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통령 영부인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 일가가 소유한 땅 인근으로 노선 종점이 변경돼 특혜 논란이 일었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과 관련해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장관직과 정치생명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김 전 대표를 향한 야당의 의혹 공세를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원 장관은 6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가짜뉴스 대응 당정협의회' 뒤 기자들과 만나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검토 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된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며 "이 노선이 정말 필요하고 최종 노선이 있다며 다음 정부에서 하시라"고 밝혔다.
원 장관은 "이 정부에서는 김 여사가 선산을 옮기거나 처분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백지화한다"고 했다. 그 "민주당은 더 이상 추측과 정황만으로 찔끔찔끔 소설 쓰기로 의혹 부풀리기에 몰두하지 말고 자신 있으면 정식으로 장관인 저를 고발하라"며 "수사에 응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그 결과 제가 김 여사 땅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지했다면, 노선 결정 과정에 김선교 의원이 '양평에 나들목을 만들어 달라'고 상임위에서 말하고 '검토하겠다'고 한 것 이외에 더 구체적으로 노선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또는 권력층·의원·민간으로부터 연락·청탁·압력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사업 업무 관여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보고 지시한 일이 있다면,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원 장관은 "대신 수사 결과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근거가 없고 무고임이 밝혀지면 민주당 간판을 내리시라"며 "그 이후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계를 떠나거나 아니면 국민을 상대로 한 공개적 스피커 역할을 그만두시라"고 촉구했다.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백지화하면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것은 주민 아닌가'라는 질문에 원 장관은 "입장을 발표한 것뿐이고 추가 설명이 필요하면 하겠다"며 "주민 피해를 염려하는 집단은 이런 식으로 사태를 몰고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논의해서 결정했나'라는 질문에 원 장관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답했다.
정부·여당은 이 사안을 놓고 이날 국회에서 당정협의까지 열었다. 정책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한 대응으로 당정을 연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은 당정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노선 변경 과정에 대해 "양평군이 3개 대안 노선을 국토부에 건의해 해당 부처에서 종합 검토해 최적의 대안 노선을 정했다"며 "대안 노선은 당초 노선 대비 일 교통량 6000대가 증가하고 인근 도로 교통량 2100대를 더 흡수해 정체 해소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노선) 종점 인근 대통령 처가가 소유한 땅의 지가가 상승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안 종점부는 고속도로 진출 불가능 분기점, 즉 JCT(junction)에 불과하다. JCT 인근은 지가 상승에 별로 영향이 없고 오히려 소음이나 매연으로 많은 제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2년 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이 지난 5월 갑자기 양평군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됐고, 변경 노선의 종점 근처에 김 전 대표 일가의 땅이 있다는 것이다. 전날 JTBC 방송은 선산 등 기존에 알려진 김 전 대표 일가 토지 외에도 김 전 대표의 친오빠, 즉 윤 대통령의 처남이 대표로 있는 부동산회사 'ESI&D'가 보유한 토지도 변경 종점 예정지 인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당내에 강득구 의원을 단장으로 한 '고속도로 게이트 TF'를 구성해 관련 의혹을 조사하기로 하고, 감사원 감사와 국정조사 요구를 언급하는 등 전면 공세에 나서는 상황이었다. 강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강상면 현장도 직접 방문했다. 국토위 야당 간사인 최인호 의원은 이 자리에서 "예타를 통과한 종점 노선이 왜 바뀌었는지 많은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다"며 "어떤 과정을 거쳐 상식적이지 않고, 선례가 없는 게이트성 의혹이 제기됐는지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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