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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띄어쓰기’와 ‘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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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띄어쓰기’와 ‘표준어’

오늘은 상당히 귀한 자료를 얻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띄어쓰기를 적용한 문법책이다. 이 책이 나오지 전에는 한문을 기본으로 사용하던 터라 한글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흔히 한국어 띄어쓰기는 호머 헐버트(1863 ~1949)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대중화에 노력하고 성공한 사람은 헐버트가 맞다.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 창간과 더불어 띄어쓰기 적용)에 띄어쓰기를 적용할 것을 적극 권장하였고,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어 띄어쓰기를 처음 대중화하여 문법적으로 적용한 것은 헐버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헐버트보다 19년 앞서 한국어에 띄어쓰기를 적용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존 로스(John Ross, 중국이름 나요한, 1842 ~ 1915)이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최초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책 <조선어 첫걸음 COREAN PRIMER, 1877>에서 띄어쓰기를 처음 시도하였다.

▲존 로스가 제작한 조선어 첫걸음 ⓒ최태호 교수

그는 한국에서 온 무역상들과 만나면서 신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마음먹고, 1887년 <신약전서>를 완성하여 한국에 보냈다. 존 로스는 1874년 가을에 고려문(중국 소재 고려인 집단거주지)을 방문하면서 한국인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고, 한국을 선교지로 생각하게 된다. 그의 활동으로는 성서 한글화 작업, 서간도를 비롯한 한인촌에 복음전도 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반도 이남 등에도 영향력을 끼쳤다. 존 로스가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던 당시 “한자는 진서로 일컬어지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한글은 언문이라 불리며 천시되었으며, 한글은 한자의 보조 표기 수단 정도로 인식”되었던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의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한국어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그의 업적이 드러난 것은 요즘의 일이다. 그 이유는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이 평안도 지방 출신이었던 탓으로 표준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평안도 사투리로 한국어 공부책을 발행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로버트 할리라는 연예인이 경상도 방언을 유창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그의 <조선어 첫걸음>에 나타난 문장을 몇 개 보기로 하자.

내 문에 나가갓슴메

ne moone naghaghassumme

I door want to pass(=travel).

어디 가갓슴마

udi gaghassumma

Whither journey!

등과 같다. 온통 사투리뿐이라 현대인은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조선어 첫걸음>에는 남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면 “너는 챠타구 나는 말타구 갑세.”, “사자는 챠뒤여 얼그시.”, “쇼ㅣ쇼한 물건는 챠 안에 두시.” 등이다. 현대 표준어로 한다면 “너는 차 타고 나는 말 타고 갑시다.”, “상자는 차 뒤에 둡시다.”, “작은 물건은 차 안에 두시오.”라고 써야 한다.

<조선어 첫걸음>을 손에 쥐고 참으로 가슴이 뛰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어 교본>을 얻었으니 감개무량함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책의 가치에 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에는 표준어의 개념도 없었으니 평안도 사투리로 번역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으나 항상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신라시대는 경주방언이 표준어였고, 고려시대는 개성 방언이 표준어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양말이 표준어라고 봐야 한다. 임금이 사는 곳의 언어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존 로스가 번역한 성서가 나중에는 호칭의 문제나 표기의 문제 등으로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1887년 2월 7일 서울에서 한국어 성서번역위원회(Committee for Translating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를 조직하였다.

학문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평안도 방언을 배운 까닭에 후대에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이 자못 안타깝다. 띄어쓰기를 처음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수 만번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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