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양심·사상 등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가보안법 제7조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단을 받았다. 지난 1991년 법이 일부 개정된 이래 8번째 합헌 결정이다.
헌재는 이적행위 찬양·고무를 금지하는 국보법 7조 1항과 이적표현물의 소지·유포 등을 금지하는 동법 7조 5항에 대해 26일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적행위를 찬양하거나 행위에 동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7조 1항은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합헌 의견을 낸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등 재판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 체제 존립의 위협 역시 지속되고 있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아 온 국가보안법의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 행위자를 처벌하는 7조 5항의 경우 구체적인 행위에 따라 판단이 엇갈렸다.
이적 표현물을 '제작·운반·반포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 6대 3으로 합헌 결정을 받았지만, 표현물을 '소지·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 4대 5로 위헌의견이 더 많았다. 다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는 6명이기에 해당 부분 또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5항에 대한 합헌 의견으로 합헌 측 재판관들은 "전자매체 형태의 표현물은 소지·취득과 전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고 전파 범위나 대상이 어디까지 이를지도 예측할 수 없다"라며 "(표현물) 금지의 필요성이 종전보다 더욱 커졌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기영·문영배·이미선 등 1항과 5항 모두에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인간 존엄과 가치 보장에 필수적"이라며 "이적행위 조항(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처벌 대상에 포함시켜 대다수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 내지 그 전제가 되는 양심과 사상의 형성을 위축시키고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5항 중 '소지·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의견을 낸 유남석·정정미 재판관의 경우 "소지·취득 행위는 내심의 영역에서 양심을 형성하고 양심상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지식정보를 습득하거나 보관하는 행위"라며 "양심형성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속한다"고 위헌 의견의 취지를 밝혔다.
'이적표현물의 유포·전파를 금지'하는 동 조항의 규정만으로도 국가안보 등의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이들은 표현물 등을 소지·취득하는 이들까지 처벌하는 5항의 내용은 "(권리)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국보법의 해당 조항들은 △국보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돼 처벌 대상이 부당하게 확대될 수 있으며 △개인의 양심 및 사상 등을 국가가 재단해 처벌하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지적 속에서 위헌 논란을 낳아왔다.
특히 노동계 등지에선 "노동현장에서 자주·민주·통일·노동해방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선전물을 제작 배포하는 것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한다"(민주노총)고 지적하는 등 해당 법령이 노동·시민운동을 압박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지속돼왔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앞서 지난 15일 열린 국보법 관련 헌법소원 공개변론 자리에서 "국가보안법은 말과 글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작품, 개인 소셜미디어(SNS) 활동까지도 이분법적인 잣대로 규율하고 있다"라며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한 자기검열에 따른 표현행위의 위축과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인 공론의 장이 왜곡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이적행위로 야기된 명백한 위험은 현재 시점에 당장 현실화한 것은 아닐지라도 언제든지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위험이 현존하는 단계가 되면 막대한 피해가 초래돼 공권력의 개입이 무의미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헌재의 선고는 2017년 수원지법, 2019년 대전지법이 각각 낸 위헌법률심판제청과 개인 헌법소원 등 총 11건을 병합해 이루어졌다.
헌재는 '반국가단체'를 규정하고 있는 동법 2조와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하는 7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법률상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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