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의 내용을 두고 한국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바로 "양 정상은 각국의 수출 통제 규정과 지적재산권을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 추가의정서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민간 원자력 협력에 참여하기로 약속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우라늄 농축 권한을 주장하며 IAEA 추가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와는 원자력협정 체결을 불허해, 사실상 한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을 금지했다는 해석이다.
또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미 원자력발전회사 간에 소송을 염두에 둔 내용으로 보인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자사의 설계기술에 기반한 APR-1400의 제3국 수출을 제한해 달라는 소를 제기한 바 있다. 웨스팅하우스 사장은 회담 당일 "폴란드에 한국원전이 절대로 건설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며 한국이 미국법과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에너지전환포럼'은 논평을 내고 공허한 한미 원전협력 홍보를 중단하고 사양길에 접어든 세계 원전시장에서 무리한 원전 수출 업적 추구로 행정과 공기업의 자원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지적재산권 존중, IAEA 추가의정서 준수"는 한국의 원전 수출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는 것이다. 결국 한국정부는 이번 방미 외교에서 북한의 핵 확장 억제를 위한 협력 외에 한국의 원전 수출에 미국의 협력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인 원전 수출을 미국으로부터 강력히 견제만 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전밀집 지역에 또 원전?
이런 상황에 지난 5월 4일 울진군은 GS에너지와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 산단 육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알렸다.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내 미국 기업 뉴스케일파워의 소형모듈원전(SMR) 도입 타당성 검토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전기 및 열 공급 △협력기업의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참여 등이 협약 내용이다. 안 그래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원전 신한울 3, 4호기까지 더해지면 총 10기로 세계 최대 원전밀집단지가 될 울진에 SMR까지 짓는 것에 대한 필요성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SMR이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에는 규제체계도 없을뿐더러 안전성과 상업성 모두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뉴스케일이 그동안 '잦은 설계 변경과 전력 구매 약정자가 부족해 상용화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이다. 에너지전환포럼 석광훈 전문위원은 논평에서 "뉴스케일이 경제성이 부족해 단 1기의 실험용 원자로조차 제작하지 못한 채 35MW(메가와트)에서 77MW까지 용량을 늘리는 설계 변경만 반복해왔다"고 꼬집었다. 석 위원은 그럼에도 "여전히 전력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못 갖춰 이후에도 추가적인 용량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그동안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원전의 용량을 늘려왔는데, SMR 역시 규모의 경제학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업체들조차 SMR을 인구가 작은 농촌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틈새시장을 노려왔는데, 전력구매 약정자들을 확보하기 어려워 외면받고 있다. 석 위원은 "미국 SMR들이 사실은 러시아에 핵연료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며, 국내에도 핵연료를 농축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이미 원전이 국내에서도 최대로 밀집한 지역인 울진에 소규모 분산형 에너지를 표방한 SMR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대규모 송전선로 확보가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다. 지금도 동해안 지역은 석탄발전소, 원전이 많이 몰려있어 수도권 등으로 전력을 보내야 하지만 송전망에 여유가 없는 상태다. 강릉과 삼척에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는 물론 울진 신한울 2, 3, 4호기 등의 전력이 더해지면 송전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현재 추진 중인 울진-신가평 500kV HVDC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강원과 경기 지역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울진에 SMR을 더 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산업단지가 필요하면 현재 울진원전 전기를 공급해도 충분하다.
RE100마저 원전으로 대체?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원전 확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세계적 기업들은 이미 RE100(기업의 전력 사용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을 선언하고 동참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국내에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이런 추세와 반대로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최근 원자력과 수소연료전지 등을 포함하는 CF100(무탄소에너지 100% 사용)을 표준화하기 위한 포럼을 출범하고 기업들을 참여시켰다.
이창양 산자부 장관은 "RE100은 의미 있는 캠페인이지만 한국 여건상 기업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무탄소 에너지 개념을 활용한 포괄적 접근을 통해 현실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부터 세계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원자력 살리기에만 앞장서는 모양새다. 국내 대기업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러한 논리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CF100이 RE100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목표마저 대폭 줄인 상태다. 누가 봐도 국내에서 RE100을 이행하기 어려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원전까지 포함한 국내용 인증제도를 만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써도 RE100 달성이 쉽지 않은데, 이마저도 정부가 원전 확대로 대체하는 것은 잘못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게을리하면 결국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원자력 아니라 재생에너지 최강국으로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최강국을 기조로 무리한 원전 확대를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와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기존의 대형원전이든 소형원전이든 아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핵폐기물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정부는 기존 원전 부지 내에 고준위핵폐기물 건식 저장시설을 지어 일단 보관하겠다는 정책을 마련했으나 지역의 반발이 크다. 고준위핵폐기장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 시설들이 사실상 영구처분장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한국 정부는 다시 위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오염수 해양 투기마저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있지 못하다. 태평양은 물론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너무나 조심스럽게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오염수 해양투기로 이익을 보는 것은 없고, 피해만 우려됨에도 말이다. 원전 확대에 자칫 걸림돌로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이다.
SMR 역시 미래의 먹거리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실험장이 될 우려가 크다. 울진 지역에 전력 공급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발전소를 더 지을 이유도 없다. 정말 필요하다면 안전하다면 왜 서울 같은 대도시에 짓지 않고 울진을 장소로 택하는가. 결국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실효성도 타당성도 없는 SMR 연구개발 등에 예산과 인력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형 사고의 위험도, 해결할 수 없는 핵폐기물의 위험도 없는 대안이 있다. 바로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는 연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 빈국에서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정부는 무리하게 원전 확대에 올인할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그 길만이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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