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국민의힘 관계자와 통화한 육성 녹음 파일에 담긴 내용은 여러 가지 점에서 놀랍다. 비속어가 난무하는 거친 언사, 국민의힘에 대한 지독한 경멸, 당 대표를 향한 노골적인 증오와 축출 의지 등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 "국힘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들어가서 다 먹어줘야" "내가 국힘 접수하면 이준석 아무리 까불어봤자 3개월짜리" "만약에 이놈 XX들 가서 개판 치면 당 완전히 뽀개버리고" 등 발언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이 육성 녹음에 대해 국민의힘은 쪽은 "사적인 통화를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라"며 파문 확산을 막는 데 부심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화끈하고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고. "검사 출신들이 원래 말이 거칠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그렇게 평가절하하고 넘어가기에는 함축된 의미가 매우 많다.
한 사람이 구사하는 단어와 어법은 그의 본질을 알려준다. 이 거칠고 공격적이며 상스럽기까지 한 '날것의 언어'는 정당, 정치, 민주주의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가 한 말들은 '과거' 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이고 폭력적 국정운영의 원형질이 이 육성 녹음 안에는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기 등장하는 언어들은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화제가 된 말들이 많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먹다"와 "뽀개버리다" 두 단어다. '먹다'는 녹음 곳곳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이걸 주워 먹어야 돼" "지금 와서 자기들을 잡숴 달라는데 안 가니까…" 등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반복해서 "먹어야" 할 대상으로 표현했다.
'먹다'라는 동사는 다양한 단어와 결합해 사용된다. 잡아먹다, 뜯어먹다, 등쳐먹다, 해먹다, 따먹다, 붙어먹다, 거저먹다, 받아먹다, 털어먹다, 떼어먹다 등등…. 앞에 놓인 단어가 무엇이냐에 따리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먹다'는 결국 욕망의 충족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동사다. 먹히는 상대방은 철저히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국어사전에 '여성의 정조를 빼앗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도 있듯이, 먹히는 상대는 사물화되고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며 인격이 말살된다. '먹어버리겠다'는 말에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여기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먹다'가 '정치'와 결합할 때 비극은 탄생한다. 공익 실현을 이상으로 삼아야 할 정치는 그저 욕망 충족을 향한 싸움터가 된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은 정당이다. 정당은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말에서는 국민의힘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최소한의 존중과 애정도 없다. 국민의힘은 단지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먹어버릴 대상이다. 그것도 힘들이지 않고 쉽게 "주워 먹을" 먹잇감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상식을 뛰어넘어 검찰총장에서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든 것도 '대통령 자리를 먹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더 큰 먹잇감에 이르는 중간 먹이에 불과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말대로 국민의힘을 '주워 먹는' 데 성공했고 대통령직까지 먹고야 말았다.
이 육성 녹음이 공개된 뒤 대통령실은 아무런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사람들이 느꼈을 모욕감과 상처를 달래고 다독일 말을 할 법도 한데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먹이'에 대해 사과를 할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의힘 역시 이미 '생명 활동이 정지된 먹이'처럼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쥐약 먹은 놈들"이라는 말을 들어도 모욕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 듯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뽀개버리다"는 말은 폭력적 파괴 본능을 함축한다. '쌍 비읍'의 쇳소리 효과음이 어우러지며 타격 대상을 산산조각 내는 단어다. 물건을 뽀개는 데 동원되는 연장은 도끼, 쇠망치, 해머 같은 것들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연장의 신봉자다. 정치 입문 초기부터 그에게는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설득, 타협과 화해 따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편을 제압해 먹어버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뽀개버리겠다는 결의만 충만할 뿐이다.
윤 대통령이 당시 여차하면 뽀개버리겠다고 말한 대상은 국민의힘 정당뿐 아니라 국회의원 개개인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충성 경쟁에 나선 것은 자칫하면 자신의 이마 위로 쇠도끼가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도 관련이 깊은 것이다.
'먹다'와 '뽀개버리다'는 서로 조응하면서 욕망 충족에 봉사한다. 무리 지은 먹잇감을 단숨에 제압하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뽀개버리는' 것이다. "이준석 아무리 까불어봤자 3개월짜리"라는 말은 그대로 실현됐다. 경선을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당 대표라는 인식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신봉자' 윤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민낯이다.
윤 대통령은 이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 솔직히 귀찮다"는 말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숨기기 위한 겉치레 말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한 심정도 담고 있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탐나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은 큰 데 비해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막중한 과업'에 대한 욕구는 애초부터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대통령직을 먹은 뒤 느긋한 포만감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먹고 뽀개버리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더 심해졌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먹고 싶은 대상이 많고 뽀개버리고 싶은 상대도 많기 때문이다. 국회도 먹어야 하고, 공영방송도 먹어야 한다. 검찰, 경찰,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등 사냥견들이 총출동해 먹잇감 포획에 나섰다. 야당을 뽀개버려서 국회를 먹는 전략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노조 등도 계속 뽀개버리고 있다.
이런 국정운영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 돼버렸다. 그동안 각 분야에서 공들여 쌓은 성과들이 하나씩 허물어지고 국격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윤 대통령이 애용하는 거친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면 이렇다. "힘들게 만든 나라를 불과 1년여만에 들어먹고, 사회는 완전히 뽀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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