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가 끝났습니다. 끓어오른 대지, 물 웅덩이, 물도 음식도 화장실도 변변치 않은 곳에 세계에서 불러 모은 청소년들을 몰아 넣었습니다. 역사는 어리석은 자들이 일관되게 어리석은 일을 벌인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만금입니다. 또 새만금이란 거대 욕망 아래 깔려 사라져버린 갯벌입니다.
20년 전 국토부(건교부)가 철도 민영화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때였습니다. 국토부는 적자, 비효율, 경영부실, 독점, 무사안일 등 한 번 들으면 중병이 걸린 상태라는 걸 부정할 수 없는 수사로 철도를 규정했습니다. 당시는 고속철도도 개통 전이라 한국철도가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초라한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저는 생존 위기에 내몰린 갯벌을 떠올리며 국토부의 민영화 추진을 비판하는 정책보고서에 "철도는 갯벌과도 같습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문서 파일을 열어 정보를 확인하니 딱 20년 전인 2003년 1월 20일 월요일에 최종 편집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의 제 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0년 전 글에는 갯벌 이야기를 하고 철도를 말했지만 지금은 철도 이야기 먼저 하겠습니다.
철도가 주는 사회적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도로교통의 대기오염 비용이 11조 4310억 원이 발생한데 비해 철도는 2865억 원으로 도로의 2.5%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객 1000명과 화물 1톤을 1키로미터 수송할 때 발생하는 환경비용도 도로는 8만5588원이 드는 데 반해 철도는 2만6164원에 불과합니다.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도 철도는 도로교통수단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정부의 '에너지 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는 승용차에 비해 18배, 버스에 비해 3.9배, 화물트럭에 비해 8.8배나 에너지 효율성이 높습니다. 국토 이용률 측면에서도 철도는 도로에 비해 훨씬 적은 면적으로 수송을 담당할 수 있기에 환경파괴나 오염을 최소화 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도로로 경부선 철도의 교통량을 수용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것입니다.
철도가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철도가 환경친화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환경문제는 인간다운 삶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철도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이윤은 철도가 발생시키는 적자를 가볍게 상쇄시키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윤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도가 적자투성이고 이런 부실기업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합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적자를 내고 있는 노선을 걷어내고 노약자에 대한 할인폭도 대폭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철도의 특징 가운데서 주목할 점은 철도가 공공성과 공익성이 매우 높은 교통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량성, 시간이 안정적일 수 있는 정시성, 통근․통학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일상성, 이중투자를 피하고 자원을 유효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자연독점성, 초기투자가 거대하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비용이 줄어든다는 비용체감성, 일정한 숙련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성, 안정성 확보의 필요성이 높다는 점을 특징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철도의 특성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하고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다 막히자 경쟁체제란 명목으로 SR을 출범시켜 고착시킨게 지난 20년간 진행된 국토부의 철도 정책이었습니다.
이제 갯벌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저녁노을은 우리들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서해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갯벌입니다. 물새들의 서식처이며 해양생물의 60%가 이곳에서 산란 또는 서식하며 어업 활동의 90%가 갯벌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갯벌의 뛰어난 오염정화 기능은 해양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만약 갯벌이 사라진다면 육지의 온갖 오염물질이 아무런 여과나 정화과정 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에는 인간들까지 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자원임에도 우리나라의 갯벌은 매립과 간척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산업단지나 농지조성을 위하여 70년대 이후 전체 갯벌의 약 40%가 훼손, 상실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매립이나 간척사업에도 나름대로의 필요와 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 한 켠에는 갯벌은 버려진 땅이며 쓸모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진흙덩어리로만 보이는 갯벌을 메워서 공장을 짓는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거대한 농토를 만들어 농작물을 생산한다면 또 얼마나 이익인가."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갯벌에서 이루어지는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갯벌은 어류의 산란장, 유생성육장, 서식지, 패류의 서식지, 물새 및 기타 야생동물의 서식지, 오염물질 여과, 토사제거, 산소생산, 영양 염류 순환, 화학물질 및 영양 염류 흡수, 수중생산력 향상, 미세 기후 조절 등 우리의 육상 및 해상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경제적 가치로 따져도 홍수조절, 해상재해방지, 해안침식 조절, 지하수 양의 조절 및 재공급, 목재 및 기타 천연자원 공급, 에너지원(탄층), 가축의 먹이, 어장 및 양식장 제공, 심미적 가치, 교육 및 과학조사, 문화적 자산, 고고학적 자산 등 인간이 일부러 만든다면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을 갯벌이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갯벌은 자연이 인류에게 준 선물입니다. 때문에 갯벌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갯벌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자나 개발업자들의 무자비한 욕망과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 갯벌을 메워버리는 반 생태적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새만금은 소위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 상관없이 개발되어왔습니다. 정치인들은 수 십 억년 지구가 생성시켜준 선물을 파괴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의 힘은 보수정권이고 민주당이 진보정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태와 환경에 발을 딛지 않은 정치세력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지 묻고 싶습니다. 민주당은 수십 년간 새만금 개발의 깃발을 높이 세운 정당이었습니다. 지구의 보존이 아니라 유권자들을 현혹해 당장 표를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극우로 경도하는 세력과 진보라는 포장지를 두른 우파 정치세력이 공생하며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민생은커녕 적절히 지역을 나눠 이권의 영원한 왕국을 차지할 뿐입니다.
이제 유권자들도 변해야 합니다. 지역이 개발된다고 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쌀이 남아도는 현실에서 갯벌을 파괴해서 만든 농지가 무슨 의미입니까? 갯벌 위에 세우는 공항은 또 어떻습니까? 토건 자본은 돈을 챙기겠지만 그 경제적 사회적 손실과 천문학적 자연적 손실은 모두 평범한 시민들과 후대 사람들이 짋어져야합니다.
철도와 갯벌은 그 소중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닮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파괴되고 훼손되는 세상의 모든 중요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위기에 빠진 지구의 현재를 볼 때 더 늦어서는 안됩니다. 위선의 정치를 넘고 탐욕의 경제를 벗어나야 합니다. 지구가 살아야 사람도 삽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