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너무 우울하다. 뜬금없이 홍범도 장군 동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겠다는 정부 때문이다. 구체화되는 기후 위기와 세계적인 불경기 우려로 다들 미래를 걱정하느라 불안한 이 늦여름에, 뜬금없이 멀쩡히 가만히 서 있는 동상을 굳이 옮기겠다는 생각을 해내다니 그 상상력에 진짜 기함을 금치 못한다. 역시 상상력이란 한가함에서 나오는 것일까. 민주당은 이번 논란은 '친윤 매카시즘'이라고 평했는데, 매카시즘은 살아있는 인물들에 대한 것이라도 했지 이미 돌아가신 지 80여 년 된 인물에 대한 반공 몰이를 할 아이디어를 내다니 말이다. 정치와 사회를 분석해 설명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자처한 입장에서, 내 이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이건 분노와는 좀 다른 감정이다. 정부의 동상 이전 계획이 잘못된 것이야 두말할 필요 없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2023년의 정치를 얘기하기 위해 다시 홍범도 장군 평전을 뒤져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짜증이 난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정부를 향해 소리를 질러댄다 한들 결코 이 논쟁을 끝낼 수 없단 점이 나를 더 허망하게 한다. 그러니 구태여 목소리를 높여 분노할 기력도 나지 않는다. 저 꼴을 어떻게든 뜯어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저 지하철의 취객 난동을 보듯 그냥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로 사회가 늙어가다 못해 소멸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선진국형 저성장 사회에서 분배와 복지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할 상황에서 갑자기 나라의 탄생과 관련한 논쟁에 다같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럴듯하게 일가를 위한 중장년 주인공에게 갑자기 출생의 비밀과 관련한 사건을 내던져 버리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다. 비밀을 넘어서기 위해 달려온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출생의 비밀'은 우리 정치를 늘 다시 그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대한민국 출생의 가장 큰 비밀은 북한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외세와 전쟁에 의해서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전우택은 분단을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의 거대한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평가한다. 수천 년을 공동의 언어, 문화,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을뿐더러, 분단이 민족의 다수의 바람과는 전혀 무관하게 외부 세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분단은 공간적 분리일 뿐 아니라, 수많은 마을, 가족, 삶의 공간을 강제로 나뉜 것이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이성(理性) 공동체의 붕괴이기도 했다. (전우택, <통일은 치유다 : 분단과 통일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Journal of the Korean Neuropsychiatric Association, Vol.54(4) : 354, 2015)
그런데 해방 정국에서의 이 상실은 왜 지금의 한국정치까지 영향을 주고 있을까. 우리가 이 상실을 어떻게 슬퍼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프로이트는 상실에 대한 반응을 '애도'와 '우울증'으로 구분한다.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음을 인정하는 반응이다. 애도를 통해 대상을 향했던 에너지를 서서히 회수하면서 상실감을 치유하는 자연스러운 슬픔 반응이다. 이를 통해 온전한 자아를 회복하고 다른 대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우울증'은 사랑했던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반응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쏟았던 에너지가 회수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아는 계속 불완전한 상태로 남는다. 이렇게 애도 상태가 만성화되는 것을 우울증이라고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프로이트 전집11>>, 윤희기, 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2020, 전자책. <슬픔과 우울증>)
우리가 상실한 북한을 애도할 수 없다. 북한을 떠나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휴전선 이북의 한반도와 동포들은 다시 '우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올까?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애도할 수 없다.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공동체'로서 여전히 전쟁을 내장 가장 깊숙이 품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민주·진보세력은 북한을 배제하는 것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구한 반공·권위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북한과의 협력과 합일을 자신들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았다. 우리는 상실을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으로 여기며, '상실'이 아니라고 여겨오며 애도를 미뤘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상실은 이제 점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통일을 꿈꾸며 상실을 지연시키기는 점점 어렵다. 어쩌면 상실이 영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어난다. 협력을 강조하는 이들, 흡수를 주장하는 자들 모두 권력을 번갈아 가졌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통일은 점차 어려워지기만 한다. 오히려 북한은 점점 이해와 소통이 불가능한 타자가 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 대중들이 케이팝에 맞춰 숏폼 영상을 올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소통할 수도 공감할 수 없는 곳은 북한이다. 북녘의 동포와 한민족으로 살았던 기억을 가진 세대는 점차 사라지고,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가장 가까이 살지만 소통할 수 없는 외계인에 가깝다. 통일은 점차 결손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완성된 대한민국 정체성을 깨부수고 완전히 낯선 타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일이 점점 멀어진다는 인식은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공개한 '2023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으며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국민적 인식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한국 갤럽에 의뢰, 7월 4일부터 7월 27일, 전국 17개 시, 도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 1:1 면접조사, 표본오차는 ± 2.8%, 신뢰수준 95%) 33.3%의 응답자가 '통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였고, '30년 이내에는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응답자도 30.2%였다. 거의 세 명 중 두 명이 적어도 이번 세대에는 통일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연구소가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부정적인 대답이었다.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1985~2004년생만 따로 보면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이들 중 37.6%가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였고, 31.1%가 통일이 3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았다.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 세대가 낮아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응답자의 29.8%가 통일이 전혀 또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하고, 43.8%가 통일이 매우 또는 약간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MZ세대는 30.6%만 통일이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그 중 20대들은 28.6%만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통일의 정치적 동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나는 이런 '떠난 것도 떠나지 않은 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북한, '해결할 수 없는 상실'인 분단이 우리를 '분단 우울증'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으론 북한과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으로는 가장 먼 존재가 되어버렸다. 민주·진보세력은 잃어버린 북쪽을 통합해야만 진정한 조국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북한에 관대하다는 비판은 이어지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추진할 만한 현실적인 통일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민주·진보세력의 대북관은 깊은 무기력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역사와 이념 난동은 민주·진보세력의 무기력을 저격한다. 그것은 실용적인 정책 효과를 중시하는 중도층 공략에 효과가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민주·진보세력의 역린만은 확실히 건드린다. 윤 대통령의 주장대로 '반국가세력' 때문에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기후 위기나 인구소멸, AI의 역습 때문에 무너진다는 게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진보세력이 북한을 어정쩡하게 마음속에 깔고 앉아 어쩔 줄 모른다는 상황만은 고스란히 드러낸다.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식 '나라 만들기' 관점을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관점의 핵심은 나라의 본질은 이념이며,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나라 만들기'를 추진해 온 역사라는 점이다. 이승만이 여러 흠결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공산주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념이 나라의 본질이라고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할 때는 어떤 무엇으로도 통합할 수 없으며, 하나의 민족이라도 분단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이영훈,<<대한민국 역사:나라만들기 발자취 1945~1987>>,기파랑, 2013. 4쪽, 429~431쪽.)
여기서 통일은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로 편입할 수 있을 때에야 선택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의무나 귀결도 아니고, 우리가 온전한 나라로 서기 위한 전제 조건도 아니다. 이 관점에서는 '나라 만들기'가 1988년부터의 민주화시대를 맞이하며 일단락된 것이고, 북한은 온전히 나라의 외부이자 어렵게 만들어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위협요소일 뿐이다. 이 관점을 적용하면 홍범도는 '대한민국 나라만들기' 역사 이전의 존재이기에, 독립운동의 공이 있더라도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의미를 한정시켜야 한다. 반면 이승만이나 백선엽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지켰기에 다른 과오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자가 된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역사 서술의 관점으로선 허술한 점이 많다. 일단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키기 위해 단독 정부를 수립했는지, 백선엽이 일신양명이 아닌 이념 때문에 열심히 싸웠는지부터가 사실 불투명하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장점은 오히려 정치적인 것이다. 북한이 완벽히 멀어진 지금, 북한을 빼고도 대한민국을 온전히 결핍 없는 국가로서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모순을 무시할 수 있게 되고, 지도자는 수많은 과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뉴라이트는 역사학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욕망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뉴라이트 역사학자를 대표하는 이영훈은 '어지간한 내외의 도전에도 잘 넘어지지 않을 국가가 들어선 것'(이영훈, 위의 책, 438쪽)이라고 평가하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툭하면 반국가세력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 소리치며 뉴라이트 역사관을 극도로 분열적인 정치적 언어로 확대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정치관의 위력은 '분단 우울증'을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와 만날 때 발휘된다. 대중이 통일을 포기하며 북한이 없는 상태를 '완성된 대한민국'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뉴라이트는 개중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통일을 포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과거 저서(노재봉·김영호·서명구·유광호·조성환,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 북앤피플, 2018.)에서 '분리를 통한 통일전략'을 주장한다. 그는 '분리'란 남북이 서로 통일할 의사가 없는 만큼 따로 떨어져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김 장관의 취임 이후 통일부의 교류협력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대북 위기관리와 북한인권 관련 업무와 확대하기로 하였다.
반면 민주·진보세력이 김대중 정부 이후 26년여를 주장해 온 햇볕정책 류의 협력 강화 방안은 점차 대중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통일 정책이 대중적 설득력을 상실하고, 보수 세력이 사실상 통일 정책을 포기하려고 하면서 민주당 등 민주·진보세력만 통일에 집착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물론 '종전 선언 추진'을 핵심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정권 전반기에 상당히 큰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종전'을 지지하는 여론에는 두 가지 욕망이 섞여 있다. 민주·진보세력은 '종전 선언'을 통해 대립적 남북관계를 종식한 후, 긴밀한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한편 '종전'에는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 자체를 끝내고 싶은 욕망도 섞여 있다. 철저한 남이 되는 것이다. 부부싸움의 끝이 꼭 화목한 부부가 아니라 이혼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종전 선언이라는 한 실천방안 속에서 두 가지 욕망은 오월동주 했다. 김영호 장관의 주장처럼 남북이 '분리'된 각각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종전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양쪽 모두 한반도를 온전히 점령하겠다는 군사적 의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구적 2국가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가 어떤 방향으로든 종전선언에 대한 높은 지지가 모두 다 통일에 대한 염원이라는 착시를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윤석열 발 이념 논쟁은 시대, 정세, 정의 어디에도 걸맞지 않지만, 어쨌든 민주당에 일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분단 우울증을 극복할 것인가? 통일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여론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사실상 휴전선 이남을 영토로 하는 나라 만들기가 돌이킬 수 없게 완성되었음을 인정해야 할까? 자유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까지 인정하는 보수적인 설명방식이 아닌, 진보적인 설명을 만들어 나가야 할까?
쉽게 답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많은 치열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든 기존의 정책만을 고수하며 감나무 밑에서 연시 떨어지길 기다리는 건 방법이 아니다. 또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간다고 유권자를 책망하는 것은 더더욱 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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