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출발하여 100억대의 자산가가 된 70대 아버지를 둔 40대 중년 한분이 찾아오셨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건설업과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세 명의 자녀에게 강남, 용산 등 주요 지역의 투자가치 있는 아파트를 한 채씩 사주었다고 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는 역세권의 주요 주택지에 토지를 사서 다세대주택을 올리는 방법으로 임대주택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20~30개호 다세대주택이 있는 건물 몇 개 동을 소유하는 임대주택사업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부동산 투자는 잘 하였는지 몰라도 투자 과정에서 가족의 의견을 묻고, 대화하는 일에는 매우 서툴렀던 모양이다. 30대, 40대 중년의 자녀에게 아파트를 사주면서도 투자 내용과 투자 여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였고, 그 대가로 자신에 대한 복종과 효도를 강요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의 부동산 투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아버지 덕분에 수십억 대 아파트를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취득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독불장군 아버지가 마음대로 결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주택과 부동산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으로서 알아야 할 부동산, 경제 상식이 없이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산에 애착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최근 금리 상승, 전셋값 하락으로 인해 아버지가 보유한 주택에 들어올 신규 전세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법 위반 사례도 적발됐다. 신축한 다세대주택은 주차장 규제를 최소화하고, 용적률과 층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건물별로 몇 개 호수를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고, 실제로는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위반건축물로 등재됐단다.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그간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도 다 한다는 이유로 편법과 불법을 뒤섞어 수익을 극대화했다. 부동산을 늘려갈 때만 해도 아버지는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이 하락 국면에 들자 일부 주택에서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내 자금 경색이 왔다. 계약 만료된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고, 위반건축물로 인한 이행강제금까지 부담하게 됐으니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부동산이나 투자에 관심이 없었던 40대 중년의 자녀는 이렇게 골치 아프고 위험한 투자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으나, 그 집은 명목상 자신의 명의로 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자녀는 이 상황에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체결한 복잡한 증여, 매매계약서와 공정증서, 임대사업자등록증 등을 들고 와서는 해결 방법을 물었다. 자신의 다른 재산을 처분하거나 새로운 대출을 받아서 임차인 채권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40대 자녀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한 원망을 쏟아놓고는 갖고 있는 아파트를 매각하여 채무를 해결해야겠다며 돌아갔다. 상담자 가족의 자산 100억 원 중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부동산투자와 소비심리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인 1970~8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노년층 중에 부동산으로 자산을 축적한 자산가가 많다. 이 시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이들이 수도권에 몰렸다. 급격히 팽창한 수도권은 도시화로 인하여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에 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이때 부동산 투기도 기승을 부렸다. 당시는 국민소득도 함께 증가하였으므로 좋은 입지의 주택 갈아타기 등을 통하여 자산을 형성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이 시대를 몸소 체험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대를 살아오며 몸소 체득하고, 통용되었던 방법으로 자산을 축적해 부를 대물림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투자에 있어서 자신의 탁월함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이 몹시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자녀에 대한 인정욕구 결핍이 그의 욕망을 멈추지 못하고, 더 많은 투자와 재투자를 유발하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족과 자녀들을 위한다는 신념에 벌인 일이 가족 전체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생겼으니 아마도 아버지와 가족의 사이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자녀들 자신이 결정한 일도 아닌데 그 책임은 직접 부담할 처지에 놓이게 됐으니, 자녀들의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두터워질 리 없다.
멈출 수 없는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투자 욕구, 과시 욕망은 소비 심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투자란 미래에 더 큰 구매력을 얻기 위해 현재의 구매력 일부를 포기하는 행위다. 통상 예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실물, 금융자산을 구입하여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소비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유형, 무형의 재화를 소모하는 것이다. 돈, 상품, 서비스, 시간, 노력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애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투자와 소비는 반대의 의미로 통용되지만, 현재의 소득(구매력)이 미래로 이연되거나 소멸한다는 점에서 둘은 유사하다.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행위를 위해서는 현재의 소득뿐만 아니라 대출을 통한 미래의 소득까지 당겨야 한다. 그런데 이연된 미래의 소득은 불확실성이 크다.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투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조절할 수 없고, 늘 변동한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에 자산을 축적한 노인 세대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경험한 부동산 불패 신화를 신념이자 종교로 신봉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시기에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과 부딪히고 소통하면서 의견을 수렴해 가고 이에 합의하는, 신뢰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산의 크기를 자신과 남을 비교할 기준으로 삼아, 자산의 크기가 곧 자신의 권위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결국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오직 돈으로 증명하려 하니, 경제적 곤경에 처한 이후에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해 홀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EBS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 편을 보면, 과도한 소비는 불안과 소외감, 슬픈 감정 등으로부터 유발한다고 한다. 과잉 투자(투기)심리도 불안과 소외감, 슬픔 등에 따른 보상 욕구 등으로부터 유발한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에 불었던 부동산 투기 광풍의 실체는 더 큰 돈을 벌고 싶은 욕망, 지금이라도 당장 사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이 투자대열에서 이탈하면 영원히 낙오할 것만 같은 소외감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도 소비심리와 유사하다. 상담자의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간 소통과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부동산 자산을 투자(투기, 소비)하였고, 부동산 자산을 늘려가는 투자(투기)행위를 통하여 소외감과 불안감을 해소해 왔다.
자산기득권의 지대추구 강화와 부동산 불패의 가스라이팅
지금은 철거되어 재건축이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32평 재건축아파트의 2022년 실거래 가격 최고가는 59억 원이며, 2023년 최고가는 53억 원이다. 이 아파트 32평형의 1971년 사전 분양가는 500~600만 원이다. 1987년 매매가격은 7000만 원 정도였다. 이 아파트 조합원의 평균연령은 70대라고 한다. 강남권 주요 노후 재건축단지의 소유자(조합원) 연령대 또한 대체로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주거 형태의 중심이 70년대 이후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급속히 변화했다. 특히 이 시기 서울 강남에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졌다. 그 결과 경제성장의 과실이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응집됐다. 지금 강남권 아파트의 소유자들은 이 같은 개발을 통하여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렸고 자산 증가를 경험했다. 이는 부동산의 위치 선점을 통한 지대추구행위라 할 수 있다.
결국 경험적으로 그간 한국은 극단적인 지대추구가 합법적으로 허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대추구를 동경하고,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유지해 왔다. 정치권 또한 앞다투어 사람들의 욕망에 충실한 정책 만들기에 골몰했다. 그 결과가 재건축 규제 완화, 1주택자 양도세 감면 확대, 종합부동산세 및 재산세 감면 등 주택투기로 올릴 소득의 크기를 더 키우는 제도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에서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지속되는 원리는 기존 토지소유자들의 위치 독점에 따른 지대를 기반으로 부동산 투자(투기) 소비심리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신규진입자에게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이를 팔아 사업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있다.
부동산 소유자들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권, 건설자본,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끊임없이 부동산 투자 꿈과 환상을 소비하고 있다. 지난 유동성 과잉 시대에 부동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분석에 기반하지 않은 과잉 투자(투기)가 만연했다. 탐욕과 과잉투자(과소비)가 판을 칠 때 경제는 잠시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처럼보인다.
그간 투자 행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산 기득권이 아닌 대부분의 청년, 서민층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자를 소비한다.' 소비는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무의식과 감정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지난 수년간 2030들의 영끌 주택 투자, 상가·분양형 호텔·개발지 인근 임야 지분 투자 등 노후 자금을 털어가는 부동산 투자 실패가 이런 사례다. 자산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부동산 공화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대한민국 다수 구성원의 무의식을 지배해 손쉬운 투자의 그늘에서 가계부채를 부풀려 왔다. 결국 투자에 실패한 이는 자신 또는 가족의 일생을 대부자의 노예로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됐다.
장기 저성장 시대의 시대적 과제
지난 5월 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며 "이 문제를 재정, 통화 등 단기정책을 통해서 해결하라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투자 대신 저출산, 고령화, 노후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강조했다.
고도·집약적 경제성장기의 부동산 투자를 향한 시각과 장기 저성장 구조가 고착하는 시기의 부동산 투자에 관한 관점은 달라야 함이 마땅하다.
한국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출 제조산업에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대에서 벗어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가계의 소비와 대출에 의존한 부동산 경기부양의 시대를 지나왔고, 이제 그 끝자락에 와 있다. 대한민국 가계부채는 세계 주요 36개국 중 1위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에 달해 비교 대상 국가 중 유일하게 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선다.
그 와중에 인구 감소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잠재 성장력이 고갈되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이미 진입했다. 금리 인상과 긴축의 외부적인 금융환경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돈값이 비싸지니 자연히 국제금융협회 등 여러 금융기관이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부동산 가치가 앞으로 계속 상승할 수 있을까?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을 빌려 "장기 저성장 구조를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 말하고 싶다. 저출산과 양극화 문제는 가계부채를 더 키우는 부동산 투자와 개발이 아니라 그간 토지 및 자산소유자가 누려온 편익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고 철저히 환수해 이를 재원으로 삼아 해결해야 한다.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차분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불평등 해소, 사회적 타협을 위한 합의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경제 압축 성장기 부동산 투자를 통하여 자산을 축적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음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
그간 소수의 부모 세대는 부동산 투자를 통하여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녀의 자녀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빈곤해지는 역설에 처했다. 결국 한정된 재화로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그들이 불공평하게 축적한 부동산 자산을 정상화하는 시기다. 부동산에 과도하게 낀 거품을 걷어내고, 우리 사회를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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