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돈을 묶는 '긴축 재정' 기조로 방향을 잡은 상황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확장 재정' 기조를 선언하고 33조95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역대급 '세수 펑크' 속에서 돈을 묶는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고 돈을 풀어 경기 위축을 예방하겠다는 의도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전망하고, 중국발(發) 경제 리스크가 가시화되며, 수출 부진이 1년 가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기도의 '확장 재정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尹대통령 "재정 만능주의 배격"…경기위축, 세수펑크 속 역대급 '짠물 예산'
정부는 '역대급 짠돌이 재정'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며 내년도 총지출을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 지출 증가율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국채 발행을 통한 지출 확대는 미래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기업 활동과 민생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있는 돈도 묶어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기재부 자료 등을 분석한 데 따르면 올해 4월까지의 본예산 대비 총지출은 37.7%로 2014년 36.5% 이래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평균(39.8%)에 비해 2.1%포인트 낮은 수준인데 이는 바꿔 말하면 정부가 평균적으로 쓴 재정보다 14조원을 덜 쓴 셈이다. 장 의원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정부까지 쓰기로 한 재정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정부가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긴축 재정 정책의 배경도 석연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를 앞둔 '매표 예산'을 배격한다고 '긴축 재정'의 배경을 설명했지만 실상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제는 역대급 '세수 펑크'다. 올해 상반기까지 국세 수입은 178조5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시점보다 39조7000억 원(18.2%) 덜 걷혔다. 이 추이를 토대로 보면 올해 약 40조 원 이상 규모의 '세수 펑크'가 확실시된다. 경기가 어려워 세원이 줄어든 데다 정부가 부동산 세제 개편, 법인세 감세 등 각종 감세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2023년 상반기 법인세는 전년도 같은 시기 대비 –16.8조원, 소득세는 –11.6조원, 부가가치세는 –4.5조원을 기록했다.
'세수 펑크' → '긴축 재정' → '경기위축'의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 경제 전망이 좋지 않다.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0.9%로 1% 미만을 기록했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성장률을 1.4%로 예상했다. 나아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은 2.2%로 제시했다. 한국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도 심상치 않다. 중국발 부동산 및 금융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주축인 수출은 올해 들어 이달 중순까지 16%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1개월 째 극심한 수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김동연 "경제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상황을 인식 못하고 있다는 점"
경기 위축 상황에서 긴축 재정을 하는 건 '교과서'와 다른 방향이다.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정부와 정 반대로 '확장 재정'을 선언해 주목을 받고 있다. 경기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 25일 33조 9,536억 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경기도 역시 1조9000억 원의 세수 감소가 전망되고 있지만 사업 구조 조정과 도지사 및 간부들의 업무추진비 등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 추경안을 마련했다.
김 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기도는 이번 추경에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경기침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확장 추경'"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긴축 재정' 정책에 경기도가 손을 놓고 있을 경우 경기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걸 우려한 조치다.
김 지사는 "경제 운영에 있어 '경기침체기'에는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고, '경기상승기'에 재정을 축소해서 균형을 잡는 것이 기본"이라며 "경제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재정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앙정부는 '재정건전성'이라는 명목 아래 금년 추경을 편성하지 않았고, 내년 예산도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며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는 분명 가야 할 방향이지만 재정건정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필요할 때 돈을 쓰기 위해서이고, 지금은 써야 할 때다. 돈을 써야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우리 경제가 성장궤도에 오를 수 있다. 그래야 세수가 늘어나면서 재정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한국 경제의 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최근 한국은행은 금년도 경제성장률을 1.4%로 전망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같은 비상 상황을 제외하면, 한국경제에 1%대 경제성장률은 이제까지 없던 일이다. 금년 1분기부터는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일본에게 경제성장률을 역전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는 '재정 정책의 판'을 바꾸겠다"며 "이번 추경안을 준비하면서 거시경제 상황에 대응해 재정정책의 판을 바꾸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도민 여러분과 함께 하루속히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기도 경제의 기초체력과 회복탄력성을 키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