 공급 확대이니, 공급 확대는 이 나라 부동산 정책의 만병통치약이다.
이미 본격적인 사업추진을 위하여 인허가를 받은 사업장조차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착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가 국민 세금을 쏟아 부어 건설사의 PF대출을 지원하는 대책이 나오는 국면인데, 오세훈 시장의 신통기획을 통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오세훈 시장은 압구정, 여의도, 용산과 같이 한강 인접 지역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강주변 개발과 재건축사업을 연계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공유공간인 한강을 주변 특정 아파트 개발과 연계해 용적률, 층수제한 완화 특혜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한강 프로젝트와 연계된 신통기획은 합법적으로 공공의 가치를 고스란히 한강변 아파트 소유자들의 주머니에 넣어주는 정책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기존 아파트 소유자들에게 용적률 상향 혜택까지 주어가면서, 신속하게 재건축을 추진해야만 하는지, 이런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서울시민들에게 꼭 필요하고 시급한 정책이 50억 아파트를 60억, 70억으로 올리는 정책인지 말이다.
지금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가 아니다. 이 와중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명목으로 특례보금자리론, 전세보증금반환 대출 등 가계대출을 더욱 늘리는 정책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 또한 위험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를 방치하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자산불평등이 심해진다고 우려하면서도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하여 자산소유자들의 투기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신속하게' 개발사업을 추진해야할 사회적 필요가 있을까. 재건축·재개발사업은 필연적으로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오세훈 시장의 신통기획은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시장원리에 따라 부동산 개발사업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수록 사업성이 확보된다. 부동산 공급확대는 사업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며, 사업성 확보를 위해서는 고분양가, 높은 부동산 가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가계부채의 확대로 이어진다. 공급확대는 결국 개인에게 폭탄 돌리기 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신속한 재건축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 폭등한 부동산 가격을 정상화하고 자산소유로 인한 양극화와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압구정 재건축 현장에서는 공공기여 부분에 대한 불만, 개선 요구가 많아 이들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신속하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주택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사익과 조율할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핵심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들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고급 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큰 돈을 벌어 좋은 집에 거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누구나 압구정동의 50억 아파트에 거주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의 노력을 통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 변화와 공공인프라 확대로 발생하는 이익에 그에 맞게 과세하면 된다. 보유세, 초과이익환수금 등의 제도를 통하여 자신이 누리는 혜택만큼의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자산쏠림을 완화하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방법이다. 이를 재원으로 정부는 최저주거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노출되었거나, 수해 피해에 취약한 지하층 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정책을 펼칠 수 있다. 오세훈 시장은 그마저도 소홀히 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해 폭우로 인한 지하주택 침수로 장애인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지하주택을 매입하고 지하주택 거주자들에게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 정책을 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시행하는 반지하 주택 매입실적이 저조하다.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신통기획과 모아타운 정책으로 인하여 재개발구역의 지하주택은 누군가의 거주공간이 아니라 재개발 입주권을 받기 위한 투자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하주택을 공공매입하려면 재개발로 인한 프리미엄을 포함한 높은 금액으로 매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유자들은 개발이익이 반영된 프리미엄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매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대와 집이 필요한 사람들을 빚더미에 나앉게 만드는 정책, 위험천만한 부동산 투기판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미래를 준비할 방법이 없게 만드는 정책, 주거취약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세금이 또다시 집값을 올리는데 사용되는 정책이 바로 신통기획과 모아타운과 같은 재개발·재건축 정책이다. 지금은 오세훈표 부동산 정책 한 켠에 방치된 토지임대부주택을 광범위하게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일이 신통기획보다 훨씬 더 시급하다.
우리 시대는 자산 소유자들의 투기심리를 조장하는 신통기획이 아니라, 자산소유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득 수준에 맞는 주택을 공급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의 보유와 사용, 처분으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누군가가 더 큰 부담을 해야 한다. 이것이 공급 확대의 목표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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