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권역 3도 5개 시군이 개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북 남원시의 산악열차(경남 하동군도 최근 산악열차 재추진을 시사했다), 전남 구례군의 골프장과 케이블카, 경남 산청군의 케이블카, 함양군의 케이블카와 함양-하동 간 도로 연결 등 각 지자체의 개발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서로 경쟁을 불사하며 폭주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지리산 고산지대 구상나무가 말라 죽고 홍수로 산자락 마을들이 물난리를 겪고 산불로 숲이 소멸하는 경험을 한 지리산은 치유와 휴식이 필요하건만 민심 대신 표심만 바라는 지자체와 개발이익에 목맨 세력이 들붙어 지리산을 파헤쳐 이익 볼 생각뿐 돌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빨리 보고 나가라' 개발, 지역경제 못 살려
지역경제 활성화로 포장된 지리산 개발사업들이 노리는 바는 단적으로 관광수익 확대이다. 관광수익을 키우자니 국립공원 등산로 개방을 요구하고, 찾는 이들이 더 편리하게 지리산을 오르도록 케이블카니 산악열차니 도로 확포장이니 하는 게 필요하고, 와서 돈을 쓰라고 골프장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사업들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까? 아니다. 관광객들이 지리산 권역 마을에 머물러야 그들이 쓰는 돈이 마을경제에 도움이 될 터인데 지금 개발사업들은 '더 빨리 지리산 경관을 보고 빠져나가도록 하는 사업'이거나 '사업자들만 돈 벌고 주민들은 들러리가 되는 사업'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업들이 반환경적이란 사실이다. 케이블카와 산악열차가 그렇고 도로 확포장과 골프장이 그렇다.
지리산으로 오가는 심야버스와 심야기차로 24시간이면 수도권에서 출발해 천왕봉, 노고단 등산이 끝나는 세상이다. 지리산을 종주하고도 시간이 남는 교통체계가 이미 있는데 지리산 권역 지자체들이 '아예 지리산을 더 빨리 보고 가라'며 케이블카니 산악열차니 벽소령도로 확포장이니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지리산 품에서 머물 시간은 짧아지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점점 더 개발사업의 단기이익을 여론몰이하는 집단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환경부가 주무부처이고 한국생태관광협회가 지원하는 '생태관광지역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지자체가 지역에서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환경부에 신청해 지정을 받으면 지역 브랜드로 인정을 하고 예산도 지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 주민의 지역 자연생태계 보호-방문객 증대-지역경제 활성화-지역 주민의 환경보호 의지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도의 목표다. 생태관광은 지역(마을)에 머물면서 인근 자연과 문화를 경험하고 마을에서 지역생활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체류형 생태관광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 안팎에서 살아가는 마을들이 생태관광지역이 못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리산국립공원 내에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주민들도, 3도 5개 시군 지자체들도 모두 관심이 없는 탓이다. 기왕에 있는 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서 그저 개발이다. 가장 어이없는 일이 함양군이 추진하는 벽소령도로 확포장 사업이다.
2022년 10월 3일 진병영 함양군수가 하동군을 찾아 하승철 하동군수와 함양-하동 간 지방도 1023호선 가운데 연결돼 있지 않은 벽소령 구간(함양군 마천면-하동군 대성리 23.8km)을 최소 12m급 도로로 확포장해 연결하는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상호협력사업으로 경남도와 중앙정부에 건의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동과 함양을 연결하면 남해안 시대가 열린다고 함양군은 선전하고 있다. 그럴 리가? 이 사업은 그저 지리산을 토막 내는 사업일 뿐이다. 소금길 복원이라는 역사에서 끌어온 '이현령비현령' 식 주장도 하는데 애초 말이 안 되는 게 소금길은 '지겟길'이다. 섬진강 포구에서 마천, 인월, 운봉, 함양으로 소금장수가 지게에 소금을 지고 가던 길이었다. 지금의 지리산 휴양림 안쪽 능선에 '소금쟁이능선'이 있다. 그런 능선길을 지켜야 '이야기'가 지켜진다. 그런 좁은 산길이라야 지금처럼 사람과 반달가슴곰, 야생생물들이 함께 자유로이 오가는 숲길로 지켜진다. 그런데 해봐야 폭이 2~3m도 안 되는 지금의 벽소령길(옛 소금길에 더해 군사작전을 위해 비포장도로를 낸 작전도로)을 12m급 포장도로로 만들자니, 역사를 매몰시키고 지리산 생태계를 훼손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옛길은 걷는 길로 지켜져야 한다. 지금처럼 사람과 반달곰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숲길로 남아야 한다.
벽소령 1023지방 도로 확포장은 주민들의 숙원사업도 아니고 그저 함양군의 선출직 군수가 내놓은 선거공약이고, 임기 중 업적사업으로 삼으려는 욕심이 불러낸 사업일 뿐이다. '지리산에 막힌 지자체의 만남'이니 '소금길 복원'이니 하는 건 그저 가져다 붙인 명분일 뿐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을 남북으로 갈라놓는 반생태적 시도에 불과하다.
함양군과 하동군이 벽소령길을 포장도로로 확포장해 1023지방도를 남북으로 연결하겠다는 발상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행정적 토대의 근저에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이하 개발조합)>이 있다. 이 개발조합은 지난 2008년 7개 지리산권역 시군이 설립한 지리산권 관광개발 추진단체다. 개발조합을 논의 기반으로 하여 2021년부터 '지리산권 6개 시군 특별지자체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개발조합의 주요 사업은 '지리산 인근 지자체 교통망을 확충하여 권역 내 관광 이동 확산'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지리산을 사통팔달로 뚫어놓으면 관광객들이 지리산을 점적으로 경관 소비하고 이동해버리지 과연 지리산 권역에 머물러 있을까? 대전략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벽소령도로 확포장사업이 딱 그렇다.
오삼이의 죽음이 알려주는 것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 55년 동안 경관 소비가 아닌 자연자원 보전의 방향으로 지켜져 왔다. 덕분에 지리산은 반달가슴곰 복원지가 될 수 있었다. 정부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적어도 복원 개체수 증식에 성공했다. 이제 늘어난 곰들의 서식처로 지리산은 좁다. 오삼이는 복원 과정에서 53번째로 태어난 국내 출생 반달가슴곰인데 지리산에 방사된 뒤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 가야산, 수도산, 민주지산 등 덕유산 권역에서 옮겨 다녔다. 올해는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까지 나다녔다. 지난 6월 13일 추적관리용 배터리 교체를 위해 발사한 마취총을 맞고도 도망친 오삼이는 마취약에 취해 이동 중에 계곡물에 쓰러져 죽었다. 오삼이는 왜 지리산을 벗어나 나다녔을까? 야생의 곰이 자유로이 이동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삼이의 지리산 탈주와 교통사고, 그리고 죽음에는 인간이 편의적으로 설정한 서식처의 한계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지리산에 방사된 곰이 80마리를 넘은 지 오래고 100마리를 넘길 날이 머지않다. 그런데 그만큼 지리산 서식지 환경은 좋아졌는가? 갈수록 지리산은 크고 작은 길들로 조각나고 마을 단위 개발지역이 넓어지고 있다. 곰은 늘리면서 서식처는 길과 시설로 쪼개고 훼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도로망으로 생태통로 능선이 다 절단되었다. 점점 지리산은 곰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기 힘든 곳이 되어 간다. 서식처 보호와 연결되지 않은 복원사업은 허망하다. 길을 멈춰 세워야 자연도 살고 사람도 산다. 막대한 재원을 들여 사람의 빠른 이동을 위한 포장도로를 만들어, 지리산을 동강 내고 지리산의 야생동물들에게 로드킬을 강요하는 일이 어떻게 지리산국립공원에서 해야 할 지자체 중요사업이 될 수 있겠는가?
주민을 생각한다면 지리산에 도로를 놓는 데 재원을 쓰기보다 지리산을 경험하기에 좋은 생태마을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 그래야 외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 것이고 그래야 마을이 살아날 것이다. 지리산의 야생생물들은 그 자체로 지리산 생태관광자원이다. 그들의 서식처가 안녕해야 지리산 사람들의 마을도 평안할 것이다. 지리산 야생생물 보호를 위해 탐방로 폐쇄 주문이 나오고, 성삼재 도로가 지리산에 끼친 반생태적 영향을 고려해 제거 후 숲길 복원이 논의되는 세상이다. 시대착오적인 벽소령길 확포장 사업은 벌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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