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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오기 정치'가 키운 판…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프레임은 '책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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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오기 정치'가 키운 판…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프레임은 '책임 정치'

[박세열 칼럼]

원래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일은 아니었다. 오는 10월 11일에 있을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말이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8.15 사면 대상에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콕 짚어 사면했다. 보궐 선거 3개월 전이고,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지 3개월만이다. 김태우 구청장은 사면되자마자 자신의 유죄 판결에 따른 구청장 궐위로 인해 치러진 보궐선거에 재등판을 준비했다.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이런 일은 극히 이례적이란 점에서 오히려 사면권자의 의도가 명확해지는 것 같다.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을 공천했다. 예상된 일이었다. 공천관리위원회도 꾸리기 전에 국민의힘은 "공익제보를 한 김태우는 무죄(김기현 대표)"이라고 했다. 여당 대변인은 "조국 전 장관이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도 김 전 구청장에게 유죄가 나온 건 명백히 김명수 대법원의 편향된 재판 결과(강민국 수석대변인)"라고 했다.

명분은 재공천을 위해 이미 차고 남치게 쌓여 왔다.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무죄'이고 '대법원의 편향된 재판'이라는 것은 법원 재판에 대한 사실상의 '불복'이다. 보수 정부의 '대법 판결 불복'은 참으로 낯설다. 이 선거가 '윤심 선거'라는 건 국민의힘 기류 변화만 봐도 확실해진다. 당초 국민의힘 내부 기류 '김태우 공천 불가'가 앞섰다. 갑작스레 공천으로 방향을 틀면서 '김태우 공천'은 이미 기정사실화 된 바 있다.

'김태우 재공천'으로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선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 김태우는 무죄고, 대법원 판결이 잘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상(혹은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전략공천한 경찰청 차장 출신 후보와 김 전 구청장의 맞대결을 '검경 대결'이라고 하는데, 선거공학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선거는 공학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이번 재보선의 프레임은 '무책임 정치'다. 재보궐 선거 원인이 김 전 구청장의 실형으로 인한 궐위인데, 그 당사자를 6개월 만에 다시 후보로 내세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전략이다. '오기 정치'이고 '무책임 정치'다.

강서구 행정을 책임져야 할 인물을 뽑는 선거가 누군가에 대한 '보상'이어서는 안된다. 속마음이 그럴지라도 최소한 겉으론 그렇지 않아야 한다. 속되게 말한다면 정치는 '속마음'을 어떻게 '겉명분'으로 잘 포장하느냐의 기술이다. 욕망을 대의로 포장하고, 이익과 희생을 적절히 섞어내야 한다. 그래야 '속아도 찍어준다'는 유권자가 나타난다.

기왕 '윤심 선거'가 됐으니, 대통령의 그간 행보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윤 대통령의 지론은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묻는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인 지난해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책임'은 선택적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장관급 고위직이 책임 진 바는 없다. 지난 7월 수해로 인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마찬가지다.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에선 아예 민주당에 책임을 돌린다. 그러다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선 갑자기 스스로 역사 앞의 '책임자'가 된다.

특히 최근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논란은 대통령 특유의 '책임론'을 잘 보여주는 교본 같은 것이다. 사실관계만 나열해 보자. 해병대 조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국방부장관 결재가 끝났다. 그런데 경찰에 이첩까지 했던 수사기록을 국방부에서 찾아가 빼내 왔다. 이후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한 조사 내용엔 해병대 대대장 2명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됐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장이 적시했던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는 빠졌다. 공교롭게도 박정훈 대령의 폭로가 나온 후 안보실2차장과 국방비서관이 교체된다는 보도가 나왔고, 국방부장관까지 교체되게 생겼다. 폭로 내용에 등장하는 관련 인물들이 죄다 행정 체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고약하게도 덤터기는 경찰이 뒤집어쓰게 됐다. 국방부 자료를 넘겨받은 경찰은 7일 채 상병 순직 50일만인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을 압수수색했다. 국방부 조사에선 혐의가 빠졌지만 임성근 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한 별도의 건이 있기 때문에 경찰은 임성근 사단장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빠졌다. 적용 안하면 용산의 의중이 완벽히 이행되는 것이란 비판이, 적용하면 용산의 의중에 항명한다는 부담 사이에 꼈다. 물론 윤희근 청장 체제의 경찰은 99%의 확률로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윗선 수사 개입 폭로' 이후 모종의 힘이 '책임론'을 뒤틀고 있다. 해병대부터 용산, 국방부, 나아가 경찰까지 시스템이 뒤엉켰다. 이것이 '윤석열식 책임 정치'가 만든 자장이다.

정치란 책임을 지는 일이다. 김태우 전 청장 공천으로 '보궐선거 책임이 있는 정당은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책임과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직은 트로피가 아니고 보상이 아니다. 200개 지방자치단체 중 하나를 '윤석열의 선거'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또 다시 익숙한 '윤석열식 책임 정치'을 상기하게 만든다.

민주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 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부정부패 등으로 공석이 된 선출직 자리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뒤집고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다. '책임 정치'를 궤변으로 포장해 '따져 보면 우리 잘못은 아니고 대법원과 민주당 책임이다'라고 미룬다고 유권자들이 그 말을 믿어주긴 어려울 것이다. 여권은 '이미 한 번 가본 곳'에 다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공수가 뒤바뀐 채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중간평가가 다가온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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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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