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편향된 외교가 이제는 '편가르기' 타령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국정운영의 다양한 분야 중 가장 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할 외교 영역에서 윤석열 정부가 날이 갈수록 극단적인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데, 문제는 같은 편인 미국과 일본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9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립외교원, 통일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연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외교안보통일분야 평가와 과제' 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누가 우리의 생존과 안보를 위협하는 적인지, 그 적에 대항해 우리 편에 서줄 나라는 어느 나라인지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 실장의 이 발언은 전날인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지만, 이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강경한 반응을 내놓은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대응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나서서 소위 '니편, 내편'을 가르는 규정을 짓는 것이 현재 국제 정세에서 국익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조 실장이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우리편'에 속하는 미국과 일본의 최근 행태만 보더라도 한국만 혼자 '편가르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하루가 멀다하고 중국과 으르렁거리고 있는 미국만 보더라도 중국과 대화 및 접촉은 지속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국무부와 중국 외교부의 발표를 종합하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세라 베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은 전날인 5일 베이징에서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만났다.
이어 이날 <블룸버그> 통신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몇 주 안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양측 모두 "밝힐 일정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방문 여부 및 시기에 대해 조율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경제적 영역으로 보면 양국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수준이다. 양국의 교역규모는 지난해 691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같은 기간보다 16.2% 증가한 3647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에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개최로 자신감을 얻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이러한 입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재직할 때부터 이어져 왔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이 새로운 제안은 아니며, 동북아 내에서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 한국과 함께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조와 경제적 제재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만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핵을 비롯한 여러 사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하지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부문에 있어서는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부르짖고 있는 '공조' 대상인 미국과 일본은 이처럼 3국 공조가 필요할 때는 공조를 하고, 국익을 위해 필요할 때는 중국이나 북한 등과 접촉하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태평양을 두고 서로를 죽고 죽이던 적국에서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동맹이 된 미국과 일본처럼,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특성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하겠다며 미국, 일본만을 쳐다보더니 급기야 '편'까지 가르면서 홀로 '가치외교'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까지 나서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활로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동안 대중 관계를 악화시킨 윤석열 정부가 받아든 성적표는 '무역수지 적자'였다.
물론 국익을 경제적 수치만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결과는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미국과 일본만을 바라보는 것이 국익을 위한 최선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치임은 분명하다.
한 국가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그를 지향하는 것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을 다른 국가와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편을 가를 경우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인류는 이미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 번의 냉전을 통해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것이 어떠한 비극을 가져왔는지 충분히 배웠다.
심지어 한국은 이 열전과 냉전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이 갈등이 끝난 이후 진영을 넘어서는 '세계화'를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한 한국이 스스로 그 이득을 내팽개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됐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한 것인지, 윤석열 정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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