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국방부의 '외압'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군인권센터는 전 해병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국방부의 압박이 "사건 은폐·축소를 목적으로 한 집단린치"에 해당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군인권센터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과 제3자 진정을 제기한다"라며 국방부장관, 해병대사령관, 국방부검찰단장, 국방부조사본부장에 대한 인권위 진정 내용을 공개했다.
센터는 먼저 박 대령이 경상북도 경찰청에 이첩한 고 채 상병 관련 수사자료와 관련해 '이첩보류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실제 이첩된 수사자료를 즉시 회수한 국방부 검찰단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박 대령은 앞서 지난 2일 임성근 해병 제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명시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는데,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이 국방부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을 어겼다'면서 박 대령을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하고 경찰로부터 해당 자료를 회수했다.
이에 박 대령은 지난 9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국방부 장관 (수사)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이첩 시까지 저는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접, 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국방부장관이 이첩 대기명령을 실제로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는 중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애초 박 대령의 '범죄 인지 통보'(수사자료 이첩)는 법령에 따른 정당한 군 사법행위이고, 오히려 해당 행위에 대한 대기명령과 이후의 자료회수 행위야말로 위법적인 행위라는 게 김 국장의 지적이다.
실제로 대통령령인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범죄 의심 정황을 인지했을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또한 해당 대통령령과 군사법경찰관 직무수행 규칙 등 관련 법령은 이 같은 '범죄 인지 통보'와 관련해 지휘관이나 국방부장관의 승인 및 결재 등에 대한 의무조항을 두고 있지도 않다.
김 국장은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행령 규정상, 범죄정황을 인지한 군 경찰의 사건이첩 행위에는 '이첩중단' 지시를 포함한 어떤 개입도 이루어질 수 없다"라며 "국방부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이첩대기 명령'을 내렸다면, 이는 그 둘이 부당하게 직무에 개입했다는 증거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령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수사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한 일 또한 마찬가지다. 김 국장은 "법령에 따라 정당하게 이첩된 수사자료를, 이첩 주체인 해병대 수사단도 아닌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해 왔다. 이는 명백히 위법적인 상황"이라며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넘겼는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입해 사건자료를 회수해왔다고 생각해보라. 경찰청이 자료를 순순히 넘겨준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군사경찰은 국방부장관 등 지휘관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는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경찰이 직무를 수행할 때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김 국장은 "군대 조직이기 때문에 국방부장관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라며 "(이종섭 장관 등 지휘부는) 법령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는 일을 자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센터 측은 박 대령이 경찰 측에 넘긴 범죄인지통보에 대한 국방장관의 회수 명령에 인권위가 '즉시 철회' 권고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센터는 박 대령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의 집단항명수괴주 수사 또한 "항명의 원인이 되는 명령이 법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하여 법리적으로 죄가 성립하지 않아 그 자체로 부당한 권리침해에 해당한다"라며 인권위의 중단권고를 요청했다.
인권위 소속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지난 9일에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 수사단장 등에 대한 해병대의 보직해임 절차 진행과 집단항명죄, 직권남용죄 및 비밀누설죄 등에 대한 수사는 즉각 보류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인권위 성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박 대령은 지난 11일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하겠다'며 제3의 기관에서 공정하게 수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국방부는 현재 군인권보호관 성명발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 상병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배당, 재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성명보다 한 단계 높은, 국가인권위법 안에 있는 적극적 구제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법 48조가 명시하는 '긴급구제조치'는 특정 진정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 이전에 즉각적인 구제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날 센터는 박 대령에 대한 집단항명수괴죄 수사 중지, 법령준수위반 징계심의의 중지, 피진정인인 국방부검찰단장을 위시한 국방부검찰단을 집단항명수괴죄 수사에서 배제하는 등의 긴급구제조치를 인권위에 신청했다.
인권위는 앞서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군의 강제전역 조치, 공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군 수사단의 '역수사' 행위 등에 대해 긴급구제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임 소장은 이날 '군 내부에 박 대령에 대한 긴급 체포 내지는 구속영장 청구를 진행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병대 사령부는 박 대령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취재진을 두고 입장문을 발표한 일 △그 과정에서 사건 축소 및 외압 의혹을 폭로하며 한국방송(KBS) 생방송에 출연한 일 등과 관련해 징계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박 대령이 군인복무기본법 제16조를 어겨 '지휘관의 허락 없이 국방 및 군사에 관한 사항을 군인의 신분으로 군 외부에 발표하거나, 군을 대표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다.
김 국장은 이에 대해서도 "해당 법 16조는 제정 때부터 표현과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이 많았던 문제적 항목인데, 아니나 다를까 군은 이번 일과 같은 사안에 해당 법령을 활용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박 대령의 11일 행적은 형사피의자 당사자로서 입장과 소환불응 의사를 표시한 것일 뿐이다. 이 같은 입장발표까지 제한하는 것은 형사피의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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