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서이초 사태'로 촉발된 교사 인권 문제를 두고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보호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교사들의 주요 요구안에 대해서는 "신속히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8일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지난 2일과 4일) 왜 그렇게 수십만의 청년 교사들이 거리로 나왔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교권하락이 한 10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것 같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대정부질문 교육 관련 질의답변 자리에서 이 장관은 지난 2일과 4일 현업 교사들이 서이초 사망교사의 49재를 추모하며 교사인권 보호를 요구하고 나선 일과 관련 "이번 일을 오히려 계기로 해서 교육 대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지난 달 24일 교육부가 교사들의 '9.4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해 참여자들에게 해임, 파면 등 징계를 조치하겠다고 밝힌 바에 대해서는 "(참여자에 대한) 겁박은 아니고 사실 법적으로는 그렇게 (징계하도록) 돼 있다"라며 "교사들이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현장에 나오셨다는 것을 전해 듣고 저희들이 징계 방안을 철회했다. 한마음 한 뜻으로 대응 방안을 빨리 신속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8월 당시 교사들이 서이초 사망교사의 49재 날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2학기 정상적인 학사운영을 저해하려는 것"이라 평하며 "법과 원칙에 의거해 학교 현장의 학사운영과 복무관리가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49재 추모집회에 현업교사 등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자 5일 "교육당국이 선생님들을 징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징계방침 철회입장을 밝혔다.
"노력하겠다, 신속히 대응"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이 장관은 교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4대 요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 보다 "최대한 신속하게 (마련) 하도록 하겠다"는 등 원칙론적 입장을 밝혔다.
먼저 이 장관은 시,도교육청에 전문 인력을 두고 '아동학대사례판단위원회'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결국은 경찰, 검찰에 의해 아동학대 수사 개시가 되는 상황을 이제 방지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에서 이미 경찰과 법무부에서도 수사 지침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라면서도 "판단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는 좀 이견들이 지금 국회 내에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사들이 요구하시는 그런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학교 민원상담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변이 나왔다. 이 장관은 "정부도 (교사들과) 똑같은 입장"이라며 "지금까지는 교사가 그냥 오롯이 개인적으로 민원을 상대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학교가 기관 차원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걸로 정상화되는 차원으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 장관은 "교장이 책임지고 민원을 처리하는 게 맞다"라며 "교장이 중심이 되어서 행정실장이나 공무직 등을 통해서 교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민원을 처리하고, 또 필요하면 단순 민원들은 AI나 챗봇 등을 통해서 행정적으로 훨씬 더 편리하게 하는 조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정부가 지금 조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장관은 교육공무직 노조 등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교육부 공무직 독박민원'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8월 28일 교육부가 '교육공무직 민원대응팀을 구성해 교내 1차 민원을 교육공무직 민원대응팀을 구성해으로 이관'하겠다는 취지의 민원대책을 내놓자 "교육공무직의 희생을 강요하는 민원대책"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수업방해 학생에 대한 분리조치' 요구에 대해서도 실제 현장에서의 분리조치 적용 여부보다는 "생활지도에 대한 법률이 (지난해) 연말에 적용이 됐고, 그에 맞춰 지금 '생활지도에 대한 고시'가 제정이 돼서 9월 1일자로 현장에 실시가 되고 있다"는 정도의 답변만을 남겼다.
국회가 지난해 12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 법령에 명시한 '학생 생활지도 권한'은 실제 교육계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온 사안이지만,전교조 등 교육계는 해당 법령 시행 이후에도 △생활지도의 내용, 범위 등의 구체적 제시 △생활지도 자율성 보장을 위한 포괄적 생활지도권한의 명시 등을 해당 개정안의 과제로 지적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이 같은 현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교사분들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건 절차가 아직까지 조금 모호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조금 더 구체화해달라는 것"이라며 "구체된 내용을 안내하는 해설서가 이번 9월 말까지, 저희들이 조속히 해설서를 만들어서 배포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이 장관은 교육활동 침해사건 피해 교원에 대한 지원 확장 요구에 대해서는 "몇 가지 대안이 논의되고 있고 거의 막바지 절충이 이뤄지는 걸로 알고 있다"라며 "정부도 최대한 지금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최대한 신속하게 입법을 부탁드린다"고만 답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계속되나?
이날 이 장관이 언급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은 시민사회 및 교육계 일각으로부터 "교사의 노동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아동·학생 인권을 후퇴시키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생을 물리적으로 제지·분리하거나 학생의 용모·복장, 휴대전화 등 학생의 사생활을 제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대안이 다수 포함된 반면 학교의 민원대응 시스템 등 '구조 전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침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달 28일 교육부에 전달한 공개서한에서 "(구체적 대안의 부재로) 교육 당국이 아닌 결국 교사 개인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라며 "아동·학생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교육 당국의 움직임은 매우 실망스럽다. 결국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아동·학생 인권의 후퇴가 아닌 교사 개인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구조의 문제를 개선해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이날 민원대응에 있어서의 교장, 학교 측 책임을 강조했지만, 한편으론 "(학생)인권조례 이후에 학교 교실에서 학생인권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보호되지 못했다"는 인식을 여전히 내보이기도 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권한 강화, 학생인권조례 폐지,개정 등 쟁점을 둘러싸고 국회 교육위에서 여야의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 장관의 이 같은 인식은 합의 의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일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여한 한 20년차 초등교사 A씨는 "교사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입법안을 제출했는데도 (교육부는) 엉뚱하게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더니, 이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걸 대책으로 내겠다고 한다"라며 "감히 교육자로서 말하건대 학생인권은 더욱 신장돼야 한다. 우리는 생기부 권력을 통한 영혼없는 존중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안전한 교육 '환경'을 원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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