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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스플레인과 '차관 통치', 尹에 드리워진 MB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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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스플레인과 '차관 통치', 尹에 드리워진 MB 그림자

[이모저모] 대통령의 "내가 (수사)해봐서 아는데"

△MB는 정치 입문 전 다양한 경험을 섭렵했다. 그래서일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그의 입버릇이다시피 했다. "기업을 운영해봐서 아는데", "창업했던 소상공인 선배라 아는데"는 그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니 그나마 정당한(?) 편에 속했고, 군사안보 사안인 천안함 사건 직후에도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2011년 위키리크스발 주한 미대사관 전문에 나온 "내가 후세인을 만나봐서 아는데 미국은 이라크를 잘 모르고 있다"는 발언은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유력하다는 이동관 특보 등 윤석열 정부 들어 MB 정부 인사들이 다시 득세하는 가운데, MB의 입버릇 '해봐서 아는데'도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 문항' 관련 지시가 논란을 빚자,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지난 19일 당정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저도 전문가이지만 (윤 대통령은) 입시에 대해 수사를 여러 번 하시면서 상당히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연구해서 저도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여당 정책위의장은 "대통령께서는 검찰 초년생 때부터 수십년 검사 생활을 하시며 입시부정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보셨고, 특히 조국 일가 대입부정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도 했다.

△MB가 그나마 기업을 창업·운영해보고, 배를 만들어보고, 후세인을 만나본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여러 분야를 '수사해 봐서' 안다고 한다. 이런 류의 발언이 대통령을 치켜세우기 위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선전만인 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 본인 스스로가 '수사해봐서 안다'는 식의 발언을 과거 수 차례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검찰 업무를 모르시나본데, 기본적으로 경제 관련 일, 공정거래, 금융, 경제, 노동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경제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수 없다." (2021년 10월 22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당시 유승민 예비후보와의 1대1 토론에서)

"원래 한 분야에서 정점까지 올라가면 어떤 일을 맡더라도 일머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전문가를 모셔다가 일하면 되는지 다 통하는 것이 있다." (2021년 10월 15일, 홍준표 예비후보와의 토론에서)

"제가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26년 검사 생활을 하며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각도에서든." (2021년 9월 16일, 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검사로서 형사법 집행은 형법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2021년 7월 29일, 연합뉴스TV 인터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이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금융감독원장(이복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조상준·김남우), 국무총리 비서실장(박성근) 등 나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도 해당 분야를 '수사해 봐서 잘 아는' 검사 출신이 기용됐을 것이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MB의 어법은 이렇게 '우리(검사 출신)들이 수사해봐서 안다'로 변주되고 있다.

△MB의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대통령 개인의 경험으로 재단할 경우 국정운영의 시야가 협소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을 과거 보수·진보진영을 막론하고 받았었다. 대통령이 최고의 전문가이고 매사를 '잘 아는'데 전문가를 중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의 장관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지 않고 대통령이 만기친람을 할 위험성과도 맞닿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부' 논란, 박근혜 정부의 '실세 차관', 이명박 정부의 '왕(王)차관' 논란 모두 본질은 같다. 이런 형태의 통치에서는 장관이 아니라 차관이 부처의 주인이 된다. 차관이 장관을 건너뛰고 직접 대통령실(청와대) 비서관들과 소통하며 실무를 주도하면 장관은 허수아비가 된다. 최근의 '킬러 문항' 논란 국면에서 대통령 결사보위에 나서고 있는 이주호 부총리가 바로 MB 정부 당시 박영준 전 차관과 함께 대표적 '실세 차관'으로 꼽혔던 인물이라는 것은 단지 묘한 우연일 뿐일까.

△이르면 6월말 발표될 정부 장·차관 인사에서, 대통령실은 장관 교체는 필요최소한에 그치는 대신 차관을 대폭 물갈이하고 특히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을 부처 차관 자리에 다수 기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장 야당에서는 "대통령실 측근 그룹을 대거 부처 차관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실세 차관, 허세 장관'의 왜곡된 부처 운영 구조를 만들 우려가 크다"(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8일 최고위 모두발언)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정부 당시 장관에게 부처 국과장·산하기관 인사권조차 보장해 주지 않아 '만기친람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이 이같은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이 할 일, 총리가 할 일, 장관이 할 일을 딱딱 구분을 짓고, 대통령은 대통령이 해야 될 일에 대해서만 분권형으로 일을 해야 된다.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을 모시고 민관합동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서 이 분들과 대통령이 국정 아젠다를 설정하고 관리하고 점검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했던 말이다. '내가 전문가'라는 자신감, '검사도 수사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개인적 소신보다 "제가 집권하면 분야별 최고 전문가를 뽑아 실력있는 정부를 만들겠다"(2021년 9월)라고 했던 2년 전의 초심을 윤 대통령이 떠올려 주기를 기대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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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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