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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김정은 밀착, 한반도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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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김정은 밀착, 한반도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현안진단] 북·러의 '위험한 브로맨스'와 국익 우선의 전략

우크라이나 전쟁의 나비효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장 근래 발발한 현대 전쟁으로, 공업화된 두 국가 간 전면전이라는 점에서 군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와 경제 등 다양한 차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등 첨단 장비들이 일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전차, 장갑차, 야포 등 재래식 무기가 전황을 좌우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인터넷과 언론매체는 맥없이 파괴당한 전차와 장갑차의 모습을 전하고 있지만 정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소모된 전차와 장갑차의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진입하면서 군수 보급능력에 따라 전쟁의 향배가 결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 탄약류의 급격한 소모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나토(NATO)와 미국 등 전 세계로부터 사실상 무제한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전쟁물자의 급격한 소모를 보충하는데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얼마 전 사망한 와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러시아 군 당국이 약속한 탄약류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반격을 시도 중인 우크라이나에 맞서 그동안 축조한 방어선으로 버티고 있지만, 탄약류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방어선이 뚫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 나토 역시 편한 상황이 아니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나토는 유럽에서 대규모 전면전이 더 이상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따라서 군비 확보에 주력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전과 대테러전 등을 치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현대적인 전면전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막대한 소모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반면 한반도의 경우 남북 양측이 70여 년간 대규모 전면전에 대비해왔으며, 이를 위해 상당한 양의 탄약 비축과 아울러 군수보급 능력을 유지해왔다. 한국의 경우 현대화된 대규모 포병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당한 양의 탄약을 비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미국이 한국산 탄약에 대해 관심을 보인 이유이며, 우크라이나 정부도 한국에게 무기 공급을 요청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소련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북한은 총알과 포탄 등에서 러시아와 동일한 규격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10여 일이면 북한산 탄약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 와그너그룹 등에 무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매체는 지난 7월 러시아 쇼이구 국방부 장관의 방북 전후부터 이미 북한산 탄약이 러시아군에 전달되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매우 절실한 탄약을 단기간 내에 보급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북한이 유일하다.

70여 년간 전면전을 준비해온 남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에 미국·유럽과 러시아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셈이며, 이러한 배경 하에 지난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7월 25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 및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나비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동상이몽

각종 정상회담의 지각 대장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30분이나 일찍부터 김정은 위원장을 기다렸으며, 직접 기지 내부를 안내했다. 김 위원장은 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하는 등 우주기지 내 각종 시설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우주정복을 기치로 내건 김 위원장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시설이며, 북한은 다가오는 10월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천리마1형의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위성발사를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주 강국이며, 로켓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북한이 구소련의 구형 RD 250 로켓기술을 기반으로 백두산엔진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기술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의 로켓 및 ICBM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개연성이 있다.

특히 북한으로선 로켓기술과 달리 한참 낙후된 인공위성 기술과 관련해 러시아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돕는다면 한국 합참이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성능개선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추진잠수함 개발에 기술지원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에는 리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군정지도부장 박정천을 포함해 국방상, 노동당 군수공업부장, 인민군 해군·공군사령관 등 북한군의 주요 인물들과 아울러 국가비상설우주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박태성도 동행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 동선은 러시아 우주 개발의 상징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첨단 전투기 공장, 그리고 극동함대로 이어졌다. 군사정찰위성, 최신 전투기, 핵추진잠수함 등을 확보해 인민군 현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 로켓, 인공위성, 핵 등 첨단 핵심기술을 타국에 통째로 이전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과 장기지속형 관계개선을 도모할 이유도 충분하지 않다.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탄약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거나 휴전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러시아가 전열을 재정비해 군수 보급능력을 확충할 경우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은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휴전할 경우 북한의 중요성은 러시아 점령 지역의 재건을 위한 북한 건설노동력 정도에 한정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로서 이미 작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북한이 국가로 승인한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에 대한 전후 복구사업에 북한 근로자들이 대거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유엔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 근로자의 파견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

러시아는 북한에게 절실한 식량, 비료, 에너지의 주요 수출국이며, 북한이 부품 수급에 애를 먹고 있는 미그 29기 등 러시아 기반 재래식 무기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 첨단 핵심기술 이외에도 북한산 탄약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지불능력은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다.

러시아는 2017년 12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 2397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북제재에 동의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탄도미사일 개발에 반대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러시아가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북한의 핵무장 가속화를 도울 것이라는 가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어느 국가도 국경을 접한 이웃의 핵무장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첨단 핵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기술적 난관에 봉착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크렘린궁은 무기 거래 논의 여부에 대해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거나 발표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현 국제규범 내에서도 군사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농업분야에서 북한에 뭔가(something)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러 양 정상은 정상회담 이후 합의문은 물론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않았지만 정황상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군수지원, 그리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식량지원을 거래했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방러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상황적 결과물이다. 소련 해체 이후 우리는 처음으로 북·러 군사협력을 목도하고 있지만 그 유효기간은 불확실하며, 양측의 이해관계도 상이하다. 탄약으로 대표되는 소모성 재래식 무기 이외에 북한은 러시아에 줄 것이 마땅치 않으며, 북·러 간의 위험한 브로맨스가 장기지속성을 가질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 주에 위치한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익 우선 전략에서 보아야 할 대중, 대러정책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국제의무를 준수하지만 규칙의 틀 내에서는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러시아가 유엔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예상과 달리 북·러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합의나 성명을 도출하지 않았다. 외교안보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으며, 북·러가 선을 넘을 경우 러시아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반대급부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탄약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연장할 수 있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는 어렵다.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전승절'을 계기로 7월 25~27일 쇼이구 러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지원을 약속하면서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그동안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해 북·중 및 중·러관계 강화로 대응해왔는데, 이번 북·러 간 군사적 밀착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립된 반면 중국은 오히려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 간 위험한 관계에 동참할 경우 서구사회로부터 중국 역시 고립의 길을 가게 된다는 점에서 냉전시대와 같은 북·중·러 군사협력 구축은 제약이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중국 매체들이 간략히 전하고, 중국 정부가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이유다.

러시아가 상황 여건에 따라 북·러 밀착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의 미래를 위해서도 러시아와의 편향된 협력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경제의 구조적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다방면의 산업협력이 필요하지만 자원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는 경쟁력 있는 산업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는 식량과 에너지 등은 북한경제 발전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며, 고립된 북한과 러시아 간 경제협력은 구조적으로 제약이 있다.

북·러 정상회담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한반도 안보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기술의 상징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부른 이유는 한·미와 나토를 동시에 압박하기 위함이다.

당장 북·러 간 군사협력에 대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9.19군사합의 폐기를 주장한 바 있다. 두 주장은 모두 국익 우선 전략과 어긋날 뿐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북·러의 '위험한 브로맨스'가 선을 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급한 우리의 과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한반도로 전이되는 상황을 막는 것이다.

북·러 간 위험한 브로맨스에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의 협력을 적극 견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어려운 경제문제에 직면한 중국은 역내 안정적 외교안보 여건이 필요하며, 미국과의 충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과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대립의 고비용 구조의 형성을 막기 위해 중국의 협력을 견인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러시아가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북한과 대화 복원 노력을 재개해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담대한 구상'을 이행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내년 미국 대선의 향배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차기 미국 행정부의 전략이 급격하게 수정될 개연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모든 외교안보전략은 외통수가 없으며, 상호작용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얽히고설킨 국제관계의 체스판을 재인식케 해주고 있다. 선악과 OX의 잣대만으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가중되는 북핵 위협과 역내 안보 불확실성에 확고한 대응태세를 유지하되 불필요한 안보적 긴장고조를 막을 일이다. 외교의 문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차분하게 국익 우선의 전략을 다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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