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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칠월, 광주의 비극 보도연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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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칠월, 광주의 비극 보도연맹 사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전남 광주 지역 민간인 학살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그해 칠월, 광주의 비극 보도연맹 사건

-광산구 암탉골을 중심으로

해방은 되었으나 그해 칠월까지 광복은 오지 않았다

보도연맹원들은 유월 농번기 모심기에 동원되고

한숨 돌리는 그해 칠월, 한국전쟁이 터진 후

소집령을 받는다 전쟁에 대한 소식 잘 알지 못하고

일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광산구 삼도 지서로 모였다

지서에 모인 이들은 예전에 없던 일이지만

갑, 을, 병으로 나눠 호명된 후 노끈을 꼬는 일을 했다

나중에 그 끈이 자신의 손을 묶어 죽음으로 이끌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밤새 대마 껍질로 노끈을 꼬았다

자기 손으로 만든 노끈에 묶여 각 지서에서 묶여온 이들이

군용트럭에 실려 광산구 치평동 속칭 암탉골*에 도착한다

암탉골 앞에 세워진 이들에게 산 위에 설치된 기관총으로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난사를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

툭툭 쓰러지고 널브러진 살점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찢긴 채로 서로 엉킨 사람들 피에 물든 땅, 비명들이여!

그해 칠월, 각 방면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들 10여 일간

줄줄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흙더미를 덮어 매장되었다

북한군들이 점차 남하하자 총살을 하지 못한 연맹원들은

생매장까지 되었다 이런 참상은 인민군이 진주하고 난 후

유가족이 발굴하기 시작하니 산 전체가 시체덩어리었다

부패하여 살점이 냇물에 씻겨내려가고 냄새가 지독했다

그때 암탉골에서 발굴된 시체가 모두 499구였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이러한 행위를 한 경찰이나 가족들에게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보복행위를 하니 아 슬프구나 동족 간에

그리고 이웃 간에 상잔의 아픔을 서로 안기는 것이었다

그해 칠월, 광주에서는 인민군이 광주에 진격한다는 소식을

접하여 우익의 테러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7월 5일부터 20일 사이에 광주지역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모두 죽이라'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광주에서는 5사단 20연대 헌병대와 광주경찰서 사찰계가

보도연맹원들을 광주 경찰서, 상무관, 형무소 등으로 소집

한 곳당 대략 400~500여 명이 굴비 엮듯이 묶여 끌려가

대촌 방면, 비아 방면, 증심사계곡에서 집단으로 사살되었다

그해 칠월, 동명동에 위치한 광주 형무소에 수용 중이던 재소자와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 검속되어 구금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광산군 비아면 소재 산동교 인근 야산 등지에서 희생당했다

북구 양산동 산 99-1번지 장고봉 골짜기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이 학살된 곳 북구 장등동 산 284-1 도동고개 원터골,

북구 동림동 광주시 장애인 종합복지관 부근(운암산),

남구 양과동 776번지 옥골재, 동구 용산동 몰몽재도 학살 장소다

원통하게 죽은 수천 명***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배롱나무꽃 하나둘 피어나던 1950년 그해 칠월의 광주

피에 붉게 물든 고개, 골짜기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겨울 꿈에 시든 산하山河를 하루아침에

붉은 피의 음악으로 깨우는 진달래 피는 사월

해마다 참혹했던 그해 칠월을 되새겨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평화란 없다

하얀 찔레꽃과 붉은 장미가 어우러져 살 날은 언제인가

전쟁과 똥, 역사는 하나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학살 장소 어느 곳에도 민간인 학살 원혼비 표식 하나 없었다

* : 암탉골, 광주시 광산구 도덕동 산 63-1, 당시 산사태로 큰 골이 깊이 파여 있던 곳이다.

** : 안종철. 해방공간의 정치사회운동,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 2016. p 245~250. 이들 시신의 대부분은 가족들이 이빨, 허리끈 또는 신체상의 특징을 보고 찾아갔으나 50여 구는 끝내 가족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 :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광주형무소에 수감되 있던 사상범들과 이승만 정부가 조직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수천 명이 광주 일대 6곳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 : 함석헌 선생의 말씀 중에서

▲ 삼도 평동 주민 오효열 님이 암탉골의 옛 지형을 설명하고 있다. 좌측부터 함께 동행한 채희윤 소설가, 김완 시인, 오효열 님.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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