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클린룸'이라고 해서 기계화된 깔끔한 공간에서 청소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도떼기시장 그 자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일을 했지? 일찍 알았으면 그만두라고 했을텐데, 너무 슬펐다. 클린룸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다."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에서 '클린룸'을 청소했던 故이모 씨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지난해 2월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21일 이 씨의 췌장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관련기사 : [단독] 죽고 나서야 산재 인정된 삼성 '반도체 청소노동자') 그의 남편 김모 씨는 故이 씨가 일했던 '클린룸'을 다녀온뒤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11일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클린룸'(반도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주로 먼지가 들어가지 않는 밀폐된 공간)을 청소하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청소노동자 故이 씨의 남편 김모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이 씨의 산재 판정을 위해 역학조사를 진행하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매일같이 연락을 했다. 그 덕분에 아내가 일했던 '클린룸' 역학조사에 함께 참관할 수 있었다. 김모씨는 클린룸을 '도떼기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소음이 심해서 귀에 헤드폰 같이 소음을 방지해주는 제품을 착용했는데도 머리가 웅웅 울렸다. 옆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위에는 기계들이 지나다니고 아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정체모를 바람이 사방에서 나왔다. 청소노동자들이 그 사이를 밀대에 면포를 껴서 계속 밀고 다니더라. 잠깐만 다녀왔는데도 머리가 띵했다. 집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씨는 2014년 9월부터 4년 11개월 동안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클린룸을 청소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2019년 7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같은 해 9월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후 2년 6개월동안 항암치료를 진행하다 지난해 2월 18일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뒤 10개월이 지나고, 산재를 신청한 지 3년 3개월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 씨의 췌장암은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부터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췌장암 발암요인으로 인정 되는 벤젠 등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된 반도체 라인 내 청소노동자의 노동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가 인정된 것이다.
이 씨의 췌장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지만 남편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김 씨는 "기뻐야 하는데,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으니 기쁘지가 않았다"며 "판정이 난 건 나중 문제고, 병에 걸렸을 때 마음 놓고 치료를 받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일하다 얻은 병인데..."라고 말했다. 그는 이 씨가 판정결과를 보았으면 "정말 기뻐했을 것"이라며 " 저한테 무엇을 하나 사달라고 해도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만약 살아있을 때 판정이 났다면, 그런 마음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씨는 꼭 풀고싶은 오해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산재 인정 기사 밑에 '병은 얻었지만 그래도 삼성에 다니니 돈은 많이 벌었겠네'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집사람 월급명세서를 보고 기가 막혔다"며 "기본급이 176만 7512원"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하청업체에 소속되었지만, 삼성 직원이 직접 청소 지시를 내렸고 삼성으로 청소를 하러 다니니 그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삼성에 다니지만 삼성 다니는 사람의 월급이 아니다. 삼성 본사 직원들만 돈을 많이 번다"며 "삼성 다니는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시급 받고 위험한 곳에 가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이 씨의 판정을 통해 다른 청소노동자들이 살아있을 때 산재 판정을 받아,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판정서를 보니까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위험성을 인정한 내용이 많던데 그걸 참고로 해서 다른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클린룸에서 청소하는 분이든, 생산직이든, 기술자든, 누구든 지금보다 더 산재 인정을 빠르게, 살아있을 때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유해물질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클린룸 유해환경의 위험성을 주된 산재 요인으로 처음 인정했다. 질병판정서를 통해 "고인은 반도체 공장 FAB 클린룸에서 청소업무를 수행하면서 FAB 출입자와 유사한 다종의 유해물질 등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유해물질을 면포를 이용해서 찌꺼기를 닦고, 닦은 면포를 세탁하기 전에 터는 등의 작업 및 폐기물함 정리 작업 과정에서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위험성을 인정했다.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그 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김모 씨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못했다. 지난 설에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있었지만 이번 설에는 아내의 빈소를 찾을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설에 집사람 빈소에 갈 계획"이라며 "(아내가) 매일 그립다"고 했다. 이어 "이제 우리같은 사례가 있으면 역학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며 "우리처럼 3년 넘게 기다리거나, 죽은 다음 판정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씨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산재 판정까지 3년 3개월 걸려... 일하다 얻은 병이면 적어도 살아서 치료할 수 있게 해줬어야"
프레시안 : 언제부터 췌장암의 증상이 나타났고 언제 진단을 받았나.
김모 씨 : 아내가 삼성 클린룸에서 2014년 6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집사람은 건강염려증이 있었다. 1년에 건강검진을 2번 하고,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병원을 갔다. 그런 사람이 2019년 6월부터 갑자기 소화가 안 된다고 했다. 동네 의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내과, 한의원을 다 가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 메슥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고 하니, 3차 병원에서 CT를 찍었다. 췌장암이었다. 말기라고 했다. 그 말을 못 믿고 한 군데 더 가서 CT를 찍어보고, CT진단을 의뢰했다. 결국 췌장암이었다. 청천벽력 같았다.
프레시안 : 어떻게 산재 신청을 하게 됐나.
김모 씨 : 집사람 회사 동료가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가 있고,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의 췌장암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없었다. 반올림 소속의 이종란, 조승규 노무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렵다고 했지만 집사람과 함께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산재 신청하는데 수임료도 하나도 안 받으셨다. 우리도 사례가 없으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노무사님들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산재를 신청한 지 얼마나 되었나.
김모 씨 : 판정까지 3년 3개월 정도 기다렸다.
프레시안 : 심사 기간이 길어졌고, 기다리는 동안 췌장암에 걸린 배우자가 사망했다.
김모 씨 : 집사람이 죽고 나서 산재 신청을 취소하려고 했다. 배우자가 사망한 뒤에는 유족급여로 다시 신청을 해야하니까. 자기 마누라 죽고 유족급여 신청해서, 그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반올림 조승규 노무사가 오셔서 여태까지 해왔는데 왜 취소하시려고 하냐고 했다. 그래서 집사람 언니 오빠에게 산재 신청을 했고 이제 취소하려고 한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걸 왜 안 하냐', '끝까지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한이라도 풀어주라'고 했다. 처형하고 형님들 허락없이는 하고싶지 않다고 했더니 다들 하라고 용기를 줬다.
프레시안 : 3년 3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국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았다. 기분이 어땠나.
김모 씨 : 슬펐다. 기뻐야 하는데,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으니 기쁘지가 않았다. 처형도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10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계시다 돌아가셨다. 하지만 떨어진 순간 산재로 인정되어서 비용 부담 없이 치료를 했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집사람이 죽고나서야 판정이 났다. 판정이 난 건 나중 문제고, 병에 걸렸을 때 마음 놓고 치료를 받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투병하는 30개월 동안 일도 그만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故황유미 씨 덕분에 만들어진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 위원회'에서 일부 지원보상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모두 치료비로 사용하고, 빚을 내서 생활했다. 항암제, 시험약에는 비급여가 많았다. 한 번 맞을 때 비싼 것은 500만 원 씩 냈다. 일하다 얻은 병인데, 그 병을 적어도 치료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프레시안 : 배우자분께서 이 결과를 받았으면 어땠을 것 같나.
김모 씨 : 정말 기뻐했을 거다. 치료하는데 불안한 마음이 없어졌을 것이다. 저한테 무엇을 하나 사달라고 해도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만약 살아있을 때 판정이 났다면, 그런 마음이 없어졌을 것이다. 겪어보니 암환자들이 필요한 게 많았다. 몸의 온도를 1도 올리는데도 뜨거운 스톤을 배에 차고 있어야 했다. 좌훈기도 샀는데... 한 번도 못해보고 가버렸다.
만약 살아있을 때 이 결과를 받았다면 지금보다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완치까지는 어려워도. 산재가 인정이 되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항암제 치료를 시도해봤을 수도 있다. 아내가 암 판정을 받으면서 둘 다 일을 그만뒀다. 그러면서 항상 생활비 걱정이 있었다. 앞으로는 클린룸 청소하시는 분들이 설사 병을 얻더라도 살아계실 때 산재 판정이 되어서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클린룸은 '도떼기 시장' 그 자체... 기본급 170만 원 받고 위험한 일 하는 반도체 청소노동자"
프레시안 : 오랜 기간이 걸려 산재로 인정이 됐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김모 씨 : 집사람 사건을 맡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에게 거의 매일같이 연락을 했다. 원래는 전화를 받지 않는 연구위원도 있다고 하는데, 그 분은 소통을 잘 해주셨다. 삼성 클린룸 청소노동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제대로 진행한 적이 없어서 역학조사를 진행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클린룸 역학조사를 진행할 때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클린룸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를 보았다.
프레시안 : 배우자분은 어떤 노동 조건에서 일을 했나.
김모 씨 : 하청 업체에 소속되어 일을 하지만, 삼성 직원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삼성에서 일을 하는 거였다. 지난 산재 인정 기사 밑에 '병은 얻었지만 그래도 삼성에 다니니 돈은 많이 벌었겠네'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집사람 월급명세서를 보고 기가 막혔다. 기본급이 176만 7512원이었다. 삼성에 다니지만 삼성 다니는 사람의 월급이 아니다. 삼성 본사 직원들만 돈을 많이 번다. 삼성 다니는 누구는 보너스만 몇천만 원을 받는다는데, 삼성 청소노동자들도 그럴 줄 알 거 아니냐. 한 달에 300이라도 받을 줄 알 거 아니냐. 전혀 아니다. 170만 원 버는 게 많이 받는 건지, 댓글 단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그런 댓글들이 반도체 청소노동자 기사에 옛날부터 달렸다. 전혀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삼성 다니는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시급 받고 위험한 곳에 가서 일한다.
프레시안 : 클린룸에도 다녀오셨다고 했는데, 직접 가보니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나.
김모 씨 : 깜짝 놀랐다. '클린룸'이라고 해서 기계화된 깔끔한 공간에서 청소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도떼기 시장 그 자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일을 했지? 일찍 알았으면 그만두라고 했을텐데, 너무 슬펐다. 클린룸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다. 소음이 심해서 귀에 헤드폰 같이 소음을 방지해주는 제품을 착용했는데도 머리가 웅웅 울렸다. 옆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위에는 기계들이 지나다니고 아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정체모를 바람이 사방에서 나온다. 청소노동자들이 그 사이를 밀대에 면포를 껴서 계속 밀고 다니더라. 집사람은 혼자서 한 층을 담당했다고 했는데, 역학조사 차 방문했을 때는 30m 간격으로 한 층에 20명의 청소 노동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사나온다고 하니 이렇게 사람을 배치했나 싶었다.
프레시안 : 면포로 클린룸의 가루와 먼지들을 닦고 다니셨다고 했는데, 어떤 가루인지 알 수 있었나.
김모 씨 : 모르겠다. 가서 머리만 띵하고 너무 시끄러웠다. 어떻게 갔다 왔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잠깐만 다녀왔는데도 머리가 그렇게 띵했는데. 집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인을 처음 설치(셋업)했을 때는 더 심했다고 했다. 삼성에서도 '접근금지'라고 써놓긴 했지만,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했기때문에 청소를 했다고 했다. 그게 황산인지 뭔지 어떻게 알겠나. 그걸 면포로 다 닦아서, 털고 재사용하고 그러니 호흡기에 무슨 물질이 들어갔을지 어떻게 아나.
클린룸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퍼레이터나, 엔지니어도 충분히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린룸이 '클린룸'이 아니라 아주 시끄러운 시장 같았다. 유지보수, 생산, 청소가 모두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더구나 청소노동자들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서 일 하는 게 아니라 청소가 필요한 모든 공간을 다니면서 숨을 쉰다. 사람이 일 할 공간이 아니다. 생전 집사람이 한 달 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겠더라. 집사람이 거기 적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로 돌아가면 거기서 일하지 말라고 했을 거다.
"매일 그리운 아내... 우리처럼 죽은 다음 판정받는 일 없길"
프레시안 : 배우자 분이 살아 있었다면, 그 때로 돌아간다면 이란 말을 자주 하신다. 배우자 분이 많이 그립나.
김모 씨 : 매일 그립다. 말기암 환자랑 살면서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싸운 적도 없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입맛도 체질도 싹 바뀌어버린다. 아내가 암에 걸린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항암제가 너무 독했으니까 얼마나 힘들었겠나. 막판에는 죽고 싶다고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고 싶어했는데, 자리가 안 나서 옮기지 못했다. 집사람이 가고 나서는 잠을 못 잔다. 하루 소주 한 병씩 먹어야 한다. 아니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 유품은 대부분 정리를 했는데도 계속 생각이 난다. 이러다 고독사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레시안 : 지난 설에는 어떻게 보내셨나.
김모 씨 : 가족끼리 모여서 집에 있었다. 설에 병원에 있으면 우울하다고 해서, 항암치료가 잡혀있었는데 미뤘다. 생일도 그 근처라 아들 둘도 함께 모여 집사람의 생일파티를 했다. 애들한테 끔찍하게 잘했고 나한테도 참 잘했다. 생활력도 강한 사람이었다.
프레시안 : 이번 설에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김모 씨 : 설에 집사람 빈소에 갈 계획이다. 그리고 애들하고 같이 저녁식사할 것 같다. 산재 인정 결과가 나온 날도 가서 알려줬다. 아무래도 그날 얘기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기뻐했겠지. 빈소는 수시로 간다.
프레시안 : 반올림 조승규 노무사가 '고인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인정된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모 씨 : 맞다. 그래도 살아있을 때 인정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판정서를 보니까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위험성을 인정한 내용이 많던데 그걸 참고로 해서 다른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클린룸에서 청소하시는 분이든, 생산직이든, 기술자든, 누구든 지금보다 더 산재 인정을 빠르게, 살아있을 때 받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3년 넘게 기다리거나, 죽은 다음 판정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모 씨 : 우리나라에서 정책으로 반도체를 육성한다, 반도체 강국이다 하지만 그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은 전부 노동자다. 500조, 300조 반도체 호황일 때 그 기계를 돌리는 사람은 다 일개미다. 많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다 병에 걸리면, 치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어차피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 클린룸을 청소하는 사람들도 다 일개미들인데. 정부도 반도체 특별법이다 뭐다 해서, 기업 규제를 풀어주고 보호해주지만 노동자들은 보호해주지 않는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면 회사에서 책임을 져달라. 국가든 삼성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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