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글 보러가기 ☞ 어느 날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에 페미니스트가 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걸어서 출퇴근한다. 이들 대부분이 내가 사는 인근 동네 주민들이다. 이들에게 '청소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종로 한복판에서 발언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청소노동자라는 것을 밝히고 동네에서 열리는 주민 행사에 참여하는 것', 둘 중 어떤 게 더 부담스러운 일일까? 특히 이제 막 노조에 가입해서 노동과 권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조합원이라면 말이다.
이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인사하며 지내는 이웃이 많다. 자주 가는 목욕탕에서는 매점에서 일하시는 분과 동네에 새로 생긴 밥집이나 품질 좋은 마트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세신사
(때밀이)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지내는데, 이분들은 하나같이 목욕탕 인근 지역이 아닌 먼 곳에서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았다. 1, 2년 단위로 새로 바뀌는 세신사 분들도 마찬가지여서 의외였다.
왜 그럴까? 필자는 세신사들의 거주지와 근무지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가 세신사라는 노동을 하찮게, 혹은 수치스럽게 규정하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집에서 일하는 '여성'(엄마, 딸, 며느리)은 치켜세우곤 한다. 가령 깔끔하게 청소하고, 질병이나 노화로 혼자 몸을 씻기 어려운 가족을 정성스럽게 씻기거나, 간병하는 여성들 말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노동을 임금 노동 현장에서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가? '걸레로 먼지나 닦는 사람', '더러운 때를 밀어 주는 사람', '똥 기저귀 가는 사람'이며 멸시하기 일쑤다.
물론, 해당 노동을 집에서 할 때에도, 그 노동자가 전업주부라면 '돈도 안 버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등의 말을 듣기 쉽다. 반대로 그가 임금노동을 하고 있다면 '돈 몇 푼 번다고 할 도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거냐'는 비난이 쉽게 들러붙기도 한다.
지금 사회에서 노동을 서열화하는 방식은 덜 힘들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우위에 두고,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을 멸시하는 형태다. 우리의 노동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고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문제,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소노동처럼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직군은 '회피하는 직군'이 되고, 결국 그 자체로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훼손시킨다.
다소 다른 이야기지만, 올해 2월 '너머서울'과 '전국여성노조' 등이 공동주최로 '지하철 5060 청소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및 결과보고회'를 열었다. 당시 나도 토론자로 나갔었다. 주요하게는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중장년 여성이 겪는 '성폭력 피해 가시화'의 어려움이나 반성폭력 투쟁방향에 대한 내용을 다뤘지만, 마무리 발언은 청소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성폭력 문제든 임금 문제든 노동환경 문제든 어떤 문제든지 간에, 자신 혹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수치심'은 우리의 힘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당시 토론을 이런 말로 마무리를 했었다.
"직업 위계가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노동은 매우 낮은 직업 위계에 놓여 있고, 많은 청소노동자들은 자신을 '밑바닥 인생'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공부 안 하면 청소일 한다'는 부모들의 으름장처럼, 청소노동은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평가를 받습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일터에서 인격적 무시가 흔하게 일어나고 (가령, 대학 교수가 학내 청소노동자가 인사를 건네자 인사 하지 말라고 했다는 등의) 사적 관계에서 자신의 직업을 잘 공개하지 않는 상황도 빈번합니다.
이런 현실은 개인의 자존감이나 저항적 힘을 낮춥니다. 특히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기 어려울 때, 권리를 요구하고 투쟁하는 동력 응집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자신의 노동과 삶에 긍지를 가질 수 있을 때, 부당함에 맞서는 힘도 강해집니다."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절하의 역사 … 누가 '수치심'을 만들었나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어떤 청소노동자에게는 집에서 한참 먼 도심 한복판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는 것보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청소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발언하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청소 일 다니는 할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손주가 있을 수도 있고, 그게 마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연대'(이하 페미연대) 구성원이자, 지역에서 주민들과 밀착된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단체 '강북여성주의 문' 활동가에게 제안했었다. 청소 노동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강요하는 사회에 맞서,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 주민들 앞에서 청소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말이다.
또 한편 페미연대에 함께하고 있는, 지역에서 성매매여성을 지원하는 인권단체 활동가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처음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자고 결정한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당연히 연대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동시에 조금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말이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이 직업 훈련 과정을 마치면 다양한 영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텐데, 단순한 직업 교육 이상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늘 해왔다고 했다. 쉼터에 머물며 자활센터에서 직업적 기술을 익히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 경험이 제한적인 성매매 여성들이 많은데, 이들이 다양한 노동 현실을 배우길 바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노동의 기술'도 필요한데, 사회적 낙인이나 여러 문제로 그런 중요한 것을 익히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청소노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투쟁하는 중고령 여성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 이 자체가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터는 극단의 차별적 장소이고, '노동의 기술'이란 해당 업무에 대한 기술뿐 아니라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것까지 포함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런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고, 폐쇄적인 노동 환경에서 사회적으로 강한 낙인에 놓여 있는 성매매 여성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성매매 현장을 떠나 새로운 일터를 모색 중인 이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오가다 마주쳤을지 모를, 파마한 짧은 머리의 중장년 여성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이 평범해 보이는 흰머리 희끗한 여성이 붉은 조끼를 입고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마음속으로 응원했던 경험. 성매매여성들에게 이 경험은 무엇으로 남을까.
내가 속한 단체 '다른몸들'에서는 '돌봄노동자 생애사 쓰기 모임'의 60-70대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이 이번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함께했다. 이분들은 지난 3월 8일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앞에서 열었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아직도 말씀하신다. 당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들으며 "나이든 우리 여자들도 뭉치면 잘 싸울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60대인 김춘심 요양보호사님은 그날 무대에서 요양보호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성희롱이나 괴롭힘에 대해 자세히 발언하셨는데. 이날이 자신 생애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서 발언해 본 날이고, 그 내용이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것이라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도 보람된 일이었다고 하셨다. 이후 자신의 일터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파업에 참여해서 생애 두 번째 발언도 하게 됐고, 구호를 외치는 것도 조금 더 익숙해지셨다고 한다.
이처럼 덕성여대청소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 샤워실 설치, 휴게실 개선 요구 투쟁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자 페미연대 우리 모두의 배움과 투쟁의 장이었다. (이후 연재에서 덕성여대 조합원 그리고 덕성 분회가 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플랫폼씨,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의 경험도 자세하게 언급될 것이다. 필자 주.)
청소노동자 투쟁과 여성의 '건강'할 권리, 그리고 여성운동이 나아갈 곳
또 한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은 요구안이 임금, 샤워실, 휴게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 건강 투쟁인 측면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질병이나 건강은 계급, 젠더, 임금, 고용, 환경, 관계, 학력, 주거, 돌봄, 지역 등에 매우 민감하게 영향받으며 형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흐름을 보면 19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에서 여성의 권리에 ‘여성 건강’이 포함됐고, 이후 여성노동자 건강에 대한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도 조금씩 확산됐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논의를 돌아보면, 국내의 논의는 '여성이 노동 현장에서 이렇게나 차별받는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에 주력해온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노력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런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것이다. 이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샤워실이나 휴게실 같은 이슈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여성노동자들이 이를 사측에 요구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또한 이 과정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함께했다는 것도 유의미하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노동운동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역사도 일제강점기 정미업 여공 투쟁부터 YH 김경숙 열사나 여성전화교환원 투쟁 등 뜨겁게 존재해 왔다. 하지만 현 시대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함께 연대하고, 투쟁 내용을 페미니즘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물론 한국여성노동자회나 전국여성노조를 비롯한 단위들은 여성노동자 관점에서 노동 현장을 다시 읽고, 거친 환경을 돌파하며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게 특정 단체만의 역할이어서는 안 된다. 여성운동에서 지겹게 외쳐온 것은 젠더 관점이 여성단체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노동에 페미니즘을 기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페미니즘적으로 재사유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에 페미니즘을 입히는 게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를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론에서 언급한 '수치심'은, 가족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여성에게 더 많이 강요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성역할로 규정되어 왔던 노동, 여성이 가족 안에서 수행해 온 넓은 의미의 재생산 노동은 추앙과 멸시를 동시에 받았고 명백히 저평가되어왔다. 이 노동이 임노동 현장으로 나왔을 때, 낮은 위계를 가진 직업으로 고착화하면서, 끝내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여성 노동자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하면서 아주 오래전 느꼈던 혼란을 다시 떠올렸다. IMF 사태가 터지며 사회가 초토화되고, 노동정책은 더욱 악화하고 있던 2000년 때다. 나는 여성단체에서 여성 노동 상담과 사건 지원 활동을 하고 있었다. 농협 사내 부부 해고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 우선 해고'가 빠르게 진행됐고, 여성 직군이 더 빠르게 비정규직화되고 있는 현실을 매일 목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자주 분노와 무기력, 혼란과 자괴감을 오갔다. 그때는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등장하고 확산하던 시기였고,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분절되어 있어서 연대도 더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며, 지금처럼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같은 언어를 갖기도 이전이었다.
그리고 여성주의적 운동 방식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나, 여성주의적 글쓰기가 무엇이냐는 담론도 한창이던 때였다. 수많은 토론이 있었으나 명확한 결론이 없는, 소위 공중에 사라지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답이 없던 토론도 중요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청소노동자의 문제가 노동문제이면서 여성문제이고, 병렬적 정체성의 결합이 아니라면 우리의 투쟁 방식도 그러해야 한다는 토론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그 토론 자체가 우리는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방향을 계속 모색 중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덕성여대청소노동자 연대를 하며 20여 년 전 당시 느꼈던 무기력과 자괴감을 새롭게 마주 할 수 있었고,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새로운 연대를 통해 다른 결의 가능성을 보았다. 지난 1년 가까운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의 활동을 중간 평가해 본다면, 여성단체를 표방하는 단위뿐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 단위에서 페미니즘적으로 사회 문제를 읽고 투쟁을 만들어 가는 근본적 전환. 그리고 여성운동은 어떤 영역보다 지역운동이 중요하고 의미 깊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페미연대 활동이 청소노동자들의 저항의 역동성을 더 강하게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동시에 우리는 '페미니즘은 무엇이고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깊고 조밀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지난 1년 페미연대 활동을 하며 교차성이라는 단어가 종이 위 잉크를 넘어서, 현장의 투쟁에서 숨 쉰다는 것의 의미를 자주 생각했다.
지난 3월 8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대회 때, 이런 피켓을 만들어서 들고 나갔다. "여성노동자가 세상을 바꾸고 페미니스트가 혁명을 만든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혁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 완벽한 지도를 아직 손에 쥐고 있진 않다. 다만 우리는 동료들과 여러 시도를 하고, 새롭게 지도를 만들며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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