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시급 1만2210원을 제시했다. 현행 대비 26.9% 인상한 안이다. 이를 월급(주 40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255만1890원이 된다.
22일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세종시 고용노동부 1층 중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안을 발표했다.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 감소
노동계는 "작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초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급등해 (노동자는) 물가보다 낮은 임금인상으로 인해 실질임금이 삭감됐다"며 "특히 물가 폭등으로 필수 지출 품목(식료품, 주거, 교통)에 대한 최저임금노동자의 생계비 부담이 커져 2024년 적용 최저임금은 그 어느 때보다 획기적으로 인상"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그 근거로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월 노동자 실질임금이 저하됐다"며 "물가 폭등 상황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물가상승률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인상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관련해 노동계는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들어 "소득 1분위 가구(최하위 20%)는 주거·수도·광열(23.1%), 식료품·비주류음료(19.0%), 보건(13.9%) 순으로 지출 비중이 크지만, 소득 5분위 가구(최상위 20%)는 교통(16.5%), 음식‧숙박(13.4%), 교육(11.4%) 순으로 지출이 컸다"고 밝혔다. 저소득층일수록 필수품 소비 비중이 커 이를 줄이기 어렵고, 그만큼 현 물가 상황에서 생활이 더 궁핍해졌다는 뜻이다.
노동계는 아울러 "앞으로 이렇데 할 경제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몇 년간은 저성장 고물가 기조가 지속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며 "해외 주요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그 해결책으로 소비 활성화, 임금인상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독일은 최저임금을 약 25% 인상했다. 시간당 1만6000원 선이다. 호주는 올해 7월부터 5.75%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21.38호주달러가 22.61호주달러로 인상된다. 이는 2006년 이후 최대 인상률이다.
영국은 올해 4월 1일부터 국가 생활임금을 시간당 10.42파운드(약 1만5930원)로 끌어올렸다. 연령구간별 국가 최저임금은 대부분 전년 대비 9.7%가량 인상했다고 노동계는 설명했다.
미국은 뉴욕주가 최저임금을 13.20달러에서 14.20달러(약 1만8400원)로, 캘리포니아는 25인 이하 직장은 14.50 달러, 26인 이상 직장은 15.50달러(약 2만 원)로 인상하는 등 여러 주가 최저임금을 끌어올렸다.
적정생계비 만족하려면 250만 원 이상 필요
노동계는 구체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내수소비가 활성화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의 근거를 제시했다.
물가 폭등으로 인한 실질임금 저하로 인해 현 경제위기 상황을 뚫을 묘책이 없는 상황이다. 수출이 어려워진 가운데 경제를 떠받쳐야 할 내수소비가 실질임금 저하로 인해 좀처럼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출을 줄이기로 한 마당이어서 지금으로서는 현 침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
노동계는 "소비 증가→생산성 증대→국가경제 발전이라는 선순환구조를 이제는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경기 침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를 고려하더라도 최저임금을 월 250만 원 선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노동계는 전했다. 관련해 지난 7일 노동계는 한국고용정보원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적정생계비를 만족하는 가구 규모별 최저임금 수준은 월 255만2000원"이라고 밝혔다.
경기 침체 속 점차 악화하는 소득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도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노동계는 강조했다.
관련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1분위의 소득은 전년 동분기 대비 3.2% 증가했지만 5분위는 6.0% 증가했다. 소득 최상위 그룹의 소득 인상률이 최하위 그룹의 두 배에 가까웠다.
특히 노동소득의 경우 1분위는 전년 동분기 대비 감소(-1.5%)한 반면, 소득 5분위는 대폭 상승(11.7%)해 대조를 이뤘다.
자영업자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최저임금 인상 요구안이 나올 때마다 사용자 측이 동결의 근거로 제시하는 주요인은 영세소상공인이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별개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영세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이 겪는 어려움은 대기업·프랜차이즈 갑질과 건물주 갑질, 그리고 정부와 국회의 외면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며 "통계청의 2021년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도 경영 애로 사항으로 경쟁 심화(42.6%), 원재료비(39.6%), 상권쇠퇴(32%), 방역 조치(15.7%), 임차료(13.5%) 순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이를 외면해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고 노동계는 지적했다. 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가가 손을 놓아 노동계와 소상공인이 을과 을의 싸움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영세소상공인의 경영 애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을 근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 수수료율이 20%를 넘는 현 상황을 규제하고 일방적인 해지 및 중단 등의 부당 거래를 막고,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해야 한다고 노동계는 밝혔다.
그와 별개로 노동계는 정부가 영세소상공인의 임금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그간 정부가 해 온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사업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가맹 거래 등을 규제하고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노동계는 강조했다.
한편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중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고용노동부가 직권 해촉하기로 한 가운데, 노동계는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진압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지난 2일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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