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저리'는 우리말에만 있을 법한 모호한 경계의 언어다.
주류의 '언저리'는 주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하게 주류에 속하는 것도 아닌 그 경계 어디쯤을 말한다.
사전적으로도 '어떤 수준이나 정도의 위아래'로 설명되기도 하고 '둘레를 이룬 가나 그 가까이'로 풀이하면서 경계가 모호한 어느 지점을 짚어준다.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본격 영상화 스토리 모음집 언저리 프로젝트 Vol.02 무경계'를 최근에 발간했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언저리 프로젝트 Vol.01 SF'에 이은 두번째 작품집이다. Vol.01에서는 4편의 단편 SF소설과 2건의 영화·영상 종사자 인터뷰, 책의 진행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다섯편의 글은 '무경계'라는 키워드에 맞게 장르와 소재의 경계가 없고 영화감독, 문창과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희곡(戲曲)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작가 등이 한자리에 경계를 허물고 한자리에 모였다.
출판사는 "얼핏 보면 자유분방한 글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것 같지만 각 작가들이 만들어낸 사전 시각화를 위한 글에 문학적 장점을 더한 스토리텔링이 자유롭게 종횡무진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읽고 상상하는 재미를 강하게 전달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번째로 실린 한기중 감독의 '인피니티 루프'는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섞인 드라마로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주인공으로 어린 딸의 치료 백신을 찾는 과정에서 사교집단과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무의식세계의 '무한루프'에 빠져버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기중은 젊은시절 영화유학과 충무로를 경험하고 독립영화와 장편영화에 참여했다. 현재는 화물차 운전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작품을 집필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손정우의 '꽃밭에서'는 '헤이리 비거전(飛車傳)'이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짧은 소설 형태로 각색한 작품이다. 조선 중종시대 헤이리라는 곳에 날아든 '비거(飛車)'에서 나온 신비로운 인물인 일월공주와 헤이리의 수령인 정성우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회사원이면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은 이아영의 '검은봉지'는 미스터리 성장물 드라마로 2010년 서울에서 앞을 보지 못하지만 예민한 후각을 가진 여자가 향수 시향을 통해 사회의 민낯을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물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편소설과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민병우의 '그럴싸한 이야기'는 중고차 매장 직원과 왁싱숍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 등 4명의 개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해 SNS에 빠져사는 현대인들의 삶과 꿈의 이면을 그려낸 코미디물이다.
영상편집과 촬영으로 다양한 작업을 꾸준하게 이어온 김형준의 '대리기사 김여사'는 미스터리 액션 드라마로 한때는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부를 취하고 세상을 조롱하며 살았던 중년 여성이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삶이 뒤바뀌게 되고 숨겨졌던 비밀이 하나하나 풀리는 과정을 담았다.
작품 중에는 시나리오의 전 단계인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형식의 세태풍자 콩트도 있고 트리트먼트와 시나리오 간의 경계를 오가는 형태의 판타지물도 있다.
또 이와 대비되는 깨끔한 단편소설처럼 문학적 장점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는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연상 되는 SF 판타지물도 보인다.
출판사는 만약 독자가 영화감독이라면 이 다섯 편의 스토리 중 어떤 작품을 선택해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다.
제목: '본격 영상화 스토리 모음집 언저리 프로젝트 Vol.02 무경계'
출판: 시공사(2023.8.15)
저자: 한기중, 손정우, 이아영, 민병우, 김형준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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